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추천인국 위의 공작나비 사진 때문에 수타사를 알았고
그 곳에 산소길이라는 이름의 산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칠월쯤에 한번은 걸어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회가 왔다.
그곳을 가는 산악회가 있었다.
수타사 앞 연꽃정원과 운무에 쌓인 산자락
2020. 7. 19일
한길산악회와 함께.
얄궂게도 일기예보가 자꾸자꾸 변하더니
산행일인 일요일부터 쭈욱 장맛비가 예보되었다.
억수로 퍼붓는 비만 아니라면 가봐야지.
특별한 운치를 느끼게 하는 풍경을 만날지도 모르니까.
주섬주섬 배낭을 꾸리며
안경과 작은 시집 하나를 챙겨 넣었다.
사다놓고 몇번 펼쳐보지도 않았던 김재진님의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였다.
비가 많이 오면 수타사 어디쯤에 앉아서 시집이나 펼쳐 볼 생각이었다.
공작교 너머로 수타사가 보인다.
두번씩이나 버스가 뒷걸음질하며 어렵게 찾아간 수타사
달려가는 동안 비는 잦아들어 부슬부슬 내려
다행이도 걷기에는 무리가 없을것 같았다.
사천왕문 사이로 보이는 수타사를 힐끔 쳐다보고는
모두들 수타사 앞 연꽃정원으로 향했다.
아담한 연못을 가로지른 데크길을 걸으며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다.
버스에서 내리다가 중학교 선배가 회장으로 있는 산악회 회원 네분을 만났다.
가끔 따라가는 산악회라서 안면이 있는터라 얼마나 반갑던지.
이곳 한길에는 아는사람이 없어서 혼자 걸을 생각으로 따라왔는데
덕분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즐겁게 걸을 수 있었다.
쑥스럽다며 우산으로 얼굴을 가려보지만 투명 비닐우산이네 ^^*
연꽃정원을 지나 궝소출렁다리 산행 갈림길까지는 잘 꾸며놓은 정원이었다.
이런저런 나무들과 꽃들을 심어 놓고
자작나무로 만든 동물의 형상을 곳곳에 세워 놓았다.
솟대처럼 새집을 모아놓은 풍경도 색달랐다.
그곳에 많은 새들이 둥지를 틀러 찾아왔으면 좋겠다.
새집 공원에서 다시 빽해야 궝소출렁다리 입구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오르막 계단이 있어서 겁 먹었는데
계단 하나만 오르면 궝소출렁다리까지 거의 평지에 가까운 숲길이다.
덕치천을 옆에 끼고 물소리를 들으며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계곡물은 비가 내렸음에도 수량은 별로 많지가 않았다.
궝소출렁다리는 너무 튼튼하여 흔들어도 흔들리지가 않는다.
이 다리를 건너 건너편 길로 수타사까지 돌아오는데
공원에서 놀며놀며 천천히 걸어도 두시간이면 충분하겠다.
시간여유가 좀 있어 갈 때 그냥 지나쳤던 수타사를 잠시 둘러보았다.
밖에서 보는것보다는 제법 규모가 있었다.
대적광전과 원통보전이 거의 나란히 있었는데
그 사이를 잇는 돌담의 담쟁이덩굴이 예쁘다.
산행을 끝내고 메밀국수로 가볍게 점심을 먹었는데도
시간은 한시가 조금 넘었을 뿐.
하여, 돌아오는 길에 여주 신륵사에 들렀다.
주차장에서부터 시간을 한시간 여유를 주었으니
그냥 대충대충 둘러볼 수 밖에 없었지만
정말 오랫만에 다시 들러보는 신륵사는 반가웠다.
튼튼한 전탑의 모습도
은행나무의 죽은 가지가 뿜어내는 관세음보살의 기운도
600년이 되었다는 명부전 앞의 향나무의 멋진 자태도
남한강 둔치에 올라가 있는 황포돛배도...
전탑에서 바라보는 육모정과 여강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강건너 언덕위의 황포돛배
600년 된 보호수 향나무는
여기저기 수술의 흔적이 많았는데
오래오래 건강했으면 좋겠다.
빛바랜 단청과 화사한 꽃의 대비.
절집에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는 꽃으로 장식한 하트모양의 조형물 아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었다.
잎이 노랗게 물드는 가을이면 참 아름다울것 같은 은행나무 둘레에
수많은 소원띠지들이 붙어있고
아래 사진의 관음보살상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영락없이 합장을 한 관음보살로 보인다.
비도 그쳤고
뜨겁지도 않고
사람들도 많지 않고
걸을 거리가 길지도 않고...
빗길을 마다않고 길을 나선것에 대한
선물같은 산행이었다.
산악회의 총무는 얼마나 친절하던지.
휴게소에서 아침을 시켜놨다며 전화까지 해주니
부담스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참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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