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아마도 개심사를 다녀오는 길이었나보다.
친구 차에서 내리려는데
"뒷자석에 책 있으니 가져다가 봐" 하는 말에 뒷자석을 살펴보았다.
"어머니 학교" 와 "아버지 학교" 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먼저 손이 가는대로 어머니 학교를 집어 들었더니
"두 권 다 가져가서 봐" 한다.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 학교를 펼쳐보았다.
나는 시집을 볼 때 차례대로 보지 않고
그날 그날 펼쳐서 나오는 페이지를 보곤 하는데
딱 책을 펼치니 80페이지의 "기도"라는 시가 나왔다.
눈으로 슬쩍 한번 훝어보고는 소리내어 읽어내려갔다.
세번째 연을 읽을 즈음부터 알지못할 감정이 올라왔다.
아무리 진정하려해도 목소리가 떨려나오고 눈물이 넘쳐 흘렀다.
잠시 진정을 하고는 두번째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설마 두번째도 눈물이 날까 했는데....
역시였다.
시를 읽으면서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흘린 건 이번이 두번째다.
처음은 십여년전 문태준시인의 "가재미"를 읽을 때였다.
그동안 책을 많이 안 읽었다는 얘기도 되겠다.
시를 눈으로 읽을 때와 소리내어 읽을 때
같은 시라도 느낌은 사뭇 다르다.
낭송가들처럼 멋지게 읽어낼 수는 없어도
훨씬 더 깊이 공감하며 시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인듯 싶다.
기 도 (어머니 학교 46)..... 이 정 록
쥐 꼬랑지마냥 길쭉한
애장터 쥐꼬랑밭 있잖냐?
그 쥐꼬랑밭이 쭈뼛쭈뼛 떠올라야.
백일도 못 넘긴 아기를
광목천에 싸서 곱돌 속에 묻었지.
달포쯤 지나면 살이 문드러져
돌무덤이 멧비둘기 소리로 울어야.
그 곱돌 꺼지는 소리에 하느님 부처님
주저리주저리 기도 많이 올렸지.
벌써 오십년도 넘은 일인데
쥐꼬랑밭 팔아넘긴 지 이십 년도 넘었는데
어째서 그 고샅에서 한 치도 못 벗어난다니?
나희 다섯 말고 두엇 눈 감긴 죄가 이리도 사무친다야.
우리 아기 이제야 뼈가 녹는지
곱돌 무너지는 소리 우르르
부르르 가슴팍을 덮쳐야.
이정록 시인의 다른 시집들의 제목이 완전 내 취향이었다.
"풋사과의 주름살"
"벌레의 집은 나늑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그리고 사서 보리라 마음먹은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아들에게, 딸에게 말하듯이 편하게 읽히면서도
공감이 가는 시들이 많았다.
읽고 돌아서면 잊어버리지만
그래서 자주 펼쳐봐야겠다.
2014년 남해 설흘산
" 전망은 둥지에서 내다보는게 아니고
있는 힘 다해 날개 쳐 올라가서 보는거여"
"전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