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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나를 만나다/산행일기(2005~2010)

꿈길.....일주일 그 후... (일락산~석문봉~옥양봉~수정봉~용현계곡~삼거리

2007.  11.  10.   토요일

9시 서산출발

일락산주차장~ 석문봉~ 옥양봉~ 수정봉~ 황토골 입구~ 고란사,새심사 삼거리

 

....예정된 시간표대로 떠나야 한다.....

그런 유행가 가사도 있긴 하지만  예정된 시간표대로 한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때때로 마음도 바뀔것이고 또 어쩔수 없는 주변 상황도 있을테지.

살다보면 계획했던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일도 많이 있을테지만

계획했던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더 큰 기쁨을 얻는 일도 더러는 있을것이다.

오늘의 산행이 그러했다.

애당초 마음속에 걷고자 했던 산길의 절반을 포기하고 다는 길을 걸었다.

아주 조촐하게 준비한 산행길도 그러할진대

더더구나 길고 긴 인생길은 말해 무엇하리

 

오늘도 역시 친구남편이 일락산주차장까지 데려다 주셨다.

9시 30분쯤 주차장 출발

비가 올까 걱정했었는데 날씨는 화창했다.

선선한 날씨임에도 오름길에 땀이 배어나온다.

땀을 흘려야 하는 체질때문인지 삐질삐질 밀고 나오는 땀방울이 이마에 느껴질때면

기분이 한결 더 좋아진다.

일락산 정상까지 오면서 잠시 얼마전 갈길을 달리해버린 회원의 생각이 떠올랐지만

친구에게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명복을 빌어본다....편히 쉬시라고...그리고 우리를 지켜주시라고...

 

     (일락사의 뒷모습과  친구 덩순이의 어여쁜 모습)

일락산 정상에 다다랐지만 쉬고 싶은 생각이 들지가 않는다.

석문봉까지 직행하기로 했다.

일주일전에 이길을 걸을때만해도 마른잎이기는 했어도 나무가 제법 잎을 매달고 있어

수북이 쌓인 낙엽길임에도 불구하고 풍성한 가을분위기가 물씬 풍겼었는데

불과 일주일만에 활엽수들은 완전히 나목이 되어

숲 저 아래까지 훤히 내려다보여 웬지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주말이라서인지 석문봉에는 제법 많은 산행객들이 올라있었다.

역시 휴식을 포기하고 옥양폭포 내려가는 길을 확인하기로 하였다.

내가 길눈이 얼마나 어두운지....

겨울산님과의 첫 훈련산행때 혼자서 또 잘못 구를뻔한 기억만 너무 강하게 남아 있어서였는지

내려선 길을 기억할 수가 없었는데  친구가 확인시켜 주었다.

 

여기서 오늘 산길의 애당초 계획은 일락산으로 올라 옥양봉으로 내려가 버스를 탈 생각이었다.

그런데 석문봉을 조금 지나 시간을 보니 열두시밖에 되지 않았다.

친구도 웬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우리 수정봉으로 내려가보면 어떨까?"  한다.

"좋아"

이렇게 해서 오늘의 산길 역시 예정했던 대로 걷지 못했다.

 

    (갈잎사이로 보이는 옥양봉의 모습)

옥양봉으로  향하면서 잠시 전망좋은 바위에 올라 쉬면서 허기를 달래려했으나

따듯한 차와 귤 한개를 먹는데...춥다...손이 시리다

골을 치고 올라오는 바람소리가 스산하게 귀를 지나간다.

오름길엔 땀이 나고..내림길엔 춥고..나는 변덕스럽게 옷을 벗었다 입었다 해야만 했다.

옥양봉에 올라 바위에서 잠시 조망을 즐기고 있는데

반대쪽에서 내려오다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산행객 한분이 "커피한잔 하고 가실래요?" 하고 묻는다.

"좋아요" 대답을 해놓고 친구와 둘이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조망을 즐기며 커피를 기다리고 있는데

친구가 의아한 듯 쳐다보며 묻는다

"너 진짜 맥주 마실거야"

"웬 맥주..커피라고 안 그랬어?"

내가 커피를 엄청 마시고 싶었나보다.  내 귀엔 분명 커피라고 들렸는데...

미안하다고 정중하게 사과한 뒤 다시 발길을 옮겼다.

 

  (옥양봉 바위 오름길의 조망과  소나무와 산등성을 배경으로 나도 하나의 풍경이 되고 싶다)

 

 

 

훈련차 올라오던 옥양봉 바위계단길...그리고 창립행사때 올라왔던 우회산길...그리고

지난 여름 수정봉에서 올라오며 바다님이랑 산새님이랑 잘못 내려섰던 그 갈림길...

