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18 일요일 날씨 흐림
서산서부산악회 정기산행.
몇년전이었다. 아마도 솔지산악회로 기억된다.
의료원 사거리에 산행안내 현수막이 내걸리고 저녁무렵 바래봉을 향한 산행객들을 태운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볼 때마다
나도 가고 싶었고, 그 사람들이 참으로 부러웠다.
그때는 내가 갈 수 없는 길이었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못 가는길에 대한 속상함과 아쉬움이 아주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나도 갈거야. 아마 가게 될거야 그런 생각이 더 강했었던것 같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그 길을 다녀왔다.
(오름길에 내려다본 고갯길)
6시 출발예정이었지만 늦는 사람이있어 십여분 지체되었다.
산행대장을 맡고 있는 자연인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나도 늦은적이 있는지라 할말은 없지만 남에게 폐는 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자연인은 오늘로 두번째 지각이다.
몇몇 못마땅해하는 기운이 느껴진다.
날씨도 걱정이 되었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다.
일기예보도 듣지 않았고 늘상 챙겨다니던 우의도 꺼내놓고 온터라 더욱 그랬다.
여벌옷 한벌과 자켓하나는 챙겨 넣었지만 해미를 지날때쯤 내리기 시작한 비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산행내내 비는 오지 않았다.
그대신 거센 바람과 그 바람에 날리는 흙먼지가 대신했다.
(고리봉 오름길에 만난 바위 위에서..)
정령치 휴게소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굽이굽이 고갯길을 버스로 오르는데, 버스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얼마나 힘이 드는지
언덕길 옆 하얗게 핀 고추나무꽃과 층층나무꽃들을 바라보며 그 언덕을 올랐다.
서산에는 이미 꽃이 지고 없지만 고산지대라서 그런지 이제서 탱글탱글 꽃망울을 피우고 있었다.
고개를 오르는데 산행객들을 내려놓고 내려오는 버스들이 제법 많았다.
눈앞에 펼쳐진 산들은 신록의 눈부심의 시간을 지나 좀 밋밋한 감이 있긴했지만
초록바다 한가운데 쪽배를 타고 들어온것 같은 기분도 좋았다.
줄지어 이어지는 인파로 어렵지 않게 산행은 진행되었다.
정령치에서 단체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 고리봉을 오를때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간간히 보이는 철쭉과 나무숲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불었고 걸음의 속도도 내게 딱 좋았다.
졸방제비꽃이 많이 피어있었고 늦장부린 얼레지도 몇송이 만날 수 있었다.
잠깐 길에서 비껴서 바위위에서 내려다본 산자락...버스에 앉아서도 힘이 들었던 그 고개 오름길이 구불구불 눈에 들어왔다.
고리봉에 도착했다.
바래봉쪽으로 진행하며 오른쪽으로 펼쳐진 산자락들....날씨때문일까?
초록빛 산자락이 펼쳐지긴 했지만 사진에서 보았던 멋진 산너울은 없었다
저기 저 어딘가에 천황봉도, 노고단도 반야봉도 숨어있겠구나.
아주 오랜옛날 야간열차를 타고 지리산에 갔었다.
동네 뒷산 소풍가듯이 물한병, 간식거리하나 챙기지 않고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여섯시간이 넘게 걸려서 올라갔던 기억이 새롭다.
노고단 산장에 라면사러 갔다가 산장지기한테 얼마나 야단맞았던지
"죽고싶어 환장했어!!" 아마 그런 느낌이엇던것 같다. ^^*
(산지기님께서 고리봉의 오미녀란다 ^^*)
고리봉을 출발해 세걸산을 향하면서는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지루한 길이었다.
병목현상이 고속도로에만 있는것이 아니었다.
밀리면 다른등산로로 우회를 하지만 결국 몇걸음 못가 다시 만나게 되니 더러는 투덜투덜 짜증을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더라다 언제 바래봉에 도착할까
아직도 귀가 시간을 걱정해야 되는 나는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대충대충 꽃사진 한두장 찍고나니 일행들과 저만치 멀어졌다.
줄지어선 사람들때문에 추월하기도 어렵고 한발걷고 한숨쉬고를 반복했다.
숲에 가려 조망도 시원하지 않고 그렇다고 길옆에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있는것도 아니고...
