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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나를 만나다/산행일기(2005~2010)

아무것도 본 것이 없다??? 백아산

2009.  5.  17일 일요일   서부산악회원 37명과 함께

06시 광장 출발

9시 30분 백아산 관광농원도착

9시 40분 산행시작

 

모처럼 기다렸던 단비가 내리는데도 반가움보다 걱정이 한발 앞서 앞으로 내닫는다.

우중산행도 특별한 추억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맑은날만이야 하겠는가

다행이도 새벽부터 개인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어찌해야할지 고민되는 분들이 더러 계신 모양이다.

몇분이서 내게 일정변경이 없는지를 물어오셨다.

 

 

 

이슬비속을 세시간을 달려 목적지인 원리에 도착했지만  등산로가 좋지 않다는 현지 주민의 말을 듣고

백아산 관광농원을 들머리로 산행을 시작하였다.

여전히 이슬비는 내리고 있었지만 산행하기에는 과히 나쁘지 않았다.

농원표지판을 지나 저수지 위에 세워진 인어아가씨 조각상이 예쁘고 인상적이었다.

 

습한 날씨에 초반부터 땀을 빼고 이십여분 올랐을까

고도가 조금 높아지자 안개의 농도가  짙어진다.

아직 산에서 한번도 보지 못한 멋진 운무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지금같아서는 바위능선의 멋진 조망조차 볼 수 없을것같은 예감...

 

 

 

소나무와 굴참나무로 이루어진 포근한 등산로는 안개로 인하여 더욱 호젓했다.

소나무 가지 뒤의 하얀 세상은 한폭은 동양화의 넉넉한 여백처럼 여유로워보였다.

노송 가지의 곡선과 연륜, 힘과 여유는 그 어떤 나무도 흉내내지 못할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조망을 살펴볼수가 없고, 어디 주저앉아 쉬기도 마땅치않으니 걸음들이 빠르다.

앞서가던 선두가 쉬면서 후미를 기다리기를 몇번 반복하며 너른 철쭉평원으로 짐작되는 안부에 도착했다.

그곳엔 마당바위와 백아산 정상의 표시가 서로 반대반향으로 나 있었다.

마당바위에 다녀 와서 정상으로 향해야했다.

사람 키를 훌쩍 넘기는 철쭉들이 군락...하지만 시들어가는 철쭉을 몇송이 볼 수 있을 뿐이었던 것이 아쉬웠다.

어느분께서 말씀하신다

"철쭉잎이 참 크네.  잎이 크니 꽃도 클까?"

"배가 조금 크신 그 분은  배꼽도 클까?"  하는 생각에 혼자 키득거리며 마당바위를 향했다.

 

 

 

마당바위로 가는 길

가파른 바위길을 지나 다른 세계로 통할것만 같은 터널같은 계단에 올라서자 누군가 모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소화기님 부자가 지나가기에 불러세웠다.

 

                                                                                      (하나로님께 부탁해서 한컷) 

마당바위에서 보이는건  바위와 안개와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희미한 사람들의 실루엣

그래도 모두들 허공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분주하다.

그곳에서의 조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훔쳐본 사진을 떠올렸지만 추억조차 잊혀진 옛사람의  얼굴처럼 도무지  눈앞에 그려지지가 않는다.

 

 

 

 

 

 

갈림길 안부에서 잠시 휴식과 간식 후 정상으로 향했다.

능선과 암릉 두개의 철계단을 지나고 정상에 도착했다.

마지막 철계단 앞에서 바라보이던 바위...

꼬리를 바짝 치켜올린 다람쥐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안개가 아니었으면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릴 거 가려주고, 적당히 보여주는 안개의 미덕이랄까

사람들의 표정도 한결 여유있고 편안해 보인 산행이었다.

 

 

                                                         ( 웬지 사색에 잠긴 듯한 표정이 어울릴것 같은 풍경에 폼 한번 잡아보았다)

 

정상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다던 동창생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오늘 산행에 처음 함께한 동창생이 정상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었다.

그냥 하산하려는데 솔방울님이 친구도 안 챙기고 그냥 가냐고 불러서 가보니 바위 뒷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동창이라고 기다려주고 먹을 거 챙겨주는 친구가 고맙다.