다시 보니 전혀 잘못 내려설 길이 아닌데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 우글대던 개미님들도 편안히들 계시겠지? (개미님들은 얼마나 오래사시는지 모르겠다)

그 길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때는 정말 다시 오고 싶지 않았던 길이었음을 얘기하면서 수정봉으로 향했다.

그때...그 여름...일곱시간의 그 산길...

내겐 수정봉 오름길부터 절둑거리며 일락산 임도를 걸어 내려올 때까지

쉬임없이 나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며 걸었음을 고백해야겠다.

수정봉을 오르며 "이렇게까지 하면서 공룡을 꼭 가야하나.."  

옥양봉을 향한 능선을 걸으면서 "이 맛이야   언제 또 이런기회가 올 지 모르는데..가야지..꼭 가야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죽끓듯하는 변덕과 싸우는데

포기하라고...힘든데 뭐하러 가냐고....옆에서 부추기는 산새님

그 기억들이 어제일인듯 눈앞에 선하다.

 

  (옥양봉~수정봉~서원산 갈림길에서...멀리 원효봉과 가야봉이 보인다)

 

수정봉을 향하면서는 산행객들을 만날수가 없었다.

일락산 오르면서 보았던 노부부한팀..아마 우리와 거꾸로 돌아오시는 듯 했다.

그리고 젊은 친구들 둘...

수정봉 정상에서 어린아들을 동행한 부자 한팀이 전부였다.

 

그 길도 지난 여름과 달리 걷기에 좋았다.

다만 아쉬운것은  양 옆의 풍경들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

조망이 좋은 곳에 멈춰서서 한참씩 풍경을 내려다 보며 여유있게 걸을 수 있었다.

가야할 길을 바라보며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걸어온 길...뒤돌아 본 풍경이 멋지다.  멀리 희미하게 원효봉과 석문봉이 보인다

   그 봉오리들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발전이다)

 수정봉을 지났다.

어디로 내려서야 하나....마애불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그렇다고 내림길을 아는 것은 아니었다.

왼쪽으로 내림길을 보았지만 그냥 지나쳤다.  아마도 지난번 올랐던 그 길일거라 짐작하면서.

오른쪽으로 청소년수련원으로 내려서는  두갈래의 푹신한 오솔길도 지나고

왼쪽의 내림길 하나도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언덕아래 나 있는 희미한 길 하나.....어림짐작에 이곳으로 내려서면 마애불이 나오지 않을까?

앞의 언덕을 넘으면 계곡 입구 저수지 삼거리쯤이 나올것 같다.

 그 희미한 길을 한참을 걸어 내려왔다.

그 골짜기엔 아직도 단풍이 더러 남아 있었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경사면을 내려오는데  뒤에 오던 친구가  내 걸어가는 모습이 재미있단다.

미끄러질까 보폭을 줄여 종종걸음치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나보다.

얼마를 내려왔을까.  길이 보이지 않는다.

골짜기이니 내려가다 보면 어딘가 나오겠지

바위틈에 발이 끼이기도 하고,  낙엽에 푹 푹 빠지기도 하면서 길 없는 길을 한참을 걷다보니

바위틈으로 졸 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작업하는 기계음도 들려오고  길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내려서고 보니 멋지게 지어 놓은 집의 뒷마당이다.

멋쟁이로 보이는 안주인이 나와있어 물으니 밭이 너무 높아서 포크레인으로 정리를 하는 중이란다.

상주하는 집은 아니고  노후를 대비해 준비해 놓은 곳이라고...자주 내려온단다.

그 마당을 지나 내려서니 황토골인가 하는 식당의 마당이었다.

 

  (용현계곡의 단풍터널과 마애불을 모신 전각의 모습..습기때문인지 전각의 문들이 모두 사라졌다)

 

시간은 15시 30분

서령버스에 전화를 걸어 차시간을 물어보니 서산에서 네시 출발이란다.

빨리온대도 한시간은 기다려야겠다.

밥을 먹을까 했지만 둘 다 밥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고란사로 가서 그곳에서 오르는 수정봉 길을 확인해보고는  길가에 서서 기다리느니 버스 올때까지 걷기로 하였다.

중간에 딱 한번 지나가는 차를 세워보았으나  쌩 지나가 버렸다.

고풍 저수지를 지나고,  운산터널을 지나고  운산과 개심사로 갈라지는 삼거리까지 오니 다섯시가 넘었다.

그곳에서 기다려 17시 15분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오늘도 역시 조촐하게 계획한 산행이었는데 하루해가 저물고 말았다.

산에 대한 이 지독한 상사병을 어찌하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