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가 맞아주길 바랬습니다.
어제 저녁만해도 날리는 눈발과 매서운 바람에
눈덮인 백사장에 발자국을 남기며 걸을 수 있을것 같았지요.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매서운지 알기에
두꺼운 오리털잠바를 꼬깃꼬깃접어 배낭 맨 아래 넣어두었습니다.
백사장항에 도착하니 바닷바람이 제법 차겁습니다.
그러나 걸음을 몇걸음 떼지 않아
하나 하나 겉옷을 벗어야만 했지요.
벗은 옷을
하나는 허리에, 하나는 배낭 끈에 주렁주렁 매달았지요.
일명 거지팻년이라나요 ㅎㅎ
바다...
가끔 그리워지는 바다 풍경이 있습니다.
개발되기 전 옛날의 모항 밭고개.
백사장 기슭에 염전이 있던 대두리 앞바다.
바구니를 들고 허리춤에 누룽지를 매단채
물길따라서 바지락을 잡으러 뻘밭을 걸어가는 아낙들의 행령
꽁꽁 언 손으로 굴을 따거나
뜨거운 염전에서 소금을 긁어 올리고, 땀 뻘뻘흘리며 물레방아를 돌리던 아저씨의 모습
모래위의 저 발자국들은 밀물에 지워질테지만
제 기억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그런 풍경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찾는 계절에는 바다를 멀리두고 살았습니다.
꽃을 보러 바닷가를 몇번 찾은것 말고는
바다를 보려고 바다를 찾은적은 없었지요.
저와 같은 사람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바다를 보자 길을 두고 모두 바닷가로 내려섭니다.
백사장에서 꽃지까지 가는 길
세번째 경유지인 기지포해수욕장에서 점심을 먹기로 계획하였는데
너무 이르게 도착했네요.
바다에 취해 바닷길로 걸은 까닭에
산길로 이어지는 대부분의 노을길을 잘라먹었다는군요.
참 아쉽네요.
제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길이었거든요.
길을 몰랐으니까요.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언젠가 다시 걸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바다를 자주 즐기지 못한 까닭에
각각의 이름을 가진 해수욕장들의 특징을 알지 못합니다.
바닷가 바위 위에 한기의 묘지가 있는 삼봉 말고는
모두 거기가 거기 같습니다
방포해수욕장
저 아래에 독살도 있고 작은 섬도 보이고 서해다운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밧개해수욕장)
바다를 향해있는 두개의 의자가
참 넉넉하고 편안해보입니다.
아마도 누군가를 위해 비워놓은 그 마음때문인가봅니다.
문득 안도현님의 싯귀가 떠오르네요.
....너는 한번이라도 누군가를 위해 뜨거워본적이 있느냐.....
돌멩이인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보니 조개껍데기네요.
예전에도 바다의 주인이었듯이
무슨 이유로 껍데기만 남은 지금도 주인으로 바다에 남아있습니다.
사람들간에 정을 나누는데는 밥을 함께 먹는것만한것이 없지요.
누구의 배낭에서 무엇이 나왔는지 모르지만
먹거리가 푸짐합니다.
보글보글 끓는 떡국도, 라면도, 돼지껍데기도(먹지는 못했지만), 닭발도....
모여앉은 식구들의 모습이 정겨워보입니다.
어르신들의 표정이 재미있습니다.
저 때문에 좀 놀라셨나봅니다. 올려다보시면서 하시는 말씀
송구하게도 저보고 하느님같다고 해주시네요 ^^*
길을 걷다보면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도 먼길을 돌아가야 할때가 있습니다.
바로 지금이 그렇습니다.
만만해보이는 물길 하나가 먼 길을 돌아가게 합니다.
무게를 숨길 수 없는 발자국을 모래위에 꾹 꾹 찍으며 걷다 뒤볼아본 길이
참 아름답습니다.
추억이 아름답듯이 길도 그런가봅니다.
거꾸로 걷는 길도 만났지요.
가파른 오름길을 거꾸로 걸으니 오르는것도 좀 수월한듯 하고
조금씩조금씩 낮아지는 앞산의 풍경도 새롭습니다.
어쩔수 없이 주인을 닮은.... 뒤따라오던 그림자와 마주하는 것도 재미있네요
이제 목적지인 꽃지가 멀지 않았나봅니다.
마지막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풍경이 참 아름답습니다.
각자 마음에 드는 풍경을 담느라 모두들 분주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바위의 옆모습도 처음 보네요.
잎을 다 떨군 나무들은
오솔길의 모습을 오롯이 보여줍니다.
저녁무렵의 꽃지에
하나 둘 진사님들이 모여들더군요.
나는 일몰까지 기다릴 수 없지만
그들이 아름다운 일몰을 보고 돌아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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