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에서 나를 만나다/산행일기(2005~2010)

꿈같은 어느 여름날..장안산의 칠월

2009.  7.  19일 일요일

 

갑작스런 난기류에 갇혀 일찌감치 산행을 포기하고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눈을 뜨니 5시 40분

잠시 갈등했다.  하지만 떠나지 않으면 하루종일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

일단 산악회 여부회장에게 전화부터 하고

배낭을 꺼내 냉동실을 열어  물 몇병 대충 집어넣고, 그래도 여벌옷은 챙겨야지.

우비랑 양말이랑 대충 집어 넣고는 집을 나섰다.

심상치 않은 날씨에도 아랑곳 없이 산에 대한 열정으로똘 똘 뭉쳐진 회원 35명이 함께 하는 산행이었다.

 

예산휴게소를 지나는데 친구 호연이에게 미안했다.

집이 예산인 친구를 서산까지 오게 했으니...

 

사납게 몰아치던 바람도 잠잠한 가운데 출발했는데 어디쯤일까?

남녘으로 갈수록 차차 날씨가 흐려지는가 싶더니 어디쯤에서부터인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중산행을 각오는 하고 출발했지만 오후부터 개인다는 일기예보를 들어맞기를 바래본다.

 

산행들머리에 도착했는데 비가 내린다.

아무래도 우의를 입고 출발을 해야할듯 싶다.

밖에서 비에 젖으나 안에서 땀에 젖으나 젖는것은 마찬가지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우의를 입고

단체사진 한장 찍고는 출발했다.

그다지 가파른 경사도 없고 정상까지의 거리도 그다지 멀지 않았지만

습한때문인지 땀은 여전했다.

빗님도 오락가락  더위에 비옷을 벗고 좀 걸을라치면 또 빗님이 쏟아지고

한 숨 돌리려 평평한 곳에 발걸음을 멈추면 또 다시 쏟아지는 빗님때문에

비옷을 벗었다 입었다를 몇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한고개 오르면 조망좋은 쉼터가 나오곤 했는데  짙은 안개때문에 바로 앞의 일행조차 뿌옇게 보였다.

오름길 곳곳에 피어 그나마 산빛을 환하게 밝히던 하늘말나리보다 더 환하게

빨강색, 파랑색 하얀색 우비를 입은 모습이 안개에 쌓인 산을 환하게 해 주었다.

그 어느 한곳에서 우의 입은 여인들만 카메라 앞으로 모이라는 돌산님.

다시 비옷을 걸쳐입기에는 시간이 없고..... 나란히 서 있는 그녀들 뒤에가서 목만 들이밀었다.

이럴땐 좀 참아주는게 좋을텐데....사진 버려 놓은 것은 아닌지...

 

그래도 산인지라 가파른 고갯길을 힘겹게 올라 정상에 도착했다.

선두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후미대원들은  빗속에서도  정상석을 친구삼아 사진찍기에 분주했다.

 

정상을 찍고 이어지는 내리막길

육산인데다 비가 와서 상당히 미끄러웠다.

한두명 넘어지고, 팔과 다리가 뻣뻣해지도록 힘을 주고 내려가는 길

한번의 휴식도 없이 이대로 내려가는가

아트천사님이 사과를 주겠다며 쉬어가자 유혹한다.

천사님이 선악과를 빌미로 유혹을 하다니

제멋대로 생긴 버섯처럼 가랑잎위에 떨어져 비에 젖은 노각나무 꽃을 사진에 담는 동안

사과는 다 없어져 버리고 ㅠㅠ

빗속에서 즐기는 휴식과 간식도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노각나무의 멋진 수피와 시들어버린 꽃에 대한 아쉬움

 

휴식을 끝내고 내려서는데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과 만났다.

좀 앞서볼까 싶어 발걸음을 떼는데 손하나로님께서 늦게 내려 온 사람은 늦게 출발해야 한다며 발목을 잡는다.

순진하게도 그리해야되나보다싶어  길가로 비켜서는데

함께 왔던 벅지짱님과 해월님이 앞에 내려서는데도 보고만 있는 손하나로님...

왜 그들은 붙잡지 않느냐는 내 항의에  대해 이유를 설명하는 손하나로님 말씀에 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 말문을 닫아버린 이유인즉은 "벅지짱님은 이쁘니까"

 

나무에 의지하며, 옆 산죽에 의지하며 한참을 내려서자  힘찬 계곡물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얗게 물보라을 일으키며 흐르는 계곡을 옆에 끼고 한참을 걸었는데 계곡을 건너야 한단다.

돌 징검다리도 놓을 수 없는 수심에, 발이 빠지지 않을 재주가 없을것 같아 그냥 신발을 신은 채

첨벙첨벙 건넜다.

또 건너야 할 곳이 있으랴 싶어 신발을 벗어 물기를 짜고 양말도 벗어 꼭 꼭 쥐어짜서 신었는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으니

두번째 계곡을 건널때만 해도 마지막이겠거니 했다.

이때까지만해도 누구는 업혀 건너고, 누구는 긴 다리로 건너뛰고, 누구는 신발을 얌전히 벗어들고 건너

젖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두번째 계곡을 건너 너른 임도를 빠져나오자 민가가 보이고 구수하게 삼겹살 굽는 냄새가 풍겨왔다.

아!  산행 끝났나보다 했는데 ....본격적인 계곡 산행은 그때부터 시작이었으니

그 이후로도 열두번의 계곡을 더 건너야만 했다.

아래로 갈 수록 불어나는 수량과 거센 물살 넒어진 계곡 폭..

그에 비례하여 더해지는 스릴과 재미

물에 대한 좋지 않은 추억이 있다는 보령댁님의 물에 대한  울렁증도 함께 떠내려 갔을것 같다.

 

해월님이 준비해오신 자일을 양쪽에 매고 건너는데도...거센 물살에 몸이 휩쓸려 내려갈것만 같았다.

여름철의 계곡 산행이 왜 위험한지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산행이었다.

모두들 무사히 건너서 다행이었지만 단체산행으로서는 좀 모험이었지 않나 싶었던 산행이기도 했다.

함께 했던 회원들이 더 없이 든든하고 믿음직스럽게 느껴진 산행이기도 했다.

여성 회원님들을 위해 백의종군 하여 주신 산호자님, 오솔길님, 돌산님 ....과 운영진들

손에 손을 잡고 한발 한발 계곡을 건너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신나던지

 

작은 폭포를 이룬 비탈에 올라 즐거움을 사진에 담았다.

다리가 물살에 가려져 물위에 떠있는 유령처럼 보이는 모습....

센 물살때문에 서 있는 자세에서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산호자님이 손을 잡아주어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열네번의 계곡을 건너고는 앞에 또 계곡물이 보이자 모두들 기겁을 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마을에 가까운 계곡 두 곳에는 안전하게 다리가 놓여져 있었다.

 

비와 계곡과

처음부터 끝까지 물과 함께한 장수 장안산 산행

오랫만의 우중산행의 묘미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고,  계곡의 시원함까지 온몸으로 맛본 정말 신나는 산행이었다.

 

산행을 끝내고 버스에서 젖은 옷을 갈아입고 삼겹살로 허기를 채웠다.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장안산 계곡산행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