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말끔하게는 아니지만 산행하기 좋을 만큼 개어 있었다.
서부산악회의 산행날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터
그래도 비를 거둬준 하늘님 고맙습니다.
충청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속리산, 그 산줄기의 한 봉오리 묘봉
오늘 가야 할 길이다.
잘 아는 산이니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산행기점을 잘못 들어 한 시간을 흘려버린 다음에야 오늘의 산행기점인 신정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신정리를 향해 가면서 도로에서 보이는 눈에 익은 봉오리들
사진에서 보았던 묘봉능선의 바위와 어우러진 곡선이 멋지다.
버스는 큰 도로를 벗어나 좁은 비포장길을 아슬아슬하게 한참을 달려 우리를 내려주었다.
모처럼 선두에서 출발해 이정표상의 묘봉을 향해 열심히 걷는데 자연인님이 부른다.
그쪽이 아니란다.
오랫만에 잠시나마 선두에 서나 했는데 몇 분을 못 버티고 중간에 끼이게 되었다.
계곡을 따라 시작된 산길은 본격적인 오름길로 접어들자 자꾸만 걸음이 느려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오늘은 땡벌님이 오셨으니 봉침 맞을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다.
힘들게....정말 힘들게..올랐다.
그래도 선두그룹에서 쉬면서 기다려주어서 가끔씩 선두가시는 분들의 얼굴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한시간여 오른 후에 도착한 능선상에 올라설 수 있었다.
잠시 쉬면서 사진도 찍고 풍경도 감상하는 동안 날쌘 두 분이 뒤쪽의 바위봉오리를 향했다.
가고야 싶지만...힘을 아끼기 위해 참아야지
다시 출발 한구비를 겨우 돌았는데 걸음을 멈춰야했다.
떡 가로막고 서 있는 커다란 바위에 드리워진 두 줄의 밧줄....... 그 앞에서 줄지어 멈춰선 사람들.
정체가 심하긴 하지만 나에겐 어쩌면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밧줄 옆으로 오를 수 있을 것 같아 오르기 시작했는데...중간쯤 올랐는데 오르지도 내려가지도 못하겠다.
별 수 없지 아래 보이는 반달곰님께 SOS .....앞에 계시던 산 사람님과 맑은바다님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올라왔다.
덕분에 정강이에 시퍼런 멍이 들고 말았다.
(처음 찍어보는 파노라마사진인지라 합성이 좀 서툴긴 하지만 .....)
산행객들이 많이 찾은 이유도 있었지만 정체되는 구간엔 어김없이 아찔한 로프구간이 있었다.
줄에 몸을 의지한 채 바위와 하나가 되어 올라오고 내려오는 사람들
(한쪽에선 로프를 잡고, 또 다른 한쪽에선 바위와 나무에 의지한 채 내려오고 있다.)
기다리며 일행들이 어느정도 내려오는것을 본 다음에 다시 출발하여 한구비를 돌아 오르자
앞에는 지나온 길의 멋진 바위봉오리 그리고 저만치에 멋진 마당바위?가 보인다.
저 곳도 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멋진 풍경을 사진에 담아둬야겠다.
커다란 바위들이 서로 기대고 서 있는 바위문...그 길이 마당바위 가는 길이라는데 정체도 될 뿐더러 길이 너무 험하단다.
그냥 바위구멍만 한번 건너보고 다시 되돌아나왔다.
어느 순간 앞이 확 트였다.
바람은 또 얼마나 시원하던지
쭉 뻗은 속리산의 산줄기가 너무나 아름답다. 멀리 시설물이 보이는 곳이 문장대라했다.
이런 풍경을 집 앞에 옮겨다 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좋을까?
산이 내게로 왔대로 이렇게 뿌듯하고 가슴속까지 시원할까?
내가 찾아왔기 때문에... 땀 흘려 다가왔기 때문에 더 크게 느껴지는 희열이 아닐까
이 바람 한 줄기, 눈앞에 펼쳐진 풍경 하나로도 오늘 흘린땀의 보상은 충분히 되고도 남음이 있을것 같다.
9월의 단풍나무는 벌써 가을을 준비하고 있었다.
짙푸른 녹음속에서 부지런히 가을을 준비하는 단풍나무잎들이 또 다른 행복을 안겨주었다.
다시 정체가 시작되었다.
언제 움직이게 될지.....구본오회장님께서 정체도 되는데 점심이나 먹고 가자고 하신다.
옆으로 비껴 장소를 찾는데...마땅한 자리가 없다.
바위구멍틈으로 보니 반대편이 널직해보였다.
돌멩이가 끼이지 않을만큼 널다란 바위틈이라서 빠져나가보니 경사가 좀 있는 낭떨어지이기는 하지만
몇사람씩 쉬기에는 괜찮을 듯 싶어 사람들을 불렀다.
