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07. 17
서부산악회원 35명과 함께
성삼재~ 노고단대피소~ 노고단~ 임걸령~ 피아골계곡~ 직전마을
10:30~ 17:00
노고단을 다시 찾는데 25년이 걸렸습니다.
생각해보니 참 긴 세월인데
엊그제인양 기억에 생생합니다.
다시 찾은 노고단엔
물한병, 빵한조각 없이 빈손으로 이웃집 마실 가듯 산을 오르던
철없이 마냥 순수했던 시골처녀아이는 없었습니다.
끓여줄테니 라면을 사오라던 맑은 청년도 물론 없구요
라면을 사러온 처녀에게 벼락같이 호통을 치시던 털보 산장지기님도 가고 없네요.
한동안 사람들의 발걸음을 막아놓은 뒤
노고단은 다시 살아났다지요.
지금은 다시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이달 하순께부터는 예약제로 출입제한을 한다네요.
(지리터리풀)
이곳에 오는동안 버스안에서 한 친구가
이원규님의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란 시를 읽어 주었습니다.
마지막 행에
행여 견딜만 하면 제발 오지 말라 하였네요.
이쪽에서... 그리고 저쪽에서
못견딜 그 무엇이 있어 지리산에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제발 오지 말라는데도 부득부득 가는데는 까닭이 있겠지요.
(회나무)..나래회나무는 4수성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 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고도 했네요.
그런데 전 노고단에 가리라 마음먹은 때부터 이미
많은 것들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답니다.
흑심은 품었으되 한가지 욕심은 버렸습니다.
그래도 그 욕심을 다는 버릴 수 없어
몇장의 사진은 담아왔지요.
일월비비추를 담는 모습을 서산새님께서 담아주셨네요.
(일월비비추)
말 그대로 천상의 화원이 펼쳐져있네요.
노고단의 기린초는 황금처럼 빛이 났습니다.
오는사람 마중하랴 가는사람 배웅하랴 바쁜 지리터리풀.
동글동글 일월비비추 꽃봉오리의 어여쁨은
혹시 이슬의 눈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상상을 하게 합니다.
눈을 감고 휘파람새의 맑은 노랫소리를 듣다가 어느날 문득 깨어날테지요.
(흰제비난)
이제 노고단을 뒤로하고 피아골로 향합니다.
노고단 이후로는 가슴 뻥 뚫리도록 시원스레 펼쳐진 조망은 없었습니다만
적당히 우거진 숲사이로 난 오솔길이 정겹습니다.
가끔 말나리와 여로, 시호 같은 반가운 꽃들과의 만남도
마음에만 새겨두기로 했습니다.
노고단 초원에서도 마음에 차곡차곡 담아둔 풍경이 더 많습니다.
언제인가 못견디게 산이 그리워지는 그날이 오면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 펼쳐보며 견뎌낼 수 있도록 말이죠
(토현삼)
오솔길 옆에 나비 한마리 앉아있다가 날아오릅니다.
뱀눈문양이 무척 아름답네요.
눈으로 따라가니 저만치 바위 위에 내려앉는군요.
아무래도 나보다는 예쁘게 담아낼 그녀가 먼저 찍어야할것 같아서
나비와 사랑에 빠진 그녀를 부릅니다.
나도 욕심을 내 보지만
어라? 어느새 날아가버렸네요.
그녀가 멋지게 찍은 나비는 먹그늘나비랍니다.
세 시간이나 걸려 찾아낸 이름이라네요.
(먹그늘나비)
가파른 계곡길을 얼마를 걸었나 모릅니다.
양옆에서 우렁찬 물소리가 들려오네요.
나무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계곡의 물빛이 참 맑습니다.
수피가 아름다운 노각나무도 무척 많구요.
하얀 노각나무 꽃송이는
길을 비껴서 숲 여기저기에 동백처럼 송이째 툭 툭 떨어져있네요.
미역줄나무의 은근한 꽃 향기도 오늘 처음 맡아보는것 같습니다.
박쥐나무 열매와도 첫 대면을 했지요.
마음은 마냥 즐거운데
오랫만의 산행에 발이 무척 힘들어합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까지 하네요.
여름 산빛이 엷게 내려앉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고생한 내 발에게도 산빛물빛 다 들이는 호사를 누리게 하고 싶은데
표지판이 자꾸만 길을 막아섭니다.
11킬로미터의 산길을 걸으며
"머리조심"이란 커다란 글씨를 보고도 쿵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조심해야지 마음먹은 곳에서 넘어지는 이유를 얘기하다가
그만 쭐떡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지요.
꽈당 넘어져 무릎에 생채기가 난 회원도 있는데
그만 불똥이 내게 튀네요.
다른곳에 한눈파는거며, 느린행동이 예전의 나와 닮았다나요.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언니의 일침은 항상 기분좋게 들려옵니다.
언제 또다시 올지 알수 없는 이 산에서
길만 보고 걸을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오랜 장마끝에 하늘이 맑게 개인 첫날
땀흘리며 걸은 지리산길
그런데도 집에 돌아와 허겁지겁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어느 시인이 밥보다 더한 슬픔이 어디있겠냐고 노래한 이유를 알것도 같습니다.
산의 정기로도
꽃의 미소와 향기로도
우정과 사랑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배고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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