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리 (콩과 낙엽관목)
지난 여름 어느 산행길에서였습니다.
키를 훌쩍 넘긴 커다란 싸리나무를 보게 되었는데
꽃이 핀 싸리를 보면서 동행은 싸리꽃 예찬에 여념이 없었지요.
꽃만 보면 카메라를 들고 들여다보던 나였으니
꽃이든 사람이든 한장 찍을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멈춰서서
고개만 끄덕였을 뿐
끝내 싸리꽃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고 발길을 옮겼지요.
그런데 얼마전 바닷가의 싸리나무 앞에서,
그리고 어제 동네 산기슭의 싸리나무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꽃 보다도
싸리비에 대한 따듯한 기억 때문이었을까요?
콩 타작이 끝난 마당을 아버지께서 싸리비로 곱게 쓸어내리면
마당 가장자리를 따라가며 오리걸음으로
반쯤 마당에 파묻힌 콩알들을 한알 한알 파내어 줍는 일은 제 몫이었지요.
그 때는 참 귀찮고 성가신 일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참 따듯하게 느껴집니다.
검지손가락 끝에 와 닿던 터럭이 섞인 고운 흙의
서늘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촉도 그리워집니다.
꽃이 지고나서도 싸리비를 만들 일도 없겠지만
토기같은 흔적을 남기며 곱게 쓸어낼 마당도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