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에서 나를 만나다/산행일기(2016~2020)

가야산 한바퀴

 

 

 

 

 

 

 

 

 

 

나비가 있으면 나비랑 놀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토요일에 가야산을 한바퀴 둘러볼 생각이었다.

멀리 갈 수는 없어도

이때 아니면 볼 수 없는 동네아이들은 봐야할것 아닌가.

꼭 나비가 아니어도 좋았다.

산길을 걷는것 자체만으로도 참 즐거운 일이니까.

 

그런데 조금이기는 하지만 하루종일 비가 예보되었다.

시골처녀가 보고 싶다고 이곳에 가면 어떠냐고 묻는 분이 계셨는데

오시라고 권할수가 없어 다음에 오시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비가 오지 않으면 무조건 가리라 마음먹었다.

 

 

 

 

암검은표범나비

 

 

 

 

 

 

 

 

 

 

 

 

 

첫차로 해미 일락사에서 석문봉 가야봉 헬기장 거쳐 대치리까지.

열심히 걷는다면 덕산발 열두시 버스를 탈 수 있을것 같았다.

늦잠 덕분에 첫차는 놓쳤지만

부랴부랴 준비하고 7시 10분버스를 탔다.

 

일락사 임도의 녹색부전들과 놀아가며 천천히 걷는데도

습한 날씨때문인지 숨이 차오른다.

지리산 천왕봉도 갈 수 있겠다고 좋아했는데

아무래도 너무 일찍 김칫국을 마신것 같다.

체력이 좋아진것처럼 느껴졌던 것은 날씨 때문이었나보다.

 

 

 

 산녹색부전나비

 

 

 

 

 

 

 

 

 

 

 

 

 

 

 

 

 

 

이런 날씨에 모습을 보여준것만으로도 고마운 산녹색부전나비

날개 옆모습을 봐야 그나마 짐작으로라도 이름을 불러줄 수 있을텐데

너무 높은 곳에 앉는것도 모자라, 앉자마자 날개를 편다.

 

 

 

 

 

 

 

 

 

 

 

사잇고개를 지나 꽃게소나무 아래서 잠시 쉬고 있는데

후두둑 빗방울이 지나간다.

비 맞을 각오와 준비를 하고는 왔지만 그래도 잠시 고민에 빠졌다.

도로 내려가야하나.

그래.  오랫만에 비를 맞아보지뭐.

 

 

 

 

 

 

 

 

 

 

 

 

 

 

 

 

 

 

 

 

 

다행히 몇차례 후두둑 빗방울이 지나가기는 했지만 더는 오지 않았다.

대곡리 갈림길에 이르자 녹색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벌써 뒤엉켜 회오리을 일으키며 날아오른다.

얼른 조망이 트이는 정상으로 가야겠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정상에 사람이 보이니 반갑다.

녹색부전들은 여기저기 내려앉았다가 날아오르고

둘이 뒤엉켜 솟아오르며 부산한데

잠시 낯선 여인네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는 상가리에서 혼자 올라왔단다

자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어서 나비에 대해 간단하게 얘기를 해주자

무척 좋아한다.

 

 

 

큰녹색부전나비

 

 

 

 

 

 

 

 

 

 

 

 

 

날개 윗면을 보고 깊은산과 큰녹색 구분하는법을 바람님께서 설명해주셨다.

낡은 모습이어서 장담은 못하지만

살짝 감이 오긴 한다.

녹색부전나비류는 봐도 봐도 어렵다.

 

 

 

 

 

 

 

 

 

 

 

 

 

 

 

 

 

 

 

 

 

개체수는 무척 많이 보이는데

이미 너무 낡았고 동정하기 애매한 위치에 앉으니

이름을 불러줄 수가 없다.

지난주말에 왔으면 참 예쁜 모습으로 만났을것같다.

 

 

 

 

 

 

 

 

 

 

 

 

 

 

 

석문봉에서 만난 그녀와 일단 가야봉까지동행 하기로 하고

가야봉에서 상가리로 함께 내려갈지 대곡리로 갈지 결정하기로 했는데

시간을 보니 버스시간에 맞추기에는 시간이 턱도 없이 부족했다.

하여 그냥 같이 하산하기로 간식도 먹고, 쉬기도 하며 여유롭게 걸었다.

 

그녀의 손에는 종량제봉투가 들려있었는데

가끔 혼자 산행을 하면서

이렇게 쓰레기를 주으면서 산행을 한단다.

나는 다른데 한눈 파느라 눈앞에 있는 쓰레기도 잘 안보이는데

그녀는 안쪽에 숨어있는 쓰레기까지 잘도 본다.

사실 나는 쓰레기를 버리지는 않지만

주을 생각은 아직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별로 할것 같지는 않지만

열한시가 넘으니 나비도 별로 보이지 않아서

보이는 쓰레기를 주웠다.

그녀 왈

쓰레기는 자기가 주을테니 나는 나비나 보란다.

 

 

 

 

 

 

 

 

 

 

 

 

 

 

 

 

 

 

 

 

 

멋진 운해는 아니지만 멋지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녹색 외에 다른 나비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손님을 오시지 말라고 한것은 정말 잘한것 같다.

돌양지꽃에 내려앉은 시골처녀를 보려나 했는데

한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1화는 끝났고 2화는 아직인 그런 시간일지도...

 

 

 

 

 

 

 

 

 

 

 

 

 

 

가야봉 아래 쉼터에서 선달님과 비룡님 일행을 만났다.

몇년만의 만남이지만 여전한 모습들이다.

정상이 코앞인데 그냥 돌아서서 함께 내려갔다.

활기넘치는 선달님 덕분에 유쾌하게 산행을 마무리했다.

 

꽃게나무에서 돌아서지 않은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그것이 아무리 하잖은 것일지라도 얻는것이 있다는것

 

욕심부리지만 않는다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것일지라도 즐거움을 준다는 것.

 

 

 

 

 

2018.  6.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