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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나를 만나다/산행일기(2005~2010)

운악산...줄에 온몸을 맡기고

설레임

 

가끔씩 찾는 옥녀봉 이외의 산행은 지난해 6월 이후 처음이니 마음이 설레일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 운악산과도  산악회 회원님들과도 첫만남이니 더더욱 그러했을 터

첫인상이 참 중요하다는데 이를 어쩌나

눈을 뜨니 5시 35분이다.

모닝콜만 믿고 마음편히 잠을 잤는데  설정에서 일요일을 빼놓았다는 것을 깜빡했다.

눈앞이 캄캄하다.

세수도 대충 머리도 대충...줄 그어도 호박이 수박은 못 되겠지만 그래도 얼굴은 좀 단장을 해야지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다행히 눈총 안 받을 만큼만 늦어서 다행이다 (나 혼자 생각)

 

정상에서

 

 

미안해 하지 말자

 

사실 산행 신청을 해 놓고도 걱정이 앞섰다.

언제나 꼴찌를 면하지 못하는 산행 실력도 그렇고 오랫만에 하는 산행이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되면 어쩌나 해서 말이다.

입구에서 현등사까지 오르면서도 꽤나 지쳤다.

그날따라 까마득하게 보이는 현등사 계단...들렀다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느린 걸음 때문에 망설이는데 걱정말고 다녀오라는 대장님의 말씀을 듣고 계단을 올랐다.

휘 둘러보지도 못하고 그냥 앞에서 눈으로 한번 휘 둘러보고 물한모금 마시고 내려선다

현등사

전각들의 배치가 오밀조밀  대가집 종가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친구야 무얼 보고 있니?


이제 본격적인 산행이다.

친구랑 오면서..기다리게 하지는 말아야 할텐데..하면서 출발했는데

산행 시작부터 뒤에 남게 되었다.

우리와 보조를 맞추느라 애쓰시는 남부대장님에게 미안함에 불편한 마음이 좀 있었다.

그러나 미안한 마음을 버리고 마음편히 오르기로 했다.

오름길은 힘들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질척한 능선길을 따라 걸으면서는 명성에 비해 싱겁네..하는 생각도 했었으니까

까마귀와 까마귀 소리도 참 오랬만이다.

7년전쯤 부산 금정산에서 본 후로 처음이다.

정상에서도 망경대에서도 조망이 정말 멋지다.

망경대에서 여유있는 여러가지 포즈로 사진을 찍는 무쏘님

그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산행을 하는 열정이라니..존경스럽다.

그곳에서

잠시후에 펼쳐질 그 험한 길을 예상도 못한 채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딱 어울리는 닉네임

 

그곳까지 오면서 함께 후미를 챙겨주신 남부대장님 비룡님 자연인님 무쏘님 산바라기님 산새님

어쩌면 그렇게 딱 어울리는 닉네임을 지으셨을까

꼴찌를 꼼꼼하게 챙겨주시는 남부대장님

날렵하신 비룡님

산의 일부가 된 듯한 자연인님

힘있는 산행을 하시는 정말 부러운 무쏘님과 산바라기님 너무 멋져요.

맑게 지저귀는 산새님

아 또 한분 ..적당한 무게가 느껴지는 일톤님

돌멩이는 나하고 안 어울리나 ..돌덩이로 바꿔야 할까

 

정상에서 향순이와

 

 

유격..유격

 

내리막길로 접어들면서 한시도 긴장을 늦출수가 없었다.

풀리려는 다리에 긴장을 주며 줄에 매달린다.

이런줄도 모르고 명성에 비해 싱겁네 하는 생각을 했었으니...

사람이고 산이고 어느 한면만을 보고 서둘러 판단을 내려서는 안되겠구나

자연인님 이하 여러 님들은 바위에 붙은 듯 잘 내려왔지만

아니다. 역시  바위에 제일 잘 붙은 사람은 나와 내 친구가 아닐까 싶다.

줄을 잡고 몸을 뒤로 젖히라는데 생각처럼 되는가

붙잡고 기는 수밖에

가끔씩 부딪쳐 무릎이며 팔이 아팠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옆에서 태산이 무너진대도 무신경할만큼 내려오는 일에 집중하는 것도

그 틈틈히 이쪽저쪽 풍경을 바라보는 일도 모두.

 

내림길에 이어지는 바위길

 

 

 

보시

 

얼마쯤 내려왔을까

아담한 운악사가 눈에 들어오고  그보다 더 눈에 번쩍 뜨이는 것이 있었으니

"점심 무료로 드립니다."

먼저 내려가서 기다리고 있을 여러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준비해 놓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맛있게 먹어주는 것도 보시가 아니겠는가

너무 지친 나머지 한그릇을 다 먹을 수 없었지만 산사에서 먹는 조촐한 국수 정말 맛있었다.

 

목적지에 내려오니 한팀은 자리를 걷고 한켠에 꼴찌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미안하고....

고맙고....

배추에 싸 먹는 삼겹살도 정말 맛있다.

힘들어서 많이 먹을 수 없는것이 아쉬웠지만 말이다

(절대 운악사에서 먹은 국수 때문이 아님)

 

그렇게 무사히 운악산 산행을 마치고 이제 며칠동안의 후유증을 견뎌야겠지.

 

 

망경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