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21일 토요일
일출울 본것이 언제던가? 굳이 따져볼 필요도 없을것 같다.
새해 첫날 마음먹고 도비산으로의 일출산행 이 후 일출을 본적이 없으니 말이다.
나의 게으름이 부끄럽기는 하지만 언제나 눈을 뜨고 현관문을 열면
기다렸다는 듯이 눈부신 햇살이 좁은 현관안으로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곤 했다.
이른새벽
혼자가기가 거시기 하다며 먼저 동행을 청하던 친구의 목소리는 아직도 비몽사몽중이었다.
의료원앞에서 십여분을 기다려 5시 30분쯤 가야봉을 향해 출발했다.
계곡장 옆 헬기장 오름길로 접어들어 얼마를 달리자 두 갈래 길이 나왔다.
몇번이나 갔던 길이지만 어느길인지 장담을 할 수가 없는데
운전대를 잡은 친구가 왼쪽 윗길로 접어들었다.
한참을 달리는데 가야봉 방향을 보니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은듯 하다.
다시 되돌려 나오는데 갈래길을 보지 못하고 큰 길 가까이까지 나오고 말았다.
아는 길도 이리 헤매는데 가보지도, 보이지도 않는 인생길이야............
길에서 잠시 헤매느라 5시 57분이라는 일출시간을 몇분 놓치기는 했지만
일찍 올랐다해도 구름때문에 어차피 일출은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시설물 주변에 뭔 꿩인지는 모르지만 꿩의비름이 울타리를 이룬채 한창이었다)
이른 새벽의 가야봉. 그 아래 펼쳐진 풍경들
푸르스름한 안개를 뚫고 우뚝 솟은 도비산과 팔봉산. 그 아래 안개속에 숨어버린 마을들
바로 앞에 보이는 원효봉과 덕숭산. 그 너머 내가 이름을 불러 줄 수 없는 산군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부지런한 까마귀떼들의 시끄러운 환영도 나쁘지는 않았다.
가야봉 시설물을 따라 한바퀴 빙 돌며 풍경을 즐겼다.
여름인데도 바람이 제법 부는 새벽의 그곳은 한기가 느껴졌다.
그 곳 가야봉에서 바라보이는 각 방향의 풍경은 저마다 특색이 있으면서도 아름다웠다.
산봉우리 하나하나를 섬으로 만들어버린 덕산간 도로 건너편
옥계저수지와 들판을 품고 있는 덕산 시내쪽
좀 밋밋한 감은 있지만 편안한 느낌의 서원산 건너편 풍경
아직 꿈속에 잠겨 있는 듯한 내고향 도비산 방향
원효봉 방향으로 둘러쳐진 시멘트 담장엔 네모난 구멍이 몇개 뚫려 있었다.
내가 대포라도 된듯이 이리저리 조준해가며 당겼다 밀었다 구멍 바깥쪽의 풍경을 즐겼다.
담 때문에 보고싶은 것을 보지 못했다는 핑계를 대지는 못할 것 같다.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어 오히려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
가야봉에서 조금 내려와 원효봉이 바로 앞에 보이는 전망좋은 작은 봉우리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커다란 카메라를 둘러멘걸 보니 사진을 즐기는 사람들인가보다.
사진을 찍기엔 여러가지로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날씨인지 뭔가 아쉬움이 남는 듯 한데 내게는 충분히 황홀하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눈에 보이는대로만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사진 실력도, 장비도 따라주지를 않는다.
잠시 원효봉에 들러가기 위해 발길을 옮겼다.
원효봉 오름길은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발길이 느껴지지 않았고, 등산로는 파르스름한 이끼가 끼어 무척 미끄러워 보였다.
원효봉에 올라 느긋하게 풍경을 즐기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작은 바위에 올라앉아 동행한 친구에게
"매일 이러고 살았으면 좋겠어" 했더니 웃는다.
원효샘을 둘러보고 가기 위해 일어서는데..어라? 뭔가 이상하다.
지난 번 병꽃이 필 때는 분명 원효봉에 작은 돌탑이 있었는데......
내가 위치를 착각하는 것인가 싶어 이쪽저쪽 살펴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지난번 태풍에 무너져내린 것인가?
조금 아쉽다.
다음엔 올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쌓아 올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효샘에 거의 다 왔는데 급히 연락해야 될 일이 생각났다는 질경이님. 핸드폰도 차에 두고 왔단다.
발길을 되돌리면서 원효봉이 처음이라는 질경이님이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그녀를 앞서 보내고 천천히 홀로 걸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가야봉도 아름다웠고 바위 너머로 보이는 푸른 하늘도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도록 내게 동행을 청해준 질경이님....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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