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20
방태산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김주영님의 소설 "아라리난장"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줄거리도 주인공의 이름도 가물가물합니다만
주인공들이 태안 앞바다에서 중국어선과 꽃게였던가....선상밀매를 하다가 적발되어 도망쳐 들어간 곳이
방태산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얼마나 오지이면 그곳으로 도망쳐 들어갔을까 궁금하여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산이기도 했지요.
정감록에도 삼둔사가리라 해서 난리를 피할 수 있는 곳이라 기록되어 있다더군요.
삼둔은 오늘 산행들머리였던 살둔, 생둔, 월둔
사가리는 적가리 아침가리 연가리 명지가리입니다.
틀릴수도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은 한번 검색해보시길바랍니다.
몇년전 방태산휴양림에서 적가리골을 거쳐 주억봉을 오를때에도
아침가리골 계곡을 첨벙거리며 내려올때에도
자연의 순수함을 지닌 산이구나 하고 느꼈었지만
세번째 방태산 산행인
오늘 내려온 어두원골은 정말 오지중에 오지더라구요.
날고 기는 문명의 이기가 전혀 쓸모없는 곳
건강한 몸과 동물적인 감각과 합쳐진 서로의 마음만이 필요한 곳
힘들었지만 정말 잊지못할 산행이 되었네요.
생둔 들머리 입구에서 단체사진을 찍어주시는 헐덕고개님
들머리 초입부터 오름길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적당한 그늘과 곳곳에서 반겨주는 서늘한 바람이 산행하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였지요.
쓰러져 길을 막고 선 나무들을 때로는 몸을 굽혀 지나고
때로는 짧은 다리로 힘겹게 건넙니다.
그냥 지날 수 있는 나무앞에서도 자동적으로 고개가 숙여지네요.
두메고들빼기
병조희풀
여로
바위채송화와 돌양지꽃이 예쁘게 핀 바위길을 건너기도 하지만
걸음 따라가기도 바빠 사진찍을 엄두조차 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동네에서 쉬 볼 수 없는 여로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네요.
단풍취도 한두송이씩 피어나고 있고
모싯대도 자주 보였지만 눈도장만 찍어야했답니다.
조망이 없으니 땅만 쳐다보고 걷습니다.
주변에 꽃들이 없었다면 참 힘겨운 산행길이 되었을것 같습니다.
그래도 인위적인 손길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사람들의 발길만으로 다져진 산길을 걷는것이 참 오랫만이어서
그것으로 위안을 삼습니다.
침석봉에서
A코스팀은 초반부터 앞서나가고
왼종일대장님의 인솔하에 왕눈이토끼언니를 선두로
B팀은 거북이 행진을 이어갑니다.
말나리
숫돌봉은 어딘지도 모르고 지나쳤네요.
첫번째 간식시간
흠뻑 땀 흘린뒤의 참으로 달콤한 휴식입니다.
새콤달콤한 파인애플과 이를 얼얼하게만든 얼린 토마토.
동자꽃
겨울새님과 왕눈이토끼언니가 꽃들이 궁금한가봅니다.
동자꽃의 전설을 들려줬더니 겨울새님이 "슬픈꽃"이네 하며 한번 더 쳐다봅니다.
슬픈 전설을 지닌 예쁜 꽃이죠.
아름답고 푸른 커다란 날개를 가진 산제비나비가
동자꽃에, 말나리에....내려 앉아 커다란 날개를 나풀거립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몇번을 시도해보지만 번번이 허사가 되네요.
우리동네 붉노랑상사화 필 때 다시 만나야할까봅니다.
누군가 보지 못했으면 침석봉도 그냥 지나칠 뻔 했습니다.
표지도 참 소박합니다.
나무에 덩그러니 이름표 하나 매달아 놓았네요.
조금 지나 점심상을 펼쳐놓았는데
밥상조차 방태산과 아주 잘 어울리는 소박한 밥상입니다.
취나물에 마늘꽁 양파절임, 깍두기.....
