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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나를 만나다/산행일기(2011~2015)

함양 영취산

 

 

 

 

 

 

2013. 8. 17

 

부계정사~ 제산봉~ 덕운봉~ 영취산~ 선바위고개갈림길~ 부전계곡

대략 12킬로  산행시간 7시간 (휴식시간 포함)

 

 

 

 

산행거리 12킬로  단축코스도 없는 나홀로산우회 산행에 따라나선다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접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야산 번개산행에서  산악회 회장님의 말씀

계곡에서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7시간 30분의 산행시간을 줄테니 걱정하지 말라는군요.

설마 그 시간안에 걷을 수 있겠지?

그래 걸을 수 있을거야.

지난 달 방태산과 비슷한 거리, 거기다 방태산보다 높지도 않으니 말이지요.

물놀이를 포기하면 가능할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출발전부터 가슴 쿵 내려않게 하는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든든한 맏언니 왕눈이토끼언니가 못 오신다구요.

파랑새 등반대장님께서는 산행시간 일곱시간을 주시겠다네요.

30분 그 시간이 내겐 얼마나 금쪽같은 시간인데 ㅠㅠ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걸음을 따라갈 수 없어 혼자 걸어야할지도 모를 만약을 대비해서

중간중간 내려서는 길을 지도로 꼼꼼히 살펴보고

같은 코스를 다녀 온 이들의 산행기도 몇편 찾아서 읽어 보았지요

 

예정했던대로 여덟시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맑은 부전계곡을 끼고 조금 걷다가 오른쪽으로 등산로를 따라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오릅니다.

길 옆에는 며느리밥풀꽃이 한창이고 노란 마타리도 드문드문 보이는군요.

 

 

 

 

제산봉에 오르면서 몇군데 조망터에서 한 숨 돌릴겸 주변을 둘러봅니다.

아래사진 왼쪽의 뽀족한 봉오리가 남덕유에서 이어지는 무룡산이라는군요.

 

 

 

흰구름이 걸려있는 봉오리가 백운산이랍니다.

 

 

잠시 쉬려고 바위에 자리를 잡았는데

바위 한쪽에 작은 웅덩이가 보이네요.

이끼 때문에 물속은 보이지 않았지만 뭔가가 살고 있는것은 확실해보입니다.

잠시 후 아주 먼데서 들려오는 메아리처럼 무슨 소리가 들려  귀 기울여보니

웅덩이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더라구요.

어서 가라는 것이 아니고, 반갑다는 말이었겠지요?

산꼭대기에서 개구리를 보는 것...

도락산 신선봉과 강천산 그리고 오늘이 세번째입니다.

 

 

아래.. 계관산이라 했던것 같네요.

 

 

제산봉을 앞에두고 아무리 애써도 앞 사람을 따라갈 수가 없으니

그냥 내 걸음으로 걷기로 했습니다.

이후로 서풍님께서 제 느린 걸음에 맞춰주셨습니다.

누군가의 발목을 잡게 되는 것

그것이 항상 마음에 걸립니다.

그냥 혼자 걷게 놔두면 마음 편할텐데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더라도 혼자두고 갈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제산봉은

나무에 걸려있는 표지판이 없었다면 산봉우리인줄 알아채지 못할만큼 밋밋하네요

 

 

 

 

 

제산봉을 지나 도착한 헬기장

겹겹 마루금들을 하나하나 짚어 이름을 부를 수 없지만

사방으로 펼쳐진 조망이 시원시원합니다.

저 멀리 극락바위로 짐작되는 작은 암봉도 보이구요

 

 

 

 

 

 

 

 

 

 

 

 

 

안부로 내려서는데 두런두런 얘기소리가 들립니다.

쉬고 있던 일행이 막 출발을 하고 있네요.

큰소리로 까리하군님을 불러세웁니다.

