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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나를 만나다/산행일기(2011~2015)

흐르는 강물처럼....태백산

 

 

태백산..

민족의 영산이라 일컬어지는 태백산을 나는 오늘에서야 비로서 처음 만났다.

아무리 명산이면 무엇하고 영산이면 무엇하리

내가 걷고 보고 느낄 수 없다면 소용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래서 지금까지 태백산을 마음속으로 동경해왔지만

그리움의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주목의 어깨너머로 보이던 함백산과 매봉산의 장쾌한 산능선이

가끔 그리워질것 같다.

 

 

 

 

화방재에서 출발한 산길은 초입부터 많은 인파로 붐볐다.

그 행렬에서 잠시 비껴서서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지냈다.

"제"라는 것은 항상 엄숙함이 있는 행사지만

자유로우면서도 경건한 시간이었다.

 

(사걸령)

 

 

제의 순서에 의해

노산 이은상님의 "산악인의 선서"라는 글을 낭독하는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

동기 산행대장의 배려가 고맙다.

 

산악인의 선서...노산 이은상

 

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정열과 협동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할 뿐   언제나 절망도 포기도 없다.

 

산악인은

대자연에 동화되어야 한다.

아무런 속임도 꾸밈도 없이 다만 자유와 평화 사랑의

참 세계를 향한 행진이 있을 따름이다.

 

 

산악인이 아니어도 자연과 동화되어 사는 삶은 행복할 것이다.

 

올해 첫 상고대와 눈꽃을 이곳 태백산에서 볼 수 있을까 기대했었지만

등산로 옆으로 무릎높이로 수북이 눈이 쌓여있을 뿐

기대했던 나뭇가지 위의 눈꽃과 상고대는 없었다.

어느구간에선가 코끝이 시리고 목 뒷덜미가 서늘하여 옷깃을 여미게 했지만

과연 1500고지의 겨울날씨가 맞는가 싶게 바람도 없고 따사로왔다.

 

 

심한 정체속에서

굽이굽이 휘돌아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사람들틈에서

함께 간 일행들이 어디쯤 걷고 있는지..

처음엔 두리번거리며 뒷모습을 쫓다가 아예 그만두고 홀로 걷기로 마음먹었다.

 

 

떠밀리듯 산능선에 오르니 의연하게 서 있는 주목 아래에는

발디딜틈도 없이 사람들로 가득차있었다.

겨울이면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을 맞이하고 보내는 일이 일상이된듯이

무심한 표정의 주목은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목 아래의 사람들 표정을 보니 지금 그대로라면 그들도

 천년만년 살것처럼 생기가 넘쳤다.

 

 

이 많은 사람들은 여기 왜 왔을까?

물을 수가 없다.

누가 내게 같은 물음을 던진다면

나도 내가 여기 왜 왔는지 모르겠다.

홀로 걸으며 생각해보리라.

 

 

저 곳에 나를 세워두고

내가 여기 다녀갔다는 표식 하나쯤은 남기고도 싶었다

함께간 일행들을 찾아 멋진 사진을 찍어주고도 싶었지만

한발짝 비껴서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몇명씩 아는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멋진 설경을 함께 바라보았다.

 

다져진 눈밭위에서 몸통이 뎅강 잘려나간 주목과 마주했다.

정녕 죽어있는 나무가 맞는지

죽어 있는 나무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봄이 오면 저 눈꽃대신 몸통 여기저기에서 푸릇푸릇 새순이 돋아날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