덕분에 정상에서 꾸물거리다  산행 2년만에 처음으로 정상석을 독차지하고 사진을 한장 찍었다.

 

 

                                            (커다란 바위 오름길에 소나무가 멋져서 모처럼 독사진 한장 찍으려는데...모두들.....모여들었다) 

 

정상에서 하산길에 잠시 알바를 했다.

정상에서 기다리던 동창생이 선두그룹이 내려갔다는 방향을  잘못알려주기도 했지만

겨울산님이 지도를 잘 못 읽는 바람에 방향을 잘못잡았던 것이다.

방향으로 보아서는 내가봐도 직진이 맞을것 같은데,  겨울산님은 90도 우측으로 방향을 잡았다.

알바 후 열심히 정말 열심히 걸어 중간그룹을 따라갔는데

정작 알바를 시킨 장본인은  안그런척 중간그룹에 합류해 맛있게 간식을 먹고 있었다.

 

 

본격적인 내림길이 시작되는 부근에 이제 쌓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돌탑이 있기에  돌멩이 하나를 올려놓았다

특별한 바램이나 기도가 있는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마음을 비우고 산행을 계속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산조아 언니가 묻는다.

"뭐라고 기도했어?"

"오래오래 산에 다닐 수 있게 해달라구요"

겨우 돌멩이하나 얹어 놓고 분에 넘치는 걸 바란다며 궁시렁궁시렁^^*

 

 

내림길은 무척 미끄러웠다.

등산화를 신지 않고 온 어떤 산행객이 미끄러지면서 우리 일행인 천봉님을 덮쳤지만

다행히 건장한 체구와 바로 앞에 서 있던 커다란 나무 덕분에 밀려나지 않고 무사할 수 있었다.

 

슬쩍 건드리기만 하여도 돌멩이보다 더 잘 구를것만 같은 언덕위에 보름달님이 앉아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장난기가 발동해 "밀어드릴까요?" 했더니  깜짝 놀란다.

 

 

 

휴양림으로 내려서는 마지막 나무계단 앞에 세워진 돌탑.... 그 뒤의 신록이 어우러진 오솔길이 아름다웠다.

내겐 아무래도 잘 다음어진 나무계단보다는 거칠지만 구불구불 제멋대로의 그 길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 옆 나무에는 내 바램을 대신 적어놓은 듯한 표지기 하나가 붙어 있었다....일취  와  월장

 

일취는 못할지라도 월장.....아니 연장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으랴만

이년이나 지난 지금도 난 어찌 여전히 똑같을까?

다음달을..또 다음...그리고 다음 또 다음 해를 기대해봐야지.

 

 

 

 

백아산자연휴양림이 코앞에 다달았을 즈음에서야  백아산은 여인의 뒷모습같은 능선을 희미하게나마 조금 보여주었다.

안개때문에 전체적인 산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덕분에 좀 더 가까이에서 함께하는 산님들의 정다운 모습과 정겨운 마음들을 볼 수 있었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던것 같다.

 

 

하나로님이 즐겨 찍으시는 나의 클로즈업 사진이다.

못생긴 모습이 만만해서인지,  사진에 그다지 까탈스럽지 않은 내 성격때문인지

아니면 줄줄흐르는 땀 때문인지 가끔 들이댄다.

못생긴 모습 또한 바깥에 보여지는 내 모습이겠기에.....웃으며 바라볼 수 있다.

 

안개속을 걸을 때면 항상 헤르만헷세의 싯귀가 생각난다.

 

안개속을 걸어가는 것은 신기합니다.

숲마다 돌마다 호젓합니다.

다른 나무는 보이지 않습니다.

나의 생활이 밝았을 때는 이 세상은 친구들이 가득했었습니다.

이제 안개가 내리니 한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

 

 

참으로 의미심장한 시가 아닐 수 없다.

내 생활이 안개에 쌓여 있을 때도 친구들이 내 곁에 남아있도록 하려면 우선 내가 그런 친구가 되어주어야 하겠지.

산처럼 든든한 친구를 갖고 싶고

나 또한 산처럼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그런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