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1. 03 일 토요일
향순이와 둘이서
서산발 9시 15분 고란사 행
덕산발 14시 20분 상가리 행
덕산발 15시 40분 서산 행
내가 타기로 계획했던 차 시간표들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중 어느 차 하나도 타지를 못했다.
날씨가 화창했다.
일기예보에도 내일까지 비 소식은 없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하였지만 고란사까지 파도님께서 데려다 주셨다.
맞는 시간의 버스가 있는데 괜한 수고를 시킨다 싶었지만
어쩌랴! 아내를 향한 사랑과 배려인것을.
9시 40분 고란사 출발
고풍저수지에서 고란사로 향하는 계곡에 단풍이 들어 눈도 마음도 덩달아 즐겁다.
보원사지의 들머리로 들 계획이었지만 조금 더 걷는것도 좋겠다 싶어 고란사입구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발굴작업이 한창인지 길 가에까지 깊게 파 놓았다.
들머리로 향하는 개울에 은행나무 그림자가 비쳐 들었고, 절터 옆 감나무엔 빨간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보원사지를 지나 오름길 초입의 개암나무
친구가 한 알 따주며 먹어보란다.
맛은 그런대로 먹을만 하였지만 너무 작아서 목에 넘어가는 것이 없다.
용현계곡에서 일락산 까지 이곳은 언제 걸어도 포근하니 좋은 길이다.
오늘은 ......말할수 없이 더 좋다.
수북이 쌓인 낙엽들이 그 안에서 뒹굴고 싶도록 사랑스럽다.
사그랑사그랑..바스락바스락....
발에 밟힐때마다 내는 그 소리까지 사랑스럽다. 그 소리까지 왔으면 좋겠다.
그 풍경을 즐기며, 그 소리를 감상하며, 단풍들을 눈길로 보듬으며 여유롭게 산길을 걸었다.
개심사 분기점을 지나 일락산으로 향하는 길
소나무 아래 키작은 잡목들이 한 층을 이루어 연두빛이 도는 단풍으로 물들이며
봄과는 또 다른 싱그러움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바위위에서 바라본 용현계곡 건너편 산자락도 빛이 곱기는 마찬가지다.
단풍이 아니어도 말라가는 갈잎들도 산빛을 저렇게 곱게 물들일 수 있구나
아~ 정말 황홀하게 아름다운 산빛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일락산 정상의 평상에는 사람들로 붐빈다.
오늘 경찰산악회의 금북정맥길 산행의 2차 집결지가 이곳이었기에 혹시 아는 분들을 만날지도 모르겠다 싶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았는지 아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곳에서 쉬어가려 했으나 너무 복잡하여 그냥 진행을 하였다.
소나무 가지사이로 조망이 멋진 곳에서 친구의 사진을 찍어주려는데 뒤따르던 부부의 노신사께서
찍어주시겠다며 함께 찍으란다.
갈잎들의 세상에 소나무의 푸르름이 한층 더 빛을 발하고 있다.
일락사 임도 분기점까지 내려와 석문봉 오름길 첫번째 휴식처에서잠시 쉬었다.
일락사를 바라보며 의자에 앉았는데 소나무 가지 사이로 올려다보이는 일락산 정상도 아름답다.
땀이 식으니 바람이 서늘하여 춥다.
쟈켓을 꺼내 입고 과일과 빵으로 요기를 하고 출발하였다.
이때 시간 12시 23분
조금 오르니 눈에 들어오는 소나무 한그루가 독야청청 서 있다.
양쪽 가지끝을 살며시 맞대고 있는 것이 수줍은 연인들이 하트를 그리고 있는 모양새를 닮았다.
사진을 찍으려는데 홀로 걸어오던 산행객 왈
"그쪽들도 꽃게나무를 좋아하는군요"
듣고 보니 꽃게를 닮기도 하였다.
석문봉을 한고비 남겨두고 있는데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를 어쩌나
항상 가지고 다니던 우비도 꺼내놓고 방수잠바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
그냥 비를 맞을 각오를 하고 계속 오른다.
그저 잠시 지나가는 빗방울이기를 바라면서.....
그 오름길에서 옛직장동료 이동국씨와 남편의 친구 의홍씨를 만났다.
