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집 마당 뒷산에
건넌마을 박씨네인지 김씨네인지.. 산소가 있었지요.
그 댁 산소에서 시제를 지내는 날은 제게
생일보다도 더 즐거운 날이었답니다.
푸짐하게 가져다 주는 시제음식을 보며
매일매일 시제였으면 좋겠는데
그 좋은 날이 일년에 단 하루뿐이라는 것이 얼마나 아쉽던지요.
그 시제음식처럼
오늘 월출산도 내게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을까
은근히 기대를 했습니다.
천황사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출발하면서 올려다본 풍경은
그 기대가 헛되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지요.
나를 반길 환상적인 운무를 기대하며
약간 흥분된 기분으로 출발합니다.
(아름다운 배경앞에 아내를 세워두고 마주보는 부부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남녁의 봄은
나무들의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와 있네요.
어느새 손가락 끝으로 솔솔 빠져나가는 봄도 있었지요.
한명이라도 더 참석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바꾼 일정이었는데
누군가에게는 산행의 기회를 빼앗고 만 결과가 되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 잠시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신록이 마음을 내려놓도록 도와주었지요.
( 거북이바위 )
오름길 초입부터 청량한 계곡의 물소리가 들려옵니다.
어제 내린 비가 준비한 선물입니다.
이런걸 보고 찰떡궁합이라고 해야하나요
물소리와 연초록의 잎새들과 휘파람새의 노래소리의 어울림이 정말 환상적입니다.
어라? 이게 아닌데...
오를수록 산을 감싸고 도는 안개가 짙어집니다.
바로 옆의 장군봉 줄기도 제대로 보이지가 않네요.
물기를 머금은 바윗길도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구름다리와 바람폭포의 이정표 앞에 섰습니다.
망설임없이 바람폭포로 향했습니다.
매봉과 사자봉을 잇는 월출산의 명물
구름다리를 멀리서 보고 싶었거든요
아직 만난 적 없는 바람폭포의 모습도 궁금했구요.
계곡의 수량이 이리 풍부하니 폭포의 모습이 어떨지 사뭇 기대가 되었습니다.
산길을 조금 줄일수도 있다니 느린 발걸음에 보탬이 될듯도 하구요.
(바람폭포)
월출산엔 물이 귀하다는데
웬 복인가요
쏟아지는 폭포수가 정말 시원합니다.
소리를 듣는것만으로도 마음의 찌꺼기들이 저절로 씻겨내려가는듯 합니다.
관리공단의 직원들이 우리들의 느린 발걸음을 격려해주네요.
산행은 그렇게 해야 한다구요 ^^*
어제도 산행사고가 있어 아주머니 한분을 들쳐업고 내려왔다면서 말이죠.
(책바위)
우뚝하게 얹혀있는 저 바위..
무엇처럼 보이시나요?
공원관리공단에서 "식빵바위"라고 이름을 붙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탐방객들이 책바위가 어떠냐고 건의를 