자연속에서 자연을 먹고 있네요.
어느 시인의 시였는지 제목도 생각이 안나지만
나물을 먹을 것은 나물만을 먹는것이 아니라
그 나물위에 내려앉은 햇살과 바람과....그 모든것을 함께 먹는 것이라는 시를 읽은적이 있습니다.
산의 정기를 들이마시며 산길을 걷는것도 행복하지만
이렇게 소박한 밥을 함께 나누어 먹는시간 더할 수 없이 행복했습니다.
저도 몇번 그런적이 있기는 합니다만
사실 휴양림이나 계곡에서 풍겨오는 고기냄새는 별로 달갑지 않거든요.
자연에서는 자연과 닮은 소박한 먹거리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개인산정상에서...저 뒤쪽에 정상표지가 하나 더 있었다는데 보지 못했네요.
개인산까지는 완만한 오름길이네요.
개인산을 지나고 한참동안까지도 조망은 전혀 없습니다
이제 걸으면서 만나는 첫번째 내림길에서 내려서자고 합니다.
숫돌봉, 침석봉, 개인산
그래도 이름표가 붙은 정상에서는 조금이라도 조망이 있겠지 했었는데
우거진 숲길은 하늘도 땅도 다 막아버렸습니다.
처음보는 나비를 만났다고 좋아했는데 나방이라네요.
뿔나비나방
나무가지 사이로 저만치 구룡덕봉이 보입니다.
뭔가 아쉬웠던 까리하군님이 구룡덕봉엘 다녀오겠다고 앞서 나갑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름은 불러주지 못할지라도 저도 강원도의 산군들을 보고 싶었지요.
보기에는 거리가 꽤 되어보이는데
거리가 얼마되지 않는다는 말을 믿고 용기를 내어 따라나섰지요.
조망도 없이 우거진 풀숲길
오늘 산행중에 처음으로 바람처럼 가볍게 걸어봅니다.
친구와 도란도란 걷기엔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길이었지요.
한참을 걷다보니 겨울새님과 영원님도 구룡덕봉엘 가시겠다고 금방 따라오셨네요.
여차하면 되돌아 올 생각으로 그들을 앞서 보내고 뒤를 따라갑니다.
저만치 앞에 나홀로 시그널이 줄줄이 달려있네요.
아마도 내림길 표시를 해놓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길로 빨간돼지님과 산벗님 잡초님이 올라오시네요.
중간에 길이 끊겨서 갈 수가 없었답니다.
후미팀이 늘어난 것도 반가운일이었지만 저는 또 다른 이유로도 무척 반가웠습니다.
죽으나사나 구룡덕봉까지 모두 함께 가야 했으니까요.
일찌감치 까리하군님을 따라나섰던것이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뒤에 남았더라면 따라오느라 훨씬 더 힘들었을테니까요.
작은표범나비...계류를 낀 초지나 고원의 습지에 산다는군요.
이제 길도 널찍하게 열리고 줄줄이 산군들도 한눈에 들어옵니다.
구룡덕봉도 코앞으로 다가왔네요.
이 길을 안 걷고, 이 풍경을 보지않고 돌아갔더라면 얼마나 후회스러웠을까요.
지금 내가 이 곳에 있을 수 있다는것이 참 행복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지나온 능선길이 보이네요.
저기에 숫돌봉도, 침석봉도 있겠네요. 개인산도 보이는지...
등로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군들
구룡덕봉을 바라보며
머리위에는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것처럼 먹구름이 밀려오는데
저 멀리 산군들은 햇살에 반짝입니다.
한두방울 뚝 뚝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구룡덕봉에 오릅니다.
양쪽에 전망데크가 있네요.
무슨산??? 무슨산???
봐도 모르지만 그냥 보는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합니다.
이제 구룡덕봉 아래 목책을 따라서 하산을 시작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일들은 상상조차 못하고
일찍 내려가면 시원한 맥주한잔 사시겠다는 바람언덕님.
