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27일
선암사~ 대각암~ 장군봉~ 접치갈림길~ 장박골삼거리~ 연산사거리~ 피아골~ 토다리~ 송광사
걷고 싶은 길이 있었다.
몇년전 늦여름 친구와 둘이서 선암사 언저리만 돌았고
또 더 오래전에 송광사 언저리만 맴돌다 온 아쉬움에
그 두 절집을 잇는 산길을 걷고 싶은 소망이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태고종의 본찰인 선암사와 승보사찰 송광사를 동.서 양쪽에 거느린 산길은 어떤 느낌일까?
순천만의 뻘밭길과 바다에 연잎을 펼쳐놓은 듯 동그랗게 자라나는 갈대밭도 보고 싶었고
법정스님의 거처이던 불일암에도 들러
무소유의 희열이 어떤것인지 한 순간만이라도 느껴보고 싶었다.
느린 걸음때문에 산악회에 따라 나서는 길을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한마리 철새가 되어보기로 했다.
스스로 들 자리를 알아서 찾아가는 철새처럼 그렇게.
오라는 사람은 없었지만 보고 싶은 곳이 있었으므로 늦게나마 용기를 내었고
꽉 차있던 자리에 다행히도 누군가가 빈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12킬로에 가까운 거리를 후미도 3시간30분에 산행을 마쳐야 한다는 고문님의 말씀에 그만
산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잔뜩 주눅이 들어버렸다.
잘 못 온것은 아닌지.....
계곡을 끼고 도는 아름다운 오솔길 중간중간에
곧게 자란 푸르른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저만치 승선교가 보였다.
승선교의 아름다운 아치너머로 강선루를 예쁘고 담아보고 싶었지만계곡으로 내려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발걸음도 마음도 모두 바쁘다.
송광사에 비해 선암사의 부도밭은 소박해보였다.
탑을 받치고 서 있는 조각상의 표정이 재미있다.
몹시 힘들어 심통이 잔뜩 난 표정이다.
선암사 일주문
선암사의 모습은
몇년전 옥잠화가 향기롭던 늦여름에 왔을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꿈이 이루어지는 길" 이란 터널도 만들어졌고
마당엔 연등이 가득 걸려있다.
꿈과 상술의 조화라고 해야할까
요즘엔 어느 사찰에나 일년내내 등이 내걸려 있고
등 하나하나에 소박한 꿈과 정성이 담겨있는 소중한 등일테지만
천년고찰의 고즈넉함과 고풍스런 맛을 빼앗아 버리는 것 같아서 아쉬웠다.
홍매화 필 때 다시 보고 싶었던 선암사
어찌하다보니 몇계절이 그냥 흘렀고
길목에 있는 삼인당은 왜 보지 못했는지.....
뒤깐도, 와송도 보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겨야했다.
대각암을 향해 오르는 길목에서 뒤돌아본 선암사의 뒷모습이 정갈하고 포근하다.
대각암 뒤로 별 특징없이 편안해 보이는 장군봉
오름길이 은근히 사람을 잡는다.
마지막이겠거니 하고 오르면 또 오름길
이젠 정말 정상이겠지 하고 오르면 또 오름길
어느 산 기슭에선가 노루귀가 꿈틀거릴것만 같은 따사로운 날씨가
오늘은 전혀 고맙지 않다.
오면서 뉴스를 보니 이상고온으로 107년만의 기온이었단다.
장군봉을 지나 연산봉4거리까지의 능선길이 편안하니 참 좋았다.
잎을 떨군 나무들이 땅에 깔아놓은 갈잎들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오름길의 거친 숨소리를 대신했다.
누군가 소의 잔등을 걷는 기분이란다.
편안하고 아름다운 능선길을 곧잘 소의 잔등에 비유하곤 한다.
말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소인가
에구...소야...잔등을 내주고 힘들겄다.
소의 잔등... 든든하고 편안하고 만만한것이
어릴적 보던 아버지의 어깨와 닮아 있는듯도 하다.
정상 오름길에 아마도 태풍에 피해를 입었는지
가지가 잘려나간 나무들이 푸른하늘을 오롯이 보여주었다.
산죽도 많고 철쭉도 많았다.
연산사거리에서
급경사의 바위 너덜지대를 한참이나 내려오니
계곡 물소리도 들리고 길도 순해졌다.
11월 끝자락의 초겨울인데도
계곡물에 담근 발이 조금 시려올 뿐 시원하기가 그지 없다.
겨울이 자꾸만 짧아진다는데 그다지 반길만한 일은 아니지만
막을 수도 없으니 어쩌랴
마지막 다리를 건너자 송광사의 채마밭인지 푸른 배추밭이 산기슭의 가을빛과 어울려 아름답다.
송광사로 들어서는 입구의 대나무밭... 시원시원하다.
송광사 경내엔 아직도 고운 단풍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금지구역을 문밖에서 슬쩍 엿본다.
우화각 왼쪽으로 보이는 풍경으로
물속에 두 기둥을 담그고 서 있는 이 정자 이름이 "육감정"이란다.
요사채인 임경당에 딸린 정자란다.
삼청교를 건너 피안의 세계로 들었다가 징검다리를 건너 차안의 세계로 나왔다.
징검다리는 아주 튼튼하여 두드려보지 않아도 될것 같다.
징검다리에서 보는 삼청교와 우화각의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삼청교와 그 위에 지어진 우화각
이십여년전 이곳에서 사진작가들의 요청에 의해 물속에 돌멩이를 던져주며
사물을 보는 또 다른 시각이 있다는것이 놀라웠던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왼쪽의 육감정과 다리위의 우화각
羽化閣은 몸과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져 하늘로 떠올라 신선이 된다는 뜻이란다.
신선은 아니되더라도
잠시나마 세속의 욕심이 비워져 몸과 마음이 가볍다.
우화가 너머 보이는 지붕음 침계루란다.
(침계루)
일주문을 향해 걸어나가는 길 옆에 또 다른 길이 있었다.
보기만해도 참 아름다운 길이다.저 길을 걸어도 좋았겠지만
너무 멀지도 않게
너무 가깝지도 않게
한발짝 떨어져서 아름다움을 느껴보는 것도 기분좋은 일이다.
점심 후 찾은 순천만 갈대숲
전망대는 까마득하고 일행들은 몇명 보이지 않고
아쉽지만 아무래도 욕심을 버려야할것 같다.
친구와 둘이 해지는 갈대밭 둑길을 걸으며
순천만 갯벌을 흐르는 물줄기의 멋진 풍경은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오늘은 이것으로 만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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