드디어 석문봉
오늘은 다른때보다 오름길이 수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너무 여유롭게 쉬엄쉬엄 올라서 그런가.
석문봉에서 내려다보는 이쪽 저쪽의 골짜기 또한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구름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에 따라서 옥양봉부터 상가리로 서서히 내려서는 햇볕
잎을 다 떨구고 난 팥배나무의 붉은 열매 또한 한층 더 싱그럽다.
그냥 가려했는데 배가 고프다
바위에 주저앉아 친구가 가져온 빵이랑 고구마랑 과일로 허기를 채웠다.
이제 상가리에서 두시 반 차를 타려면 서둘러 내려가야했다.
그러나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때부터 시간은 멈춰버렸다. 차 시간도 그 무엇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그 아름다운 길을 걷고 있다는 것에 흠뻑 빠져 있었다.
헬기장으로 해서 상가리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가야봉에서 원효봉 가는 길목을 이제는 아는 터라 겁없이 진행을 하였다.
낙엽이 얼마나 수북이 쌓였는지 길이 보이지가 않는다.
조심조심 흔적을 더듬으며 한발한발 내딛는다.
두번이나 잘못 내려설 뻔 하던 그 갈림길에서 부부 한팀을 만났다
헬기장으로 갈거라고 했더니 자기들도 그곳으로 갈거라면서 길을 아느냐고 묻는다.
안다고 했더니 앞장서란다.
속으로 꿍꿍이속이 있어 몇가지 물어보았다.
어디로 갈건지..차는 어디에 있는지
다행이 같은 길목이라서 덕산까지 태워다 줄 수 있는지 물었더니 흔쾌히 그러마고 했다.
우리가 걸음이 빠른것은 아닌것 같은데 그쪽이 느린것인지 헬기장을 내려서서 한참을 기다렸다.
중간중간에 기다리려 했으나 부부의 오붓한 산행에 방해가 될까봐 우리는 우리대로 걸었었다.
헬기장은 억새꽃의 은빛 축제의 장이었다.
햇볕에 눈부시게 빛나는 억새...푸른 하늘을 이고 있는 원효봉......
부부가 내려오는 기척을 들으며 내림길로 들어섰다.
아~
그 길 또한 황홀하게 아름답다.
완만한 언덕길에 곳곳에 붉게 물든 단풍, 폭신하게 깔린 낙엽...친구는 카펫이 깔린 것 같다고 했다.
레드카펫이 아니라서 아쉬웠지만....
친구는 사진을 찍느라 늦어지는 내가 좀 답답했나보다.
이제는 그만찍어야지 했는데....
풍경 하나하나가 마음을 잡아 끄는데 어쩔수가 없었다.
이제 가야산의 길 하나하나가 눈에 익어 어디로 내려서면 좋을지 보이니 참 좋다.
상가리 저수지 옆 샛길로 내려서니 저수지의 가을 풍경 또한 환상적이다.
그렇게 상가리에 내려서니 3시 50분이다.
이런....
버스는 이미 떠났고 다음 차편을 알아보니 5시 40 차란다.
거의 두시간 가까이 시간이 남았다.
한시간동안은 덕산까지 걸어가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밥을 먹어야지 하고는 길을 걸었다.
한참을 가는데 지나가던 차 한대가 멈춘다.
"왜 걸어가세요?" 하고 묻는데 아까 산에서 덕산까지 태워주기로 했던 부부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그냥 걸어가기로 하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었다.
친구랑 둘이서..아까 그 사람을 맞어? 하면서 웃었다.
산에서는 멀쩡하던 발바닥이며 종아리며 허벅지며 다리 이곳저곳이 아프다.
옥계저수지의 느티나무 또한 멋지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물속에서 가볍게 흔들리고 있는 소나무 또한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저수지 주변을 걸으려니 지난 9월 22일 했던 8자산행의 들머리며, 잠시 휴식하던 곳,
곳곳이 그때의 기억들을 되살려주었다.
오늘 아주 조촐한 산행을 하려 계획했었는데 만만치 않은 시간과 거리를 걷게 되었다.
전에는 여럿이어서 좋았고, 오늘은 둘이어서 좋았다.
혼자서는 어떨까?
친구는 혼자는 싫다고 하였다.
언제 그 길을 혼자서 한 번 걸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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