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산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설레이는 곳이다.
거기다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 이라지 않는가
연인산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기다려 만나줄 것인가
사실 산행 신청부터 망설임이 있었고 덩순이 친구가 안 가겠다고 할때부터
이번 길은 혼자 걷게 되겠구나 짐작했었다.
처음 서부산악회에 발을 디딜때부터 혼자였었지만 고맙게도 덩순이가 길동무가 되어주어서
참 기쁘고 고마웠었는데 그 친구가 못 가겠단다.
이유는 체력이 딸려서라지만 다른 회원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이유의 하나일터
나 또한 그에 대한 부담감을 아주 떨쳐버리지는 못한 것을....
소망능선 입구인 백둔리 까지 가는 동안도 참 좋았다.
강을 끼고 도는 국도를 달리는 것도 기분 좋았고
힘들게 찾은 들머리를 따라 계곡을 끼고 달리는 길도 좋았다.
열시 30분쯤 도착.
계곡을 따라 연인산 정상을 향해 출발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발걸음도 마음도 모두 가볍다.
계곡 바위에 돌단풍은 꽃이 이미 다 시들었고 억세보이지만 여린 엉겅퀴가 이제 꽃봉오리를 키우고 있다.
(용둥굴레를 만나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숲으로 접어드는 경계에 서자 선을 긋 듯 공기의 차이가 느껴진다.
이 서늘함, 이 상쾌함
두팔을 벌리고 한껏 숲의 기운을 몸 속 깊은 곳까지 들이마셔본다.
지금부터 나는 돌멩이다. 티끌만한 연인산의 일부이다. 그저 그뿐이다.
오뉴월 하루볕이 다르다더니 옥녀봉보다 꽃이 조금씩 늦나보다.
노린재나무도 이제 작은 꽃봉오리를 달고 있다.
초입에서 유난히 꽃봉오리가 큰 둥굴레? 비슷한 녀석을 만났다.
누군지 알아봐야지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하나하나 꽃 이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래서 그 녀석들의 유혹을 물리치기가 힘이 든다.
느린 걸음에 딴 짓 까지 참 미운짓은 가지가지하는...^^* 돌멩이
그런데도 오름길 틈틈이 후미를 기다려 갱개미무침도 먹여주고, 커피도 먹여주고...
모두들 고맙고 또 고맙다.
간간이 눈에 보이는 철쭉들이 산의 싱그러움을 더해주는 듯 하다.
정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곳 부터는 나를 잡아끄는 꽃들이 너무나 많다.
노랑제비꽃, 벌깨덩굴, 금강애기나리, 큰앵초, 꿩의다리아재비, 용둥글레.......
실제로 처음 얼굴을 맛대는 얼레지는 다 시들어 씨방을 맺고 있었지만 정상의 능선부근에
몇 송이가 남아있다.
그러나 이미 밧데리가 다 되어 카메라에 담을 수가 없다.
정상을 눈 앞에 두고 옆으로 펼쳐진 평원과 그 능선길이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였다.
문장대에 올랐을 때 내려다보이던 그 신록...
그 위에 뛰어내리고 싶게 만들었던 그런 황홀함이 아니라 그냥 말없이 걷고 싶게 만드는
한없이 평온함이 느껴지는 길이었다.
정상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서로 정상석을 끼고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꼭 그래야만...그렇게 증거를 남겨두어야만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질것처럼......
오르면서 나도 정상에선 사진 한장 찍어야지 생각했었는데 그 북적이는 사람들을 보고
그만 두기로 했다.
그대신 누군지 모를 다정한 연인을 내 카메라에 담았다.
사랑과 소망 이루기를...
회장님이 알려주신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그 평안해 보이는 능선길을 조금 걷다가
되돌아 오기로 했다.
아버지의 어깨에 무등을 타는 아이같은 기분으로 편안하게 즐겁게 그 길을 걸었다.
지나가는 그 길을 물으니 마일리로 내려가는 길이라 한다.
마일리......이건 오늘의 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평원의 철쭉들)
이제 돌아가야겠다.
일행에게 연락을 했으나 되지 않는다.
정말 혼자가 되었나보다.
그냥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올라오면서 봐 두었던 그 평원을 가로지르는 길로 접어 들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그쯤에서 예산에서 왔다는 모산악회 일행을 만났다.
그들로 소망능선으로 내려갈거라 한다.
마음이 발길을 이끌었는지, 길이 사람을 이끌었는지, 발길이 몸을 이끌었는지 모르겠다.
그 길에 대한 아무런 의심도 없이, 망설임도 없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길치인 나는 오름길과 다른 길이라는 것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한참을 내려오다 길이 축축한 골을 끼고 돌 때쯤 누군가
이길 맞어? 하고 묻는다.
조금 더 내려서니 이정표가 보이는데...
정상 0.5km..연인골....용추계곡....
지금껏 걸어온 길이 연인능선이었던 거다.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것이 이런것이구나.
정상까지 한시간 이십분 걸린다는데 내 걸음으로 자신이 없고 시계를 보니 2시 38분이다.
모산악회 회원들도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는데
그들의 일부도 정상까지 되돌아가지는 못하겠다고 그냥 내려가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냥 따라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일단 길을 잘못들었음을 일행에게 알려야 할것 같아 연락을 시도했느나 통화권 이탈지역이란다.
시간은 흐르고 나 때문에 걱정하고 있을 생각을 하니 속이 바짝바짝 타오른다.
(정상부근에서 만난 큰앵초)
(족도리풀)
얼마를 내려와 또 다시 이정표를 만났다.
마일리 국수당 3km, 백둔리주차장 8km 용추계곡.......7.8km...
백둔리주차장으로 가면 일행들이 있을테지만 8킬로라니...
그들은 인원수가 많으니 가까운 마일리로 내려가 일행들의 차를 그곳으로 부른다고 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들을 따라가는 수 밖에는.
내 일행에게 다시 연락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불통이다.
연락이 안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에 그 길을 어떻게 걸었는지 모르겠다.
야생금낭화며 매발톱...이런저런 꽃들이 보였지만 아무것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사람들마져 놓치면 안될것 같아서
비가 내린 탓인지 물이 흐르는 계곡길도 열심히 따라 걸었다.
조금이나마 시간차를 줄여보고자 열심히 옥녀봉을 다닌 효과가 조금은 느껴지는 듯 하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어서 연락이 되어야 할텐데......
한참 속을 태운 후에야 겨우 연락이 되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그때부터는 그래도 조금 마음이 놓인다.
서울로 가든 예산으로 가든 어떻게든 집에야 돌아가겠지만
걱정하고 있을 일행들 생각에 속이 탔었기 때문이다.
"미운오리인가봐요?" 하는 농담에도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래도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심란스러운데 다섯시가 다 되었을 무렵
회장님과 총무님으로부터 걱정하지 말고 밥먹고 기다리라는 연락이 받았다.
갑자기 세상이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미안하고 또 고마운지
택시를 불러타고 청평검문소로 나오면서 젊은 기사가 많은 얘기를 했다.
산악구조활동도 하고 있다는 그는 나같이 길을 잘못 들어 내려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단다.
상수원 보호구역이라서 공장들이 들어설 수가 없어 일자리도 없고
극장등 문화시설도 춘천이나 서울로 가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젊은이들이 별로 없단다.
젊은이들이 별로 없는 것은 시골마을 어디다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막히는 도로때문에 청평검문소에서 한시간 남짓 기다려 일행들을 만났다.
죄송하고 미안하고 고마운 그들
모두 사랑과 소망 모두 이루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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