산행중에는 별로 말이 많은 편이 아닌데 아주 재미있는 산행기를 쓰는

젊은 친구입니다.

 

 

 

 

 

 

 

고개마루에 올라서니 극락바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 회원님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오른쪽으로 꺽어드는 갈림길이 희미해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라는데

진행하면서 바로 보이기 때문에 조금만 신경쓰면

그냥 지나칠 일은 없을것 같습니다.

바위로 향하는데 돌아나오는 회원님들의 표정이 정말 행복해보입니다.

 

 

 

극락바위에서의 풍경들

 

 

 

 

 

 

산악회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다가  산군들을 하나하나 읊어주시네요.

가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어 마음을 접었던 황석산, 기백산, 거망산

그리고 육십령에서 이어지는 할미봉의 멋진 바위.

육안으로는 할미봉도 보였는데 사진에서는 보이지가 않는군요.

왼쪽 맨 뒤 능선의 서봉과 남덕유산...

다른 곳 다른 방향에서도 다시 알아볼 수 있을지...

 

 

 

 

회장님께서 절대로 당기지 말고 사진을 찍으라고 하셔서 무슨 이유인지 궁금했었는데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시그널을 달다가 나뭇가지에 상처를 입었다네요.

산에 대한 열정이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극락바위는 멀리서 볼 때는 하나로 이어진 바위덩어리 같았는데

가보니 따로따로 올라야 하는 세개의 암봉이더라구요.

남덕유산이 배경으로 펼쳐진 마지막 암봉의 풍경이 제일 멋져보이는데

두번째에서 멈췄습니다.

 

 

 

 

너무 멋진 조망에 일어서기가 아쉽네요.

왜 극락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이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그곳이 어디든지 모두 극락일것 같습니다.

 

 

 

 

 

 

 

 

저~ 뒤쪽 능선이 장안산일거라 짐작해보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네요. 

 

 

 

 

 

덕운봉을 지나고

걸어온 길도 잠시 뒤돌아봅니다.

 

 

 

 

조금전에 덕운봉을 지났는데 이곳에도 덕운봉이 있네요.

아마도 백두대간길이 이곳부터 연결되는것 같습니다.

이제 영취산을 지나 부전계곡 갈림길까지 백두대간길을 걷게 되겠네요.

 

이쯤에서 일행 한명이 다른 사람의 짐을 지고 있어서 먼저 가야겠다고 하네요.

잠시 진행하다 갈림길이 있어 봉우리쪽을 향했는데

부전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로 이어지는것 같네요.

다행히 산죽밭을 십여미터 헤치고 나오니 영취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와 만나지네요.

 

 

 

영취산 정상에 다달할 무렵부터 은꿩의다리가 종종 보입니다.

 몇년만에 다시 만나는 꽃이라 무척 반갑습니다.

며느리밥풀꽃과 더불어 오늘 산행중에 제일 많이 만난 꽃입니다.

선바위고개 근처에서 만난 멸가치와 내림길 초입 산죽밭 근처에서 물봉선을 만났는데

야생화가 그리 많지는 않네요.

 

 

 

 

 

햇빛이 새어들어오는 돌계단을 오르니 영취산 정상입니다.

정상에 오르니 터줏대감이라도 되는듯이 정상석을 떠나지 않는 암끝검은표범나비가 반겨줍니다..

맞은편에서 올라오신 몇분의 산님께서 배낭뒤의 시그널을 보시더니

저 아래 선바위고개에서 나홀로회원님 몇분이 식사를 하고 계시더라고 알려주시네요.

바람처럼 달려가고 싶었지만...그럴수가 없었습니다.

동행이 오는 도중에 모자를 잃어버려 발길을 되돌렸거든요.

바로 정상을 오르기전에 쉬었던 곳에서 잃어버린듯 한데

되돌아가다보니 그곳이 어디인지 가늠이 안되더랍니다.

잠시 알바를 했던 산죽밭까지 다녀오셨다네요.