시원한 계곡물에 발담그고 물장구치며 먹을 생각으로 왕눈이토끼언니 배낭뒤에 아껴둔 꿀꽈배기와 꼬깔콘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답니다.
더덕향을 맡으로 목책을 따라 내려오니 산길이 산죽밭에 숨어버려 보이지가 않습니다.
이쪽저쪽 몇번을 살핀뒤에야 길을 찾아 내려섰지요.
정상 바로 아래인데도 여기저기서 시원스레 계곡물 소리가 들려오는것을 보니
정말 깊은 산임을 알겠네요.
예뻐서 찍긴 했는데...말발도리인지 물참대인지 모르겠네요.
멸가치도 막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노루오줌에 앉은 거꾸로여덟팔나비.....봄형하고 달라서 알아보지를 못했네요.
흰물봉선
길 옆에 꽃이 보여 잠시 한눈을 팔았더니
바람언덕님께서 한눈팔면 큰일난다고 걱정스레 말씀하시네요.
사방에서 물이 모여 계곡이 자꾸만 크고 깊어져갑니다.
계곡을 건너야하는데...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등산화가 젖으면 힘들것 같아
벗어서 건너편으로 던져놓고 계곡속으로 들어갑니다.
곰취
구실바위취
저와 겨울새님이 운동화를 벗는것을 보더니
까리하군님께서 왕눈이토끼언니에게 업히라고 등을 내밀더라구요.
그걸 보며 그냥 조금만 기다려볼걸 그랬나 살짝 후회를 하는 찰나
두 분이 멋지게 동반입수를 하네요 ㅎㅎ
그동안 저는 성선설을 믿었었는데
인간에게 성악설이 더 어울리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남의 실수가 왜 그리 재미있는걸까요.
다행히 아무도 다치는일없이 무사히 산행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계곡을 몇번을 건넜는지 모릅니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열번도 넘을것 같네요.
계곡 이쪽저쪽을 오가며 길을 찾느라 한시도 긴장을 늦출수가 없었지요.
계곡을 따라내려오다 길이 사라져 주변을 살펴보면
계곡건너 저편에 희미한 산길이 보이곤 했지요.
처음에 몇번은 등산화를 적시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쓰며 계곡을 건넜는데
어찌해볼 도리가 없으니 그냥 풍덩풍덩 계곡속으로 들어갑니다.
물살이 어찌나 세던지
왼종일님과 까리하군님 도움을 받으며 건너는데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한때는 전봇대 소리를 들었던 튼실한 다리지만
제 다리를 제 맘대로 바위에 올려놓을 수가 없더라구요.
산행시작한지 여덟시간에 까가워지고
어디가어딘지 분간할 수 없었던 어두원골 계곡도 이제 거의 끝나가나 봅니다.
다시 세상과 연결이 되어 A팀도 다 내려왔다는 소식에
마음이 급해지네요.
등골이 오싹할만큼 차거운 계곡물에 대충 몸을 헹구나니
피로까지 싹 풀리는듯 합니다.
트럭뒤에서 흔들리며 산을 내려오는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지요.
바람의 시원함을 느끼며 내려왔는데
지금 코가 근질근질합니다.
어두원골 계곡이 장난이 아니니 어지간하면 A코스를 따라가라는 겨울산님의 충고를 들었었지만
그 빠른 걸음을 따라갈 수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어두원골
길고 힘들었던만큼 즐거움도 큰 산행이었습니다.
2013. 7. 20
살둔마을~ 숫돌봉~ 침석봉~ 개인산~ 구룡덕봉~ 어두원골~ 개인산장~미산리
'산에서 나를 만나다 > 산행일기(2011~2015)'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심사 그리고 일락산 임도 걷기 (0) | 2013.08.05 |
---|---|
가야산은 지금 나비천국 (0) | 2013.07.28 |
오랜 친구와 걷기....가야산 (0) | 2013.07.13 |
대야산 (0) | 2013.06.20 |
원효봉 (0) | 2013.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