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20일. 월요일
퇴직을 며칠 앞두고 낸 연차휴가
어색한 사무실 분위기도 싫었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위로가 필요했다.
내게 마지막 직장이었으면 싶었던 곳을 이제 그만둬야 한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스스로를 어찌할 수 없을만큼 마음이 허전했다.
동행할 친구를 생각해보았지만 내 속속들이 털어내보일 수 있는 친구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더 외롭고 쓸쓸함에 눈물이 핑 돌았다.
때마침 걸려온 스승님의 전화는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저녁에 벚꽃데이트를 신청하시면서 위로해주시겠단다.
자전거를 타고 용비지를 향하여 집을 나섰다.
가야산에 있다는 친구를 그리로 오라고 할까 생각도 했지만 자전거와 자동차의 괴리때문에 그냥 혼자이기로 했다.
일부구간이 도포확포장 공사때문에 울퉁불퉁하고 돌들때문에 여간 신경이 곤두서는게 아니었다.
예산이 부족하여 내년봄에나 공사가 끝난다고했다.
팔각정이 보이는 목장초지에 기러기들이 아직도 떼를 지어 앉아 있었다.
날아오르는 기러기떼를 사진에 담고 싶어 철망을 뚫고 들어갈까 망설이다 돌아서는 순간
기러기떼들이 날아올랐다.
하지만 카메라는 이미 가방에 넣은 다음이었다.
벗꽃은 80%이상 꽃을 피운듯 목장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목장길 옆에서..지난 계요등 열매
용비지에 도착하니 두대이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저수지 둑을 오르면서 쇠뜨기 생식경을 한참을 담았다.
처음에는 조금 징그럽다는 생각이 드는 모습이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만히.....
오래........
들여다보면 예쁘지 않은 것들이 없다
제방에는 전북익산에서 왔다는 사진가가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삼나무와 편백나무를 바라보며 개나리가 핀 저수지가를 돌아 정자쪽으로 가면서, 개나리와 진달래를 벚꽃과 용비지를 담으면서
쓸쓸함을 잊어갔다.
건너편 정자를 향하면서보니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몇명 더 올라오는것이 보였다.
그 길을 내려가면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
천천히 걸었고 목장의 S라인 아름다운 길을 놔두고 소나무가 있는 언덕을 넘어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보니
소나무숲사이로 보이는 용비지의 풍경은 색다르면서도 아름다웠다.
벚꽃도 아름다웠지만 소나무와 파란하늘과 구름의 조화가 아름다워 사진을 찍고 있는데
자작나무숲길에서 누군가 이쪽을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정자에서 보니 물가에 핀 길마가지나무가 너무 싱싱하고 아름다웠다.
흔들리는 물을 배경으로 피어있는 길마가지나무와 한참을 놀았다.
그런데 왜 향기를 맡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건 욕심 때문이었나보다.
아름다운 사진. 멋진 사진을 담고 싶은 마음에 그 꽃이 가진 그대로의 모습과 향기에는 마음을 두지 못했던것이다.
발길을 돌려 목장을 향하는데 아까 사진을 찍던 사람이 마주 걸어오고 있었다.
얼핏 보니 모습이 아는분이 아닌가싶어 다가가는데...아니었다.
일산에서 출사를 나왔단다.
사진이 좋아 한달 전 일까지 접고 사진에만 몰두하고 있단다.
내가 입고간 분홍빛티셔츠의 빛깔이 곱다면서 사진을 몇장 찍겠단다.
다른이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칠까?
카메라의 렌즈엔 또 어떤 나의 모습이 남겨질까?
옷빛깔처럼 마음도 환했으면 좋겠지만 보이지 않는 내 표정에 울적함이 묻어나는 것이 보인다.
그 마음을 잡아내지 못하는 카메라가 고맙다.
그저 고운 옷빛깔과 억지로 짓는 웃음만을 남겨주었으니 말이다.
사람에게 무심할 때도 있고
사람들 만나는 일이 번거로울 때도 있지만
또 때로는 사람 만나는 일이 이렇게 반가울때도 있다.
아는 사람이 아니어도
그리운 사람이 아니어도
반가웠다.
누군가의 글에서 꽃구경은 서로 특별한 사람들끼리 해야 하는거라고..
혼자서 꽃구경을 할 때는
꽃이 화사한만큼...꽃이 빛나는만큼...마음이 시려운거라고
그래
그렇게 시린 마음으로 찾은 용비지
벚꽃이. 개나리가. 진달래가 활짝피어 내 마음은 그만큼 더 시려웠던 용비지에서
그 시린 마음때문에 낯선이와의 스치는 만남도 그렇게 반가웠고
그 시린 마음때문에 꽃에게. 나무에게. 길에게 활짝 마음이 열렸다.
시린 마음을 저기 덩그러니 버러진 쓰레긴봉지속에 슬쩍 끼워넣고 돌아왔다.
이제 돌아가야지
자전거 바퀴를 열심히 돌려 달리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
무겁고 퍽퍽 소리도 나고 잘 달려지지가 않는다.
뒷바퀴를 보니 바람이 빠져있다.
빵꾸가 난 것인가?
마침 마당에 일을하고 있는 아저씨께 바람넣는 기계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단다.
저만치 이장네 가면 있을거라고...
잠시 생각하더니 내 자전거를 놓고 자기 자전거를 타고 가란다.
바람을 넣어도 빵꾸라면 또 빠질테고..자전거를 끌고 걸어서가기에는 너무 멀어 아저씨 말씀대로
자전거를 바꿔타고 돌아왔다.
순박한 시골인심을 느끼게 하는 아저씨였다.
내가 집을 잘 찾을 수 있을지 몰라 연락처를 물어보니 그 동네에 "박 철"은 한사람 뿐이라며 문패를 가르키신다.
미소가 정말 흙을 닮은 그런 아저씨였다.
새잎 피우기를 뒤로 미룬 메타세콰이어는
마치 스스로의 존재를 잠시 숨긴듯이 뒤에 선 길과 산과 꽃을 다 보여주었다.
오늘 내 시린마음을 달래준 두 사람.
그리고 용비지
그런데 용비지는 내가 자전거를 타고 올때마다 특별한 추억을 안겨준다.
다음에 자전거를 타고 용비지를 찾을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덕분에 선생님과의 저녁데이트 약속은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잘 가꿔진 밭이랑의 황토가 아름다웠다.
저곳에 어떤 새싹이 자랄까
내 마음에 또 어떤 희망을 키워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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