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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나를 만나다/산행일기(2005~2010)

나를 매혹시킨 자연성릉...계룡산

2009.  6.  6일  토요일

 

계룡산

충남에 있는 산이면서도 자주 찾아지지 않는 산.  그래서 가깝고도 먼 산 계룡산

당진 대전간 고속도로 개통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생각난 곳이 계룡산이었다.

원래 6일에 시계종주 두번째 구간을 한다는 얘기가 있었기에 다른 약속을 미루고 있었는데

시계종주를 마지막주에 한단다.

계룡산에 가고 싶었다.

갑사 계곡이 물소리도...   갑사 당간지주가 있던 숲속의 호젓한 느낌도 그리웠고

몇년전 3월에 향순이와 둘이서 오르던 빙판길의 연천봉 가는 길목의 조릿대 사각거리는 소리도 그리웠다.

 

까페에 공지를 올렸지만 동행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도 7일 좋은 산에 가는 산악회가 많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버스타고 혼자서라도 가야겠다 마음먹고 대중교통편을 알아보았다.

갑사에서 연천봉을 거쳐 자연성릉과 남매탑을 경유해 대전에서 친구를 만나고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다보면 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오솔길님이 가겠다는 꼬리글을 달아 놓았다.

이건 신청자가 아무도 없는것보다 더 난감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같은 산악회원이고 순수한 산행 동반자지만 남녀가  둘이서만 간다는 것은 아직 이곳의 정서상 부담스러운 일이고

오해를 받을 여지도 있었기에 망설여졌다.

 

몇몇회원에게 동행을 부탁했지만 다들 일정이 바쁘단다.

함께 가겠다던 고은엄마는 둘이 간다니까 뭔가 오해를 했는지..자꾸 부담스럽다며 동행을 못하겠단다.

다행히 짱돌님이  동행을 하겠다고 해서 셋이서 다녀오게 되었다.

 

당진으로 해서 고속도로를 타니 동학사까지 한시간 10분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애당초 갑사를 기점으로 원점회귀를 할 예정이었으나 갑사 들머리를 찾지 못해 동학사를 기점으로 산행을 하게 되었다.

내 계획에서 빗나가게 된것이 미안했던지 일행들이 갑사를 가자고 했으나 어차피 내가 걷고 싶은 길은 자연성릉이었으니

기점이 어디래도 아무 상관없었다.

 

오히려 미련을 남겨두어  또 올 수 있는 이유가 생겼으니 그것도 좋은 일이겠지

춘동학추갑사라고 하였으니 단풍이 들 때 다시 와도 좋겠지

 

8시 20분

동학사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남매탑으로 향했다.

장군바위를 경유하는 능선도 마음에 끌렸으나 오늘은 자신이 없어 그 길도 다음으로 미루었다.

계곡을 끼고  녹음이 짙어진 동학사 숲길은 아름다웠다.

서어나무, 까치박달의 주렁주렁 늘어진 열매가 탐스럽고 인상적이었다.

 

동학사에서 남매탑 오르는 길

이 길을 걸었던것이 언제던가

스물여섯...스물일곱?

여름휴가 때 직장동료와 둘이서 이곳을 찾았었다.

대전 친구집에서 하루 묵고는 네권의 화집을 배낭에 메고 금잔디고개를 넘어 갑사계곡 민박집에서 또 하루를 묵었었다.

운 좋게도 마음씨 좋은 산행객을 만나 무거운 배낭을 맡긴 채 편안히 넘어온 길이었다.

이십몇년이 지나고 다시 걷는 이 길

남매탑까지는 돌을 박아 넓고 편안하게 길을 닦아 놓았다.

그래서 남매탑까지는 쉬지 않고 올라보려 했으나 두어번 목을 축이며 잠깐씩 숨을 골라야했다.

오솔길님은 십년전 아들과 함께 이곳을 오르면서 남매탑이 계룡산의 정상인줄 알았단다.

