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16일
올들어 가장 추울뿐만아니라 거의 한세기만에 찾아오는 추위라고 했다
그 추위속에 산에 가고 싶어하는 내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살면서 가장 추웠던 기억들을 떠올려보았다.
손이 시려워 장갑을 낀채 오들오들 떨면서 라면을 먹던 겨울 가야산?
땀에 흠뻑젖은 옷에 바람이 스밀세라 배낭조차 내리지 못하고 김치찌개를 먹던 여름 가야산의 어느날?
몸이 추웠던 날들이 몇날이 떠올랐다.
그리고 몸보다 몇배는 더 춥고 마음이 시려웠던 몇날들도 함께...
괜히 겁을 먹었구나 싶게 입구의 날씨는 포근했다.
사실 겁먹었다기보다는 기대가 컸었다
올들어 가장 춥다는 날
천오백고지의 칼바람은 어떨까
내 몸뚱아리는 그 칼바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
올라가는 동안 산보다도
구름한점없이 파란 하늘이
내 눈과 마음을 온통 사로잡아버렸다.
산에 쌓인 눈이 아직도 하얀것이 이상할만큼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이었다.
산소통을 등에메고 산호초속을 유영하는 다이버가 된듯한 착각 속에
땀이 배어나는 몸도 물속에서처럼 가벼웠다.
그건 줄지어 늘어선 사람들 덕분에 느린 걸음으로 오를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을테지만.
조망좋은 곳에서 사진찍히기를 좋아하는 그녀
자세를 잡고 기다리고 있다.
용기를 내어 장갑을 벗고 한컷
이후론 장갑을 벗지 못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산이다.
아래 맨 끝능선이 지리산일까
그 능선 어디에 천황봉도 있을텐데
내겐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없고
내 곁엔 그것을 알려줄 사람도 없다.
산은 그냥 산인것을....
그냥 산으로 바라보면 되는것을
방금까지 곁에 있던 일행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뒤에 오는 사람의 눈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갑작스레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눈만 내놓은채 계단을 오르는 저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 무엇과 소통을 하고 교감을 나누고 있을까
앞사람의 배낭을 몇번인가
머리로 들이받았다.
이곳에선 이제 차라리 혼자인것이 편했다.
끊임없이 이어진 대열에서 잠시 빠져나와 느린 동작으로 풍경을 담았다.
골짜기를 휘돌아 몰려오는 칼바람도 아직은
티셔츠 한장으로 버틸만했다.
친구가 묻는다
"넌 춥지도 않니"
정상의 칼바람은 매서웠다.
목도리로 두건으로 감싸지지 않은 광대뼈부근이 아려왔다.
정상석을 끼고 추억을 남기려는 많은 사람들틈을 슬쩍 지나며 끼어들었다.
오늘 산에 오는 길은 멀고 불편했다.
그래도 오길 잘했다.
퉁퉁불은채 맷돌밑에 깔린 콩처럼
부풀었던 내 마음에도 돌덩이 한장 올려질터이지만
다음 어느 산에 또
그 돌을 내려놓으려 갈 것이기 때문이다.
달려와 안기라는 듯 활짝펼쳐진 서봉에도 언젠가는 안겨보리라
유난히 희게 빛나는 서봉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월성재로 내려서며 뒤돌아본 정상쪽과
아래의 삿갓봉 무룡산 방향
이 칼바람과 가지에 달라붙은 상고대를 견디고 있는 나무의 겨울눈은
눈부신 봄날을 꿈꾸고 있겠지
꿈은 모든것을 견디게 하니까.
내려오는 길은 모두들 걸음이 빨랐다.
한발 비켜 담고 싶은 풍경도
대열에 밀려 그냥 올 수 밖에 없었다.
물론 핑계이겠지만...
자꾸만 미끄러지며 올라오던 한 산행객은 잘 다녀갔겠지
이상해서 발을 보니 아이젠도 없었는데...
산행에서 가장 큰 배려라는 것은
나 자신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다.
영각사~남덕유~월성재~월성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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