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20일 일요일
태풍 갈매기의 영향으로 어제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어딘가 무너지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굉음으로 천둥도 번개도 쳐서 걱정을 했는데
오늘 아침은 무척 고요했다.
서부산악회에서 동강 래프팅을 가는날...나는 별 흥미가 없어 신청을 하지 않았지만 이른 잠에서 깨어나
다시는 잠이 오지 않았다.
자전거로 논두렁이나 한바퀴 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밖으로 나왔다.
나올때만해도 구름이 끼어 칙칙한 하늘이었는데 중앙하이츠를 지나 도로를 건널때쯤에는 햇살이 환하게 내리비췄다.
도로에 고인 물속에 주변의 풍경이 들어와 거울처럼 맑게 반추하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주변을 비추는 힘은 맑음이 아니라 고요함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논두렁에 나가니 아직 마르지 않은 빗방울을 머금고 있는 노란 달맞이꽃의 얼굴이 아침햇살을 받아 더더욱 환했다.
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되었나.......로 시작되는 김정호의 "달맞이꽃" 노래
그 달빛아래 홀로 피어 있어야할 달맞이꽃의 애처로운 느낌은 간데없어보였다.
파란꽃 닭의장풀도 참 예쁜꽃이다.
그 파란잎이 꽃잎이 아니라 뭐라더라....
곧게 뚫린 논두렁을 지나 저 끝으로 도비산이 보였다.
도비산 꼭대기에 흰구름이 지나다 잠시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청지천의 물은 어제내린 비로 인해 흙탕물로 변한채 넘실대며 흘러갔다.
가시상추를 뜯으며, 멍석딸기를 따며 두 시간여를 그곳 논두렁에서 보냈다.
소나무 사이로 쏟아져내리는 햇살이 눈이 부시다.
아 서부 사람들은 덕을 쌓은 사람들만 있나보다. 이렇게 날씨가 도와주니 말이다.
갑작스레 찾아든 고요함이 믿기지 않는지 청개구리도 메두기도 거미도 어리둥절한 표정들이다.
메꽃속에 빨판을 넣고 꿀을 먹기에 여념이 없는 벌.
거센 빗줄기속에서도 아직 남아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생존법이 있겠지?
덩굴지는 잎도 참 예쁘다 생각했던 박주가리꽃이 활짝 피었다.
물기에 젖었던 털이 햇살에 보송보송 마르고 있었다.
사진 한장은 푸른 논을 배경으로 햇살과 어루러져 마음에 드는 사진이 되었다.
풀잎들의 천국....잎에 맺힌 빗방울들이 햇살에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몇캐럿의 다이아몬드를 본다면..이보다 더 황홀할지는 모르겠지만 물방울처럼 마음을 맑게 해주지는 못할것 같다.
어쩌면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났을 어제의 그 비바람속의 고단함을 이겨낸 결실이기에
더더욱 아름다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돌아오는 길에 저수지에 덮힌 저것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수련은 분명 아닌데 꽃을 피우지도 않은것 같은데..뭘까?
다행히 낚시꾼들이 다져놓은 길이 있어 가까이 가 보았다.
마름모형으로 잎이 예쁜 마름이었다. 꽃은 없었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인지..
거슬러 올라오면서 또 한번 놀랐다.
양어장 한쪽 기슭을 온통 덮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꽃을 피운 어리연이었다.
구름이 내려와 앉은 듯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손을 뻗고 카메라 줌을 있는대로 당겨보지만 제대로 담을 수가 없어 아쉬웠다.
조금 더 올라오니 멍석딸기가 탐스럽게 달려있다.
아마도 빗물에 단물이 씻기어 맛은 없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예상대로 밋밋한 맛이었지만 잘 익은 송이를 골라 따왔다.
플레인요구르트에 설탕과 딸기를 함께 넣어 먹으니 맛이 꽤 좋았다.
이렇게 행복하고 평화로운 두 시간을 보내고 나머지 시간은 집안일을 하며 주부로서 충실한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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