지금 들으면 우스운 얘기지만 몇년전까지만해도 석문봉이 가야산의 전부인줄 알았던 나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남매탑에서 잠시 쉬며 과일을 먹는데  뒤따라 올라온 산행객이 자기 일행들에게 "저기 거북이 위에 앉아봐"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쪽을 바라보니  십여개의 쉼돌의 형태가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었다.

산행객들의 무병장수를 비는 의미에서 거북이 형상을 따 온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중생들을 생각하는 부처님의 자비로운 마음이겠지

 

삼불봉을 향하면서 우회도로 옆에 눈개승마가 많이 피어 있었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지나가던 산행객이 묻는다

"산삼 있어요?" 

ㅎㅎㅎ 산삼이 있으면 사진이나 찍고 있겠습니까?

삼불봉을 오르는 마지막 철계단 옆에는 미역줄나무가 꽃봉오리를 키우고 있었다.

삼불봉..세 분의 부처님이 앉아 계신 형상이라서 삼불봉이라는데....그걸 내 눈으로는 느낄수는 없었지만

조망은 정말 아름다웠다.

뒤쪽으로는 장군봉 능선이 장쾌하게 펼쳐져 있고, 앞쪽으로는  갈수없는 천황봉과 쌀개봉 능선...그리고 연천봉과 문필봉 관음봉이

멀리 한눈에 들어왔다.

삼불봉에도, 그리고 관음봉에도  각 봉우리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산능선 사진이 있었는데

사진만 보고도 봉우리들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마도 주변에 높은 산들이 없어서 그럴것이다.

이름을 불러 줄 수 있으니 조금 더 가까이에서 나와 산이 교감하는 듯한 친근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올들어 처음으로 함박꽃나무를 만났다.

향좋은 몇송이 흰꽃을 피우고 있었는데, 연인으로 보이는 산행객 둘이 서로 이 꽃이 뭐냐며 묻는 모습을 보며

함박꽃나무라고 알려주었다.

역시 이름을 불러 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삼불봉을 지나 자연성릉을 걸으면서 가끔씩 통제하는 탐방로 안내문을 보고는 무엇이 위험하다는 것인지 의아했었는데

뒤돌아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깍아지른 듯한 절벽과 소나무들이 곳곳에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절경뿐만이 아니라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이 마음까지 활짝 열리게 해 주었다.

자연성릉을 절반쯤 걸었을까?

멀리 까마득한 계단 오름길이 보인다.

저길 어떻게 올라가나.

삼불봉까지 오는 길도 너무 힘이 들었었다.

자꾸만 풀리려는 몸의 마디마디들을 추스르며 힘겹게 가고 있는데 까마득한 계단을 보니 겁이 났다.

그래.  하늘아래 뫼라는데..한발한발 오르다보면 또 올라지겠지.

천천히...천천히.... 조망을 즐기며 자연성릉을 지나고  관음봉 오르는 계단길도 쉬엄쉬엄 올랐다.

계단 입구 단애옆에 진달래 한송이 꽃을 피우고 나를 반겨 주었다.

 

관음봉...산의 모습이 후덕하고 자비로운 관세음보살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이름에 걸맞게 편안한 모습이었다.

정자가 세워져 있고 바로 앞의 바위위에 정상석이 세워져 있었다.

천황봉이 계룡산의 주봉이지만 군사시설때문에 지금은 갈 수 없는 길이어서 관음봉이 계룡산의 최고봉 역활을 하고 있단다.

정상석이 세워진 바위에서도 계룡산의 각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연천봉 방향과 천황봉방향,  지나온 자연성릉과 삼불봉 뒤쪽으로 삐죽이 고개내민 장군봉,  대자암과 갑사쪽 계곡

정자에서 감자와 빵과 과일로 요기를 하였다.

감자를 먹으라기에 난 시고 단 음식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오솔길님이  "아직 어린애구만" 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시고 단것 좋아하는 식성 뿐만이 아니라  남의 눈치 안보는 오만함?이나  사물을 보는 단순한 시선이나 생각의 유치함..등 등

 

연천봉을 가기 위해 일어섰다.

천황봉 방향으로 이백미터가량 진행하자 은선폭포 하산길과 연천봉을 향하는 삼거리가 나왔다.