 

 

그늘이 없는 영취산 정상은 무척 뜨겁습니다.

무령고개에서 올라오는 바람은 정상을 바로 앞에두고 힘이 들었는지

정상까지 오르지 못하고 휘돌아 나가네요.

어떤 이의 산행기를 보면서 30분이면 영취산 정산에 닿는다는

무령고개에다 날 내려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었는데

그랬다면 멋진 극락바위의 멋진  조망을 알 수 없었겠지요.

 

 

암끝검은표범나비

 

 

 

 

 

 

 

수풀꼬마팔랑나비

 

 

 

 

 

 

 

표지판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데...

음....

"아저씨!  잠깐 여기 이쪽에 좀 서 주시겠어요."

지켜보던 산행객 한분이 이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금방 따라하시네요.

나중에 회원 한분이 사진을 보시더니

인어공주, 켄타우로스, 스핑크스 중에 맘대로 하나 골라잡으랍니다.

당연히 인어공주지요 ㅎㅎ

 

 

 

 

 

선바위고개 표지판 아래 파란 의자가 하나 놓여있습니다

어느 산행객이 직진하면 백운산이라고... 여기 갈림길에서 내려가야 부전계곡이라는군요.

산행 안내시 설명해준 나무의자도 없고

시그널도 없는것으로 봐서 이곳으로 내려섰을리 없을것 같지만

아무래도 언덕을 하나 넘으려면 시간이 더 지체될것 같아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다른 산악회의 일행들을 따라서 부전계곡으로 내려섭니다.

내림길 초입... 산죽의 드러난 뿌리때문에 미끄러질까 아주 조심스럽습니다.

급경사의 산죽길이 끝나고 이어진 거친 너덜길

그나마 마른 계곡이라 다행이었지요.

고개를 하나 넘었으면 이보다는 덜 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선두팀의 하산길도  몇번씩 미끄러진 회원들이 여럿일만큼

무척 험하고 힘들었다네요.

 

 

 

 

 

 

 

 

 

 

 

 

 

 

그렇게 삼십여분을 내려오자  계곡의 물소리도 들리기 시작하고

제대로된 길을 걸을 수가 있었지요.

계곡의 곳곳에서 물속에 들어선 사람들을 보면서 얼마나 부럽던지요.

잠시 발 담글 여유도 없이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바로 옆에서 시원스레 소리내며 흘러내리는 계곡물도 그림의 떡이 되고 말았습니다.

 

처음 약속했던 일곱시간 반의 산행시간을 주었더라면

그림의 떡을 손에 쥐고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을텐데요

버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생각에

대충 씻으면서도 마음이 급하여 허둥댑니다.

 

 

 

 

 

 

 

 

 

 

 

오늘 동행이 되어주신 서풍님께 걸으면서 많은 얘기들을 들었습니다.

때로는 사각거리는 산죽 소리에 말 소리가 묻힐 때도 있었지요.

아는 얘기도 있었고 몰랐던 얘기들도 있었지요.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것

몰랐던 것들을 알아가는 것

참 즐거운 일입니다.

산죽밭을 걸어가면서 제게 묻습니다.

산죽이 사각거리느냐구요.

그때는 무슨 의도로 물어보는지 몰랐었는데

시 한수를 읊어 주시네요.

 

 

안도현님의 "산죽"

 

그 사람들 발자국 소리 따라 가다가 멈춰 선 산죽

그 사람들 모여 찬밥 나눠 먹던 자리마다 우거진 산죽

그 사람들 파르르 떨리던 눈썹처럼 사각이는 산죽

그 사람들 눈 뜨고 죽은 빈 숲 파랗게 밝히는 산죽

 

산죽길을 걸으면서 서풍님께서 들려주신 시입니다.

슬픈 시였지만

산죽길을 걸을때면 생각이 날것 같습니다.

 

 

 

2013. 8.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