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칠년 사월 십오일 일요일
오늘 내가 산에 가지 않았다면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아마 감기를 핑계삼아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고)
하루종일 낮잠을 자며 뒹굴었을 것이다.
아이들한테도 "배고프면 밥 차려 먹어" 하면서 콩쥐 엄마 노릇도 했겠지.
그렇게 내 생애 봄날의 하루가 흔적없이 지나갔을 것이다.
알람을 맞춰놓고 이번에는 여유있게 도착해야지
걸어가는 것은 자신없고 자전거를 타고 가야지 했는데
결국엔 또 택시를 타고 말았다.
다음엔 정말 꼭 자전거를 타고 가야지.
여섯시 10분쯤 광장
출발 잠을 청해야지 했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먼 들, 먼 산 아마도 눈 둘 곳이 많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랫녁으로 내려가면서 서산에서 아직 볼 수 없었던 꽃들이 피어 눈길을 잡아 끈다.
얕으막한 산기슭에 한무더기씩 피어난 조팝나무 하얀 꽃
하늘을 향해 두팔을 한껏 벌린 과수원의 배꽃
(돌아오는 길에 배꽃을 보았을 땐 단물이 배어나는 시원한 배 한조각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익산 톨게이트를 지나면서부터 논에 심어놓은 키작은 보리들이 이삭을 내밀고 있었다.
수확을 위해 심어놓은 보리일까?
수확을 하고 모내기를 하려면 보리들이 바쁘겠다 싶었다.
보리를 보면 자연스레 어릴적의 한 풍경이 떠오른다.
깜부기를 뽑아 피리를 불던......
볼을 풍선처럼 한껏 부풀리며 얼굴이 빨개지도록 불어도 소리가 나지 않을때도 있었지
대나무 잎으로도 피리를 분 적이 있는데...방법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먼 산 빛이, 아직 여린 신록과 봄꽃이 어우러져 신선하다.
아마 돌아올 때 쯤이면 꽃 몇 송이 더 피어나거나 혹은 지거나
새 잎이 몇 잎 더 동아나거나 더 자라있을지도 모를일이다.
사월의 풍경은 그렇게 하루하루 달라서 좋았다.
오늘 두번째 만나는 강천산의 모습도 저렇겠구나
시간은 충분할것 같았다.
아무리 느린 걸음이라도 회원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없을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깃대봉을 오르는 중간에 주체할 수 없는 땀 때문에 이마에 질끈 동여맨 수건을 보고
한 회원분이 말하길 폼만은 일등 산꾼 같단다
사실과는 다르지만 그래 보인다는 것...나쁘지만은 않다.
(꼴찌들의 행진)
완만한 오름길에 충분한 시간 오늘은 누구의 발목을 잡을 일은 없을것 같다.
그래도 발목 잡힌 사람이 있었으니
자연인님은 겨우 사탕 세개에 나에게 발목잡혔다 하지만
사탕은 커녕 빈손으로 자연인님의 발목을 잡은 이가 있었으니 이름하야 풀 ~ 꽃
꽃을 찾아 땅만 보며 산을 올랐을 자연인님
경사면을 이리저리 다니는 모습이 다람쥐처럼 날쌔다.
(풀꽃에 발목잡힌 자연인님...내가 못 본 꽃들을 많이 보았다)
깃대봉을 오르는 중간쯤에 사진으로만 보았던 애기꽃을 처음으로 보았다.
잎이 고깔을 닮아 구분이 가능했던 고깔제비꽃은 완전히 밭 수준이다
(고깔제비꽃)
(애기풀)
내 키보다도 훨씬 큰 진달래와 작은 산죽? (조릿대?) 밭을 지나 왕자봉 갈림길에서
고향이 원북이라는 아지메를 만났다.
배낭뒤에 걸어둔 산악회 휘장이 고향 사람들의 것이어서 반가웠나보다.
울산에서 왔다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왕자봉에서 멋진 소나무에 기대어 앉은 그 울산 아지매에게
꼭 그곳에서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말하는 찍사님도 재미있고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순순히 자리를 내어주는 울산 아지매도 재미있다.
(역시 서산사람이라 마음의 여유가 느껴진다)
(그 소나무)
그 울산 아지매를 밀어내고 소나무에 기대어 사진 몇장 찍고 되돌아 나오는 길
등산로를 놔두고 경사면을 가로질렀다.
작은 웅덩이에 비단개구리?떼들
걸으며 가끔 시간을 확인했다. 늦으면 안되니까. 충분하겠다.
더 천천히, 더 쉬면서 가도 되겠다.
어느 봉우리일까?
강천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앉아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물빛이 짙어 앞산의 신록이 제대로 물속에 들어앉지를 못했다. 그랬다면 더 멋진 풍경이었을터인데
"가시나무"라는 노랫말이 스쳐 지나간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머릿속에선 바다같은 호수를 상상했던 걸까?
호수가 조금 더 컸으면 좋겠다 싶었다.
(꽃보다 아름다운)
그곳에서 너무 오래 쉰 탓일까"
일어서기가 싫다.
그냥 소나무 아래 바위에 누웠으면 좋겠다. 그러다 잠이 들면 신선이 되지 않을까?
누군가 옆에서 풀피리를 불어준다면 금상첨화겠지
그곳에서 바라다보이는 구장군폭포를 보면서 사람들이 의견을 나눈다.
인공적인 냄시가 난다.... 자연산이다......
강천호수를 곁에 두고 걷는 길은 편안한 길이었지만 내게는 힘이 들었다.
다음 산행에 또 따라 나서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게 하는 부분이다.
붉은 빛이 도는 길과 바위가 기억에 남는다.
강천호수의 잉어떼들
강천댐 아래 소원을 빌며 던졌을 건너편 바위위의 돌무더기
소원보다는 한번에 성공해야지 하는 일념으로 다른 생각이 없었으니 이건 또 뭔가
(알아서 소원 들어주시겠지)
(강천댐 계단아래)
아직 마무리가 안된 테마공원과 맞은편 깍아내린 바위절벽이 안타깝다.
올려다보이는 현수교를 보면서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친구가 말한다.
앞만 보고 가면 갈수도 있겠네
강천사 앞의 모과나무와 인사나누고 발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지만 차마 벗지 못하고
산림욕장 그 걷고 싶었던 나무길로 접어들어 신발을 벗어들었다.
그리고 병풍바위 앞 무슨 다리더라 극락교? 아래 물에 발을 담갔다.
몇시간동안 고생해준 발에게 뭔가 해준것 같아 몸은 물론 마음까지 홀가분하다.
오르면서 흘린 땀방울만큼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겠지
주차장에 돌아와 출발시간을 확인했다.
한시간의 여유가 남았다.
개울옆 길가에 주저앉아 한시간을 보냈다.
그 한시간 동안 오가는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았으니
산에서 뜯은 취나물 고사리등을 듬뿍 넣고 끓이는 라면 맛
냄새도 구수하고 정말 먹고 싶었지만 너무 힘이 들었던지 먹으면 체할것 같아 국물만 마셨다.
다음 산행에 또 와야 하는 하나의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영광스럽지 않은 꼴지의 기록을 당당히 지켜내며 산행 마무리
아마 꼴찌의 기록은 내가 있는 한 깨지지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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