하늘에 닿을 듯 이어진 봉우리라서 연천봉이라나.

문필봉을 우회하는 길은 오솔길을 걷듯 편안했고 서늘한 기운이 돌아 좋았다.

중간에 커다란 봉지를 들고 쓰레기를 줍는 듯한 행색이 초라한 아저씨에게 " 쓰레기를 주으시나봐요"

인사를 건네고는 발걸음을 떼는데..

아줌마...하며 불러세운다

"저...멀리서 와서 그러는데....먹을 것 좀 남았으면 줄 수 있을까요?  배가 고파서......"
일행의 배낭에서 남은 감자와 빵을 꺼내주었다. 물은 있단다.

어데서 오셨는데요? 하고 물으니 대전에서 왔단다.

먼곳도 아니네..우린 서산에서 왔는데

어쨌든 배고픈 사람에게 양식을 주었으니 기분은 좋다.

 

신원사와 갑사로 내려서는 삼거리를 지나 연천봉으로 향했다.

지하수를 뚫는 커다란 기계가 놓여있던 헬기장을 지나자 동원암?  동선암?   오름길 옆에 암자 하나가 공사를 하고 있었다.

연천봉 오름길에 쇠물푸레나무가 많이 눈에 띄였다.

연천봉의 조망 또한 좋았다.

앞으로 문필봉에 가려진 관음봉과 쌀개봉 천황봉이 보였고  어느 능선인지 산능선이 죽 이어져 있었다.

연천봉 끝자락엔 보기좋은 소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편안한 쉼터를 주었다.

그 소나무아래 앉아 건너편 저수지를 바라보며 맞는 바람이 시원했다.

짱돌이  자기의 인생철학을 얘기했다.

버려야한다고.....

버리는 것이 그리 쉬우면 수도를 하는 스님들이 재산때문에 싸움질을 하겠는가

본인 자신도 아직은 승부욕이 남아있어 산을 타면서도 남에게 지고 싶지는 않단다.

그 승부욕 또한 버릴 수 없는 하나의 욕망이거늘...

그렇게 연천봉에 버릴거 버리고...  말들도 버리고 되돌아 나왔다.

 

은선폭포까지 두시간 남짓한 내림길.

오솔길님이 7시까지는 태안에 도착해야 한다지만 시간은 충분했다.

내림길은 여전히 힘들었다.

돌을을 정비하여 그다지 험하지 않은 돌계단길이었지만 내딛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두시가 넘어 하산을 시작했는데 그 시간 은선폭포쪽 등산로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얼마나 남았느냐는 물음에 나와 짱돌은 거의 다 왔다고 말해주었지만, 오솔길은 정직하게 말해주었다.

각자의 경험에 의한 생각의 차이가 말하는 것에도 이런 차이를 만들었다.

 

계룡8경이라는 은선폭포의 물줄기는 말라 있었다.

녹음 사이로 물줄기가 떨어지는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시원하고 아름다웠지만 아쉬움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폭포주변부터 조록싸리의 작고 붉은 꽃들이 피어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동학사에 도착하기 전 계곡물에 발을 담구었다.

피로를 씻는 시원함에 취해 물속을 바라보는데 가재 한마리가 나를 보고 있다.

오솔길이 사진을 찍으라며 들어올리는 순간...저런...제 다리를 떨구어 버리고는 도망을 친다.

저를 어찌하려는것이 아닌데.....

그런 마음들이 서로 소통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긴 언어가 통하고 모습이 비슷한 인간끼리도 소통이 안되는데...동물들과의 소통을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향운교를 지나고 동학사 대웅전을 지나고 미타암, ..암...암   담을 사이에 두고 이어진 암자들을 지나

숲길을 걸어 4시에 산행을 끝냈다.

주차장근처 식당에서 비빕밥과 동동주 해물파전으로 허기를 채우니 부러울게 없다.

산행에 동행에준 일행들 덕분에 몇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으니 그들이 고맙다.

이제 갑사 들머리 길도 알아두었고, 먼 길도 아니니 가을이 오기 전에 또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