문득 외로운이 느껴진다. 이것이 군중속의 고독이라는 것인가?
그럴땐 숨이 턱에 차도록 땀을 흘리며 걸어야 되는데...
저만치 앞에 일행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앞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열명쯤을 제치고 앞으로 갔다.
앞뒤에 서 있는 일행들 증명사진이나 찍어야겠다.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면 변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무심한척 딴데를 보는 사람, 손사래를치며 피하는 사람, 오히려 더 들이대고 표정을 잡는 사람
현태아빠는 주름살이 걱정이 싫다하고, 허벅지짱은 얼굴도 예쁘고 피부고 좋은데 왜 피하는지 모르겠지만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다.
자신있게 드리미는 산조아 언니....
(안경속에 친구도 보이고 내 모습도 보인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허벅지짱님)
산죽터널을 지나 지루한 걸음 끝에 세걸산에 도착했다.
멀리 아련하게 불긋불긋 꽃동산이 보이지만 갈길이 멀어 보인다.
길옆의 산앵도와 퉁둥글레를 찍다보니 또 일행들과 떨어졌다. 한참을 혼자 걷가 부운치 갈림길에 도착했다.
어찌하다보니 앞사람들과 거리가 벌어졌고 혼자 걷자니 웬지 좀 그랬다.
그래서 그곳에서 잠시 서서 뒤에오던 산 사람님과 허벅지짱님을 기다렸다.
아주 후미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팔랑치부근에서 삼총사를 다시 만났다. 나를 기다렸다고 한다. 기다려준 그들이 고맙다.
그렇게 도착한 팔랑치.....꽃들이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조금 아쉽다.
너희들을 보러 이렇게 먼길 달려왔는데..... 엊그제 갑작스레 내린 눈때문이란다.
사람도 점점 세어지고 먼지는 더욱 사납게 날렸지만 꽃동산에서의 표정들은 밝았다.
산자락아래 펼쳐진 반듯반듯하게 정리된 들판도 인상적이었다.
바래봉은 그저 한번 올려다보고 그대로 하산을 시작했다.
날씨가 좋았다면 바래봉에서의 지리산조망이 참으로 멋지다는데......
돌이 깔린 임도를 따라 내려오는 길은 힘이 들었다.
발바닥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
신발을 벗고 걷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지만 그렇잖아도 느린 속도에 이래저래 지체될까 참았다.
그래도 가끔씩 만난 꽃들때문에 덜 지루했다.
층층나무, 사진으로만 보다 오늘 처음만난 물참대(나중에 물으니 말발도리라고 했다..수피를 제대로 살피지를 못해서..)
그 모습 그대로 곱게 사윈 산수국, 향기도 꽃도 시원스런 함박꽃나무등등....
다섯시가 조금 넘어 주차장에 도착했다.
아주머니들 일시키지 말라는 구본오님의 배려로 퍼주는 밥 편안히 먹고 돌아왔다.
실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곤쟁이를 넣고 끓였다고 실치된장국 참 맛있었다.
버스를 타고 출발한뒤 얼마쯤 지나 임실휴게소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한시간쯤 삼겹살을 구워먹고 출발한단다.
비는 오고 천둥번개에...귀가시간에 마음이 조마조마한데...못마땅하지만 어쩌랴
도착하니 열한시가 되었고 예상대로 남편은 골라서 말한마디 없다.
각오한 일이지만 참 미련한 사람이란 생각이 자꾸 든다.
어차피 다녀온 일이고 기분좋게 잘 다녀왔냐 해주면 서로 기분좋고 나도 더 잘해주리란 생각이 들텐데 말이다.
바랄것 바래야지.
예순이 되면 독립해야지 하는 다짐을 다시금 해본다.
서산에는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는데 산행내내 바람과 먼지때문에 괴로웠지만 그래도 비님은 참아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저마다 가고 싶은 길들이 많을 것이다.
가본 길이지만 또 가고 싶은 길도 있을터이고, 가보지 않아서 더욱 가보고 싶은 길도 있을 것이고
좋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꿈을 키우는 길도 있을 것이다.
오늘 바래봉을 향하는 길...이 길도 내가 가보고 싶었던 길이었지만 그리고 한번은 가볼만한 길이구나 싶지만
또 가고 싶은 길은 아니다.
그리움이 아닌 그냥 하나의 추억으로 남는 산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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