산 사람님이 과일이며 부침개며 몇가지를 주섬주섬 풀어놓았지만
아찔한 경사의 내리막길의 사람들과 건너편 바위의 사람들을 보느라 먹을 생각도 나지 않는다.
어느 팀인지는 (자일?이라고 부르나요?) 줄을 가져와 한명한명 내리고 있었다.
고리를 연결해주던 분이 한 아주머니에게 고리를 걸면서..에구 허리가 너무 가늘대나.....부러운지고.
그곳에서 한참을 쉬었다.
남부대장님이 부르신다. 영문을 몰라 좀 망설이다 따라가보니 색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60도쯤 될까 널찍한 경사면 바위끝에 두 사람이 앉아 줄을 잡고 있고 한사람 한사람씩 그 줄을 잡고 건너가고 있었다.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래도 여잔데...혹시 먼저 건너가라고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챙겨주는 사람도 없고 ㅠㅠ
에라모르겠다. 그냥 평지걷듯 살방살방 바위를 통과했다.
그곳에서 간을 한번 더 떼었다 붙였으니...자연인과 남부대장님때문에....
장난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바다님이 생명의 은인이 되었단다.
오늘 내 간을 노리는 사람이 많아 몇번이나 떼었다 붙였다해야했으니 산호자님때문에...산 사람님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그 곳을 지나 깊은산 속 옹당샘을 지나 상학봉에 도착했다.
사다리를 오르는데..이게 고정된 사다리가 아니다.
사다리를 오르다 사다리와 함께 굴러떨어지는 꿈 숱하게 꾸었었는데....
아래에서 보기와 다르게 상학봉 바위는 넓지가 않았다.
아래는 낭떨어지니 사람 조심해야겠다.
어느 산악회에서 그곳에서 단체사진을 찍겠다고 사람들을 부르는 바람에 서둘러 내려와야만했다.
바위와 나무와 사람과..그 모두를 넉넉하게 품고 있는 산...그 절경앞에서 나 자신마저 잊어버렸다.
바위 위로갈까? 설마 저만한 구멍에 끼이기야 할라구 호기 있게 들어섰다가 다른 산행객의
도움을 받아 겨우 바위틈새를 빠져나가는 아주머니 때문에 한바탕 웃음
그런곳을 가볍게 빠져나왔으니 대한민국 표준이라해도 뭐라 할 사람 없을테지
위로 보이는 멋진 암릉을 바라보며 그 아래로 얼마를 걸으니 암릉 표지판이 나왔다.
그곳에서 묘봉까지 300미터....
갈까말까 망설이다 아쉽지만 그냥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선두에서 다녀오는 사람들의...볼 거 없다..라는 말을 믿는 건 아니지만 욕심부리다간
더 큰 민폐를 끼치게 될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산길은 의외로 싱거웠다.
2.4킬로라는데 얼마 걷지 않은것 같은데 주차장이 보였다.
주차장 옆에서 잘 익은 다래를 따 먹는 것으로 오늘의 주산행을 끝냈다.
이제 임도를 따라 걷는 일만 남았다.
아마도 오늘은 일찍 내려가 밥상을 차릴 수 있겠다며 걸었는데..벌써 내려가신 분들이 여럿 계시단다.
그래도 모처럼 밥상한번 차리겠다고 맑은바다님 뒤도 안돌아보고 내빼고
덩순이랑 둘이 내려오는데 한무리의 일행들이 탁족을 즐기고 있었다.
손에 물만 묻히고 서둘러? 먼저 출발했다.
저만치 차가 보이는가 했는데 "건배" 우렁찬 외침소리가 들려온다.
힘도 들고 밥을 몇술만 뜨려 했는데 산 사람님이 주섬주섬 내어놓는 매실장아찌며 나물무침을 보니
안되겠다. 한주걱 더 먹어야지.
김치하나로도 맛있고 충분한 산행후의 식사...산행의 또 다른 맛이다.
산행도 못하면서 회원님들을 위해 솔방울님이 애써 준비해준 아욱국을..관리부실로 먹지도 못하고...
그저 내려와서 맛있게 먹을 생각만 했지 끓여놔야 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으니..
불량주부 맞는가보다
신청한 회원님들 중에 여러분들이 빠지셨는데
손하나로님과 이종훈님 두 분은 사고로 참석을 못했다고 한다. 두분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오늘 함께하신 님들 고생하셨고 정말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밧줄하나 타고 오르면 온 힘이 빠져 힘들었다는 덩순이님....그래도 스릴있어 좋았다하네요
이제 바위까지 접수...산행기까지 쓰겠다고 나서면 어쩌나 걱정이 됩니다.
그러면 서부에서 내 설자리가 없어질텐데....
그리고 바위에서 도와주시려는 손길을 내밀어 주셨던 분들..고맙습니다.
가끔 그 도움의 손길을 마다하는 바람에 멋적어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좀 굼떠서..바위와의 교감에 시간이 좀 걸려서 그런것이니 오해없으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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