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더 크게 와 닿는 그녀의 빈자리가
혼자 달리게 만들었습니다.
그곳을 혼자 달리는것이 참 오랫만입니다.
지난해 4월이 마지막이었으니까요.
저 언덕에 쇠똥인가 착각을 일으키던 기러기는 들판으로 나갔나봅니다.
누렇게 말라버린 강아지풀과 대조적인 언덕의 초지가
아름답게 어우러지는군요.
가을 가뭄이라는데....
신장저수지는 그래도 엔간합니다.
능선에 소떼들도 한가롭구요.
(노박덩굴)
감은 따다가 홍시를 만들었는지 감나무엔 잎만 무성합니다.
주렁주렁 매달린 빨간 감이
산사에 가을 느낌을 물씬 안겨줄텐데요
언젠가 그녀가 말했습니다.
개심사를 참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좋아하는 것은 맞지만
왜 좋아하는지 나 자신도 잘 몰랐었는데
이제야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것도 같습니다.
아마도...
변함없는 풍경 때문은 아닌지.
수십년전 처음 보았을 때의 풍경과 지금의 풍경이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개심사의 상징같은 이 작은 연못 이름이
경지랍니다.
한자로 鏡池로 쓰지 싶습니다.
스스로 맑지는 않지만
참 맑게 끌어안아주는군요
경지앞의 오래된 고목에 노랗게 물들었네요
경허당 앞의 단풍나무는 아직 푸르름이 짙습니다.
능선에서 선원으로 내려서는 길목의 고목에
저리 푸른 잎을 달고 있는 가지가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그저 고사목이겠거니 했었거든요.
생명에의 의지가 정말 대단하군요.
선원의 문이 활짝 열려있습니다.
이런일은 보기드문데....
열려있지만 선뜻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들어가야 할 곳이 아니니까요.
활짝 열려있는데도 빼꼼히 열린 쪽문 틈으로 안을 들여다봅니다.
웬지 그래야만 더 잘 보일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잎을 보면 덜꿩나무인듯 하고
또 잎자루를 보면 가막살나무인듯도 하고
알것 같다가도 또 모르겠습니다.
선원에서 어느길로 내려설것인가 잠시 망설였습니다.
왔던 길 되돌아 걷는것이 내키지 않아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서기로 했습니다.
경사가 장난이 아니네요.
길옆에 까마귀밥여름나무 열매가 곱게 말라가고 있습니다.
그 옆에 초피나무 열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도 보이네요.
하얀 분칠을 한 복분자의 가시에 찔린 손가락이 자꾸만 쓰리고 아픕니다.
(까마귀밥여름나무)
(초피나무)
비목은 겨울지나고 꽃을 피울 때까지 아주 오래도록 이런 모습이더군요.
잎맥따라 물드는 칡덩굴의 단풍도 무척 아름답네요.
누군가에게 들으니
개심사 주지스님의 거처라지요.
양 옆으로 떡 버티고 선 녹슨 철대문이 웬지 거슬립니다.
열려있기는 하지만
세속의 무게가 고스란히 실려있는 듯 합니다.
혼자 걷다보니
짧으시간동안 얕으막한 산 하나를 오르는데도
소소한 선택의 연속이군요
산을 오를것인가, 절집 마당에서 되돌아 갈 것인가
산길로 갈 것인가 포장도로로 갈것인가
용비지를 볼 것인가 말 것인가
선택이 항상 올바르고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겠지만
스스로의 선택이기에 의미가 있는것이겠지요.
2011.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