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둑컴컴한 용비지를 왼쪽으로 돌아
조심스레 정자쪽으로 다가선다.
아~
부지런한 진사님 한 분이 벌써 발걸음이 바쁘시다.
우리 정자에서 놀건데....사진에 방해가 되지 않겠어요?"
괜찮단다.
그래서 실컷 놀았다.
빨간 자켓이라도 입고 길쭉하기라도 했으면 풍경에 화룡점정이 될 수도 있겠지만
실한 굵기와 아담한 기럭지에 우중충한 오리털점퍼 차림이니
그래도 조심스러워 커다란 나무기둥에 기대어 서서 조용히 놀았다.
몇년 전 봄
호된 신고식을 치르며 용비지를 처음 만난 이후로
용비지는 내 그리움의 제일 굵은 한가닥을 잡고 있다.
숨막히는 고요속에 용비지는 제 모습을 비추고 있는데
돌멩이라도 던져진 듯 내 마음속엔
남몰래 파장이 인다.
2013. 1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