개심사의 봄, 청벚보다 만첩홍도.
열시부터 네시까지 여섯시간.
9시 15분 버스로 개심사에 가면 다음 버스로 나올때까지 놀아야 할 시간이다.
여섯시간?
좀 지루하지 않을까.
시집이라도 한권 챙겨 가야겠다 생각했는데
깜빡 잊고 그냥 왔다.
일주문을 들어서며
일주문 옆 계곡에 하얗게 꽃을 피우고 있는 귀룽나무를 보았다.
옆에서 보니 일주문과 아주 잘 어울리는 풍경이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귀룽나무 새 잎이, 다른 나무들보다 훨씬 일찍 피어난다는 것을
올 봄에서야 처음 알았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수없이 보아왔던 것들인데
볼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때, 참 신선한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키큰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이것은 무엇? 노박덩굴인가
사람들이 없는 내가 좋아하는 길로 개심사로 향했다.
새소리를 들으며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피어나는 꽃과, 움트는 잎새를 바라보며.
층층나무 새순
꽃봉오리를 올리고 있는 쪽동백나무
뿔나비가 앉아 있는 이 나무는 팽나무?
겹벚꽃도, 청벚꽃도 아직 피지 않았지만
경내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이 좋은 봄날에 집안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것은 고역일것이다.
콧잔등을 꾹 눌러 마스크가 얼굴에 잘 밀착이 되어있는지 다시한번 확인해본다.
나를 위해, 그리고 타인을 위해.
하루가 다르게 피어나고 있는 청벚꽃
많은 사람들이 만첩홍도 앞에서 오래 서성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홍매화의 아름다움을 칭송했다.
홍매화로 보면 어떻고, 만첩홍도로 보면 어떠랴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마음이 즐거우면 되는거지.
심검당과 안양루의 지붕이 만나는 삼각형 사이로 보이는 만첩홍도의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정말 심쿵 했었다.
오늘은 해우소 가는길 한켠에 서서 요리조리 바라보았다.
너도 언젠가는 저런 멋진 고목이 되겠지
이쪽저쪽 서성이다보니 6시간이 지루할 틈 없이 지나갔다.
오늘도 버스가 끝까지 들어오기는 힘들것 같아 마중을 나왔는데
들어올 수 있는데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결국 큰길까지 30분을 더 걸어야 했지만
나오는 길에 만난 미루나무 꽃의 아름다움 앞에 한참동안이나
발길을 멈추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나뭇잎과
길게 늘어진 꽃이 정말 아름다웠다.
이십년 가까이 마당가에 커다란 미루나무가 있는 집에 살았는데
꽃을 본 기억이 없다.
암.수 딴 그루라는데
우리집 마당가에 있었던 나무는 암그루였을까.
꽃길을 걸을 때는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행복했고
파릇파릇 나뭇잎이 돋는 숲길을 걸을 때는
또 이보다 더 아름다운 길은 없을것 같은 생각에 행복했다.
지금쯤은 개심사가 꽃대궐이 되어 있겠지.
2021. 3.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