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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나를 만나다/산행일기(2005~2010)

꽃과 나무와 안개와 친구들..가야산

2009.  5. 23일 토요일

누구랑?   맑은바다, 덩순이, 나 셋이서

 

.

원효암에서 일락사까지..

눈 앞에 그려지는 그 길을 걷고 싶었다.

그 길이 왜 좋은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씩 걷고 싶은 생각이 드는, 그리운 길이다.

어마도 어느해 늦은 가을날...내 마음이 서러웠던 그 날에

그 산길을 걸으며 위안을 받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한테도 연락이 오지 않으면 친구와 둘이서 걸어볼까 생각했었다

마침 맑은바다님한테서 전화가 와서 함께 하기로 하였다.

 

터미널발 9시 30분 버스를 타기로 했는데 여덟시쯤 되었을까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일기예보에는 오전중에 개인다 하였으니 좀 기다려봐야겠다 싶지만 신경이 쓰인다.

다행이 비가 그쳐서 예정된 버스를 탔다.

얼마쯤 달렸을 때 라디오에서 깜짝 놀랄 소식을 전해주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였다는...

그것도 자살을 기도하였고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사망하였다는 소식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운 소식이었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의 선택으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지난해던가

덕산에서 서산까지 버스요금이 오천얼마로 기억되어 만원씩 회비를 걷었는데

아람아파트까지 2,600원이었다.

예상에서 빗나가서인지 무척 싸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람아파트에서 원효암가는 편안한 길은 무척 생소한 기분이다.

자동차로만 다녔지 걸어서는 처음이라서인지 느낌이 많이 달랐다.

이제 야생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새내기 맑은바다님은 길가의 꽃이란 꽃은 모조리 관심을 보인다.

이것저것 묻는데  방가지똥은 생각이 나지 않았었다.  때죽나무..땅싸리, 족제비싸리 등등

꽃들과 눈 마주치며 얘기나누며 가는 길이 즐겁기만 하다.

 

(족제비싸리 꽃)

 

원효암 못미쳐 오른쪽으로 난 길을 들머리로 산행을 시작하였다.

비가 내린 뒤라서 산길은 촉촉하니 바람도 서늘하니 걷기에 좋았다.

첫번째 전망바위에 오를때까지는 조망도 좋았다.

앞에 덕숭산도 보이고 수암산과 용봉산의 길게 누운 모습도 보였다. 덕산 간 도로도  시원하게 보였다.

  

(대팻집나무 암꽃...시월쯤에 열매를 보러 가야겠다)

 

(소나무 암꽃)

 

호젓한 산길이 여자 혼자 걷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느낌인데 셋이 걸으니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산길도 정비되어 갈림길 곳곳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 예전처럼 다른곳으로 내려갈 염려도 없겠다.

소나무 오솔길과 신록이 우거진 숲을 지나고 원효샘 갈림길을 지났다.

사실 원효샘 갈림길은 오르는 동안에는 알아채지 못했었다.

위에 올라와 눈에 익은 소나무 한그루가 있어 혹시나하고 다가가보니 바로 원효샘위로 솟은 바윗길 윗쪽이었다.

그곳에서 윤노리 나무를 만났다.

 

 

 

조금 더 올라 조망이 좋을것 같은 바위가 있어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그 바위아래로 오름길이 있다는 바다말에 확인하기 위해 바위끝으로 가다가 스틱을 떨어뜨렸다.

어쩌나....

미끄러져 내려가는 스틱을 보며..........

그만!   그만! 을 외쳤다.

참으로 우스운 상황이지만 내 말을 들었는지 스틱은 바위끝에서 멈추어섰다. 

 

(원효봉에서...안개가 덮히기 시작했다)

 

원효봉에 도착했다.

우뚝하니 그곳에 서 있는 돌탑하나가 생경스러웠다.

언제부터 세워졌던 것일까

누구의 소망이 저리 차곡차곡 기도로 쌓여가는 것일까

누군가는 밑에 엎드려야 하고, 누군가는 보이지도 않게 속에 끼어야하고

밑에 돌은 위에 돌을 생각해야하고, 위에 돌은 밑에 돌을 생각하며 올라가야 하는  돌탑

그렇게 완성된 돌탑이기에 돌탑하나를 보면서도 경건한 마음이 드는것일게다.

 

날씨 때문인지...뜻밖의 비보에 놀란 때문인지 산행객을 보기가 힘들었다.

원효봉에서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을 만났고

이후 가야봉 가는길에 다섯사람을 더 만났다.

헬기장에서 가야봉 오름길이 걱정했던대로 미끄러워 무척 조심스럽게 올라가야했다.

그 길엔 단풍취며, 천남성, 산딸나무, 층층나무등이 많이 있었고

회잎나무인가 했는데 꽃을보니 참회나무로 보이는 나무들이 무척 많이 있었다.

 

 

가야봉에 도착했을 땐 안개가 절정에 달해 있었다.

예닐곱쯤 될까?  한무리의 산행객들이 가야봉에 표지석을 찾을 수 없고 조망을 볼 수 없다고..아쉬움들을 토로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왔다는데.. 그 멋진 산세를 보지 못하니 아쉬울만도 했다.

 

암릉길 아래 쉼터에서 또 한무리의 산행객을 만났다.

아이도 있는것으로 보아 가족으로 보였는데 안흥에서부터 시작해서 금북정맥을 타는 중이라고 했다.

안개때문에 조망도 없을뿐더러 미끄러울까 바윗길을 포기하고 우회도로를 통해 석문봉을 향했다.

안개때문에 눈에 보이는 조망은 없었지만  마음으로 그 길을 보며 여유롭게 걸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아주 쉽게

원효암에서 원효봉 1시간

원효보에서 가야봉 1시간

가야봉에서 석문봉 1시간

석문봉에서 일락사 1시간

그렇게 시간을 계산했는데 석문봉을 도착하기도 전에 다섯시간이 넘어 버렸다.

바다의 출근을 염두에 두지 않았었기 때문에 서두를 이유가 없었는데 출근을 해야 한단다.

미리 서둘렀으면 좀 더 빨리 걸었을것을

그래도 뒤돌아보는 능선이 아름답다.

가야봉의 시설물은 안개속에 숨바꼭질하고 구름은 또 어느새 이쪽 능선에서 저쪽으로 능선을 넘어가 있었다.

  

 

석문봉에는 산행객들이 좀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그곳에도 몇사람 되지 않았다.

혼자서 금북정맥을 한다던 이가 증명사진을 찍어달라기에 한장 찍어주었다.

다행히 동창 호연이가 도비산을 간다는 귀권에게 일락산을 가라며 우리의 귀가까지 부탁해주어

편안히 올 수 있었다.

 

 

일락사 임도로 내려서며 천천히 천천히 여섯시간 반을 걸은 산행을 끝냈다.

임도변에 핀 때죽나무꽃이며, 참빗살나무꽃등을 찍으며

나를 내려놓고 그저 자연의 일부로 돌아갔던 시간을 보내고

이제 다시 나를 등에 짊어지고 걸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