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19일
향순이랑 둘이서
은행과 우체국이 볼일이 있어 일처리하고 바로 퇴근하면 조금 시간을 낼 수 있을 듯 싶다.
친구에게 팔봉산을 갈까 의향을 물어보니 좋다고 한다.
내일은 위파의 영향으로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나 사무실을 나서는데 비가 내린다.
알고보니 오전부터 조금씩 오락가락 하였던 모양이다.
우체국에서 업무를 끝내고 다섯시가 조금 넘은 시간 서산을 출발하였다.
친구의 남편이 어송리쪽 주차장까지 데려다 주었다.
아까보다 굵어진 빗줄기에 걱정이 되었던지 산행을 마치면 전화를 하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언제보다도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다정한 부부다
다섯시 사십분쯤 되었을까? 솔방울가든에서 8봉으로 출발
우의를 입었지만 우산을 폈다접었다 반복하면서...
이쪽을 산행기점으로 삼아 오르는 것은 처음이다.
내려올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아주 쉽게 내려온것 같은 임도도 산진입로까지 이렇게 긴 줄을 몰랐다.
길도 우회도로가 많아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만 길을 찾아 올랐다.
아마 처음 걸어보는 길이지 싶은데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봉오리 하나하나의 구분이 명확하게 느껴지는 길이었다.
삼봉까지 가면서 가끔씩 시야가 트이는 곳에서도 짙은 안개때문에 아무것도 조망할 수가 없다.
오락가락하는 빗줄기는 자꾸만 굵어지고 짙어지는 안개, 달려오는 어둠
그 모든것을 그냥 온 몸으로 받아내는 수 밖에 없다.
3봉을 찍고 광암사터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친구의 발걸음이 바빠진다.
1봉 갈림길에 거의 왔을때는 랜턴을 비추어야 할 만큼 어둠이 가까이 다가왔다.
1봉갈림길에서 다시 3봉으로 오를무렵 번쩍번쩍하는 번개와 천둥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그냥 양길리쪽으로 내려가야하나 생각했지만 차편이 마땅치 않다.
둘다 서로 아무런 내색없이 한발한발 3봉을 향해 올랐다.
옷이며 신발은 진작에 다 젖어버렸고 땀과 빗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버렸다.
이미 사위는 절벽처럼 캄캄하다.
지금 믿을수 있는 거라고는 나 자신과 내딛을 길을 비춰주는 희미한 랜턴불빛뿐이다.
8봉부터 1봉갈림길까지 그리고 다시 3봉까지 쉬지 않고 왔으니 지칠만도 하다.
거기다 비 때문에 비끄러운 길 때문에 몸에 잔뜩 힘을 주고 내딛는 걸음이었으니 말이다.
미끄러운 길은 오히려 오름길이 나았다.
3봉에서 잠시 쉬었다.
어둠속에서 포도한송이를 꺼내 몇알 따 먹고 시원한 물 한 컵 들이키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바위와 계단과 한치앞도 내보이길 거부하는 어둠과 거세어지는 빗줄기
덜컥 겁이 난다.
전에 마을금고 산악회에서 아는 산이라고 안심하고 걷다가 엉뚱한 길로 하산한 기억이 있어
더더구나 조심스럽다.
갈림길에선 잠시 멈춰서서 이쪽저쪽 살핀뒤에야 발걸음을 옮겼지만 결국엔 몇발작 못가서 다 만나지는 길이었다.
8봉을 지나고 멀리 인가의 불빛이 보일무렵 친구에게 물었다
"무섭지 않았어?"
둘이 있어서 괜찮았단다.
뒤에서 보이는 내 모습에 두려움이 느껴졌다면서....
무서움을 많이 타면서도 용감한것 같다는 칭찬 한마디도 빼놓지 않는다.
그래도 1봉 갈림길에서는 그냥 양길리쪽으로 내려서고 싶었다고 했다.
사실 나는 겁이 무척 많다.
특히 어둠은 정말 싫다.
그러나 내가 생각해도 실전에는 강한 편이다.
누군가는 그랬다. 아마도 침착해서 그럴거라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산길을 내려오면서도 허옇게 보이는 표지판이 희미하게 보일때마다
뭐가 있나 싶은 마음에 긴장과, 제대로 왔구나 하는 안도의 마음이 교차하고는 했다.
드디어 임도에 도착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여유롭게 걷는다.
멀리 희미한 불빛이 움직인다. 몸이 순간 긴장하는데 친구가 하는말
"반딧불이다"
그 빗속을 반딧불이가 날고 있었다.
지난번 3봉 정상에서도 근 이십여년만에 춤추는 별 같은 반딧불이를 보았었다.
솔방울가든에 도착한 시간이 8시 15분 왕복하는데 2시간 30분정도가 걸렸나보다.
큰길까지 대로는 걷는것이 좋을 듯 싶어 차도를 따라 걸었다.
몇분안걸어 어송- 서산태안 이정표가 300미터다.
다 왔네 하면서 걸었는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건 주차장과 구도가는 길이 만나는 지점이었고 어송 버스타는 곳까지는 1킬로 이상은 족히 걸었을 듯 싶다.
그냥 다니던 샛길로 올걸 하는 후회가 막심하다.
그래도 친구와 둘이서 물에 빠진 생쥐차림으로 밤길을 걷는 것이 나쁘지 않다.
다행이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시내버스가 도착했다.
이 밤에, 그리고 이 빗속에 산행차림의 두여자의 승차가 의외인 듯.
산에 다녀오느냐고 묻는다
얼마나 좋은것을 산에 묻어두었길래 이 빗속에 밤 길 산행을 하였느냐고
웃으면서 말했지만 속으로는 "미쳤군"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를일이다.
우리 스스로도 이거 미친거아냐 하면서 걸었으니까.
그리고는 둘만의 비밀로 하기로....
여럿이 걷는 산행은 그 나름대로 재미가 있지만 이렇게 친구와 둘이서 걷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다.
이 빗속을 어둠을 헤치고 둘이서 왕복을 해내었다는 것이 얼마나 뿌듯한지 알까?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길도 이제는 걸어갈 수 있을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내려오는 길에 친구가 물었다
"너는 왜 그렇게 산을 좋아해?"
"너는?"
"나는 옆구리살 줄어드는 것이 느껴져서 좋아"
"나는 산에 다녀오면 한달이 행복해.
그곳에서 모든것을 비우고 돌아와 시 태어나고 다시 사는 느낌이야"
물론 마지막 귀절은 친구에게 한 말은 아니다.
그러나 사실이다.
모든것을 긍정적으로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주고, 욕심부리지 않는 소박함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고
모든 상황에 자연스럽게 순응할 줄 알게 해.
아니 그냥 좋아
산에 가면 눈에 보여지는 것, 몸에 느껴지는 것 그 모든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
그게 내가 산에 가는 이유일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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