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뭔가 떨어져 내렸다.
이어 후두둑 양철지붕 두드리는 소리
비님이 오신다.
뛸까?
뛰어도 소용없겠다. 아니 뛸 생각도 없다.
집을 나서면서 방수의를 챙길까 생각했었지만 오랫만에 한번 흠뻑 젖어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그냥 나왔었다.
결국엔 젖지 못했지만...
서광사에서 오르는 계단길
털중나리 몇송이 피어 산 중턱을 환하게 했다.
산까치 날아와 소나무에 앉는다. 하늘색 무늬가 참 예쁘다. 이왕이면 좀 가까이 앉아줄일이지
울음소리는...생각이 나지 않는다.
옥녀봉의 내려서는 그 샛길
바지가랑이를 양말속에 집어놓고 안경에 장갑까지 완전무장
그래도 여기저기 근지러운 느낌..
오늘 그 곳은 꽃 반, 나비 반이다.
여러종류의 나비들도 저마다 좋아하는 꽃이 있는 모양이어서
엉겅퀴에는 흰 빛깔이 도는 커다란 나비가, 큰까치수영에는 황금빛이 도는 나비가
그리고 큰뱀무에는 좀 크기가 작은 흰색 나비가 찾아왔다.
얼마나 예민한지 조금만 다가서도 날아올라 사진을 찍을수가 없다.
저들을 방해할 생각이 없는데...내 맘 몰라주는 나비들이 야속하다.
갈때마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하면서 내려서곤 했었다.
우거진 풀숲과 벌레들 때문에
그러나 그 샛길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또 그 길로 내려서곤 했다.
하늘말나리 봉오리가 얼마나 컸을까?
오늘은 꽃이 피었을까?
잔뜩 기대하며 찾아갔는데 이를 어쩌나 꽃대가 뚝 잘려나갔다.
다른 애들은 잘 있을까?
조심스레 찾아보며 진행해 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무성하게 자란 다른 애들때문에 내가 찾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얘들도 목이 잘려나갔는지.....
그 꽃이야 사진으로도 볼 수 있고 다른 어딘가를 찾아가 볼 수도 있을테지만
나를 길들인 내겐 하나밖에 없는 하늘말나리였는데..
서운하다. 또다시 일년을 기다려야겠네
지난 봄에 꽃을 보여주던 것들의 열매가 영글어 가고 있다.
팥배나무 열매도 제법 영글어가고 있다.
고추나무...꽃도 열매도 처음이었는데 그 열매의 모양이 참으로 특이하게 생겼다.
한복바지랑 닮았다고 해야하나, 종이로 접던 바지모양 같기도 하고..
홀아비꽃대와 백선의 열매모양도 귀엽고 예쁘긴 마찬가지였다.
탐스럽게 익은 산딸기
제일 크고 잘익은 것 두개를 따 먹었다.
그 알갱이 하나가 이에 끼어 걷는동안 오래도록 제 존개감을 일깨워주었다.
후덥지근한 날씨 때문일까
걸음에 자꾸 힘이 빠진다.
철떡철떡 늘어지는 발걸음에 힘을 넣어 보지만 잘 안된다.
몸보다 마음이 자꾸만 가라 앉는다. 무너져내리는 듯 싶다.
갱년기우울증?....뭐 그런걸까?
공동묘지를 돌아보는데 타래난초가 몇군데 눈에 띈다.
노랗게 핀 솔나물은 향기가 좋았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초등학생 머슴아이가 와서 뭐하냐고 묻는다.
"응 나뭇잎에 나비가 붙어 있어서.."
"그거 나비 아니고 나방인데요"
한방 먹었지만 웃음이 나왔다.
참 똘똘하기도 하지
다시 올라가서 서광사로 내려서려 했으나 무거운 몸과 마음을 지탱할 수 없어
그냥 큰길로 내려섰다.
코스모스가 벌써 피었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흠뻑 젖지 못한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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