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에서 나를 만나다/산행일기(2011~2015)

그리운 가야산...

 

2012. 1. 15일 일요일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만이 그리운건 아닌가보다.

명치끝을 아리게 하는 아련한 슬픔이나

눈물이 쏙 빠질만큼 혹독했던 아픔도

지나고 뒤돌아보면 때때로 그리워지는걸 보면.

 

그래서일까

울고 싶을 만큼 아프게 싸리나무에 뺨을 맞으며

잔가지에 정강이를 긁혀 멍이 들며 걸었던 길

그 길이 다시 걷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긴 산길이었다.

하여 자주찾는 까페의 가야산 번개산행에 그 길을 청하여 함께 하기로 하였다.

아홉시에 서산을 출발하여 한서대 앞에 주차를 하고 산행 들머리인 일락산주차장으로 이동

산행을 시작했다.

 

 

일락사 계곡을 건너 가파른 오름길을 이십여분 오르면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진다.

아래로 황락저수지와 산수저수지가 마치 강물처럼 길게 흐르고

멀리 들판너머 도비산이

어린왕자에 나오는 보아뱀이 들어있는 모자같은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고

서산시내 너머로는 우뚝솟은 팔봉산도 보인다

멀리 대산의 망일산과 태안 백화산도 보이고

앞으로는 일락산과 석문봉  가야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또 한쪽으로는 뒷산에서 삼준산 연암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427. 435...

특별한 이름없이 숫자로 표시되는 낮으막한 산봉우리 몇개를  오르락내리락 넘고

마지막 봉우리 하나를 가로지르면 한서대방향과 석문봉으로 향하는 임도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이 길이 가야산의 다른 산길과 다른점이 있다면 바로

파도타기를 하듯이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한다는 것.

 

 

임도와의 갈림길에서 석문봉을 향하는 길은 제법 가파른 오름길이다.

한숨 돌리려 멈춰서서 되돌아보면

산불로 인하여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낮으막한 산은

눈조차 쌓여있지 않아 동글동글 돌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억새밭을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일락산에서 이어지는 능선길과 만나게 되고

석문봉이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다.

가야산 줄기의 중앙에 있는 석문봉은 주말이면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어느 직장의 신입사원들일까?

"여러분들이 최고입니다"

최고가 되려고 노력은 하되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행복해지는 지름길이겠지.

 

 

석문봉에서 가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가야봉에서 뒷산으로 흘러내리는 산줄기와 뒤로 보이는 원효봉의  모습이 듬직하면서도 시원스럽다.

저 능선 어디쯤에 오늘 점심을 먹을 우산바위가 숨어있을텐데...

 

 

그다지 위험한 구간이 아니었는데 나무데크로 널찍하게 길을 만들어 놓았다.

산마다 자꾸만 인위적인 구조물들이 만들어지면서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올지는 몰라도

자연과 사람을 따로따로 떼어 놓는것 같아 아쉽다.

 

 

 

중간의 암봉의 절반쯤은 손님들과 걸음을 맞추느라 안전하게 우회를 했다

 

 

 

가야봉을 지나 시설물을 우회하는 길이 꽤 까칠했다.

철조망은 기울어지고, 땅에 늘어진 가시철망과 잔나무가지들

그리고 모래처럼  부서지는 눈길이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가야봉을 우회하여 도착한 봉우리는 또 다른 그림을 눈앞에 펼쳐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보는 방향에 따라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원효봉

옥계저수지를 옆에 품고 있는 이곳에서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것 같다.

 

 

 

 

 

윗쪽 사진 앞으로 덕숭산과 그 뒤로 용봉.수암산 줄기

그리고 아래사진에 가야할 능선이  길게 뻗어있다.

중간에 오른쪽으로 길에 뻗어나간 능선이 아마도 오늘 내려서야 할 한서대길인것 같다.

 

 

 

 

이 봉우리는 어떤 숫자로 표지되어 있을까

같은 곳에서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어디를 보느냐 무엇을 보느냐 하는 각자의 선택일테고

그 선택에 따라 느낌 또한 다를것이고.

서로 다른 그 느낌들 때문에 세상살이가 더 풍요로워 지겠지.

 

 

 

저 아래로 내려서야 할 한서대가 보이는데

그냥 그대로 내려섰으면 좋겠다.

그런데 길이 없었다.

쉬엄쉬엄 걸음이었지만 여섯시간이 지나고 나니 조금 후회가 된다.

너무 긴 길을 청했구나...

 

 

성큼성큼 앞사람의 발자욱을 따라 걸어보았다.

황새걸음 따라가는 뱁새처럼 힘이 든다.

그냥 내 걸음으로 걸어야겠다.

 

 

장장 일곱시간을 걸으면서

이 길을 혼자서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단편적으로 점점이 떠오르는 기억들. 

전체의 길과 이어지지 않는 조망이 좋았던 어떤 곳들을

이제 한줄로 길에 이을 수 있게 되었으니

동행들에게 고마운 일이다.

 

산행을 끝내고 지도를 보니 정말 긴 길이었구나

그 길을 걸은것이 꿈만 같다.

 

 

일락산주차장~ 407~435봉~한서대갈림길~일락산 갈림길~ 석문봉~ 가야봉~455봉~411봉~무인감시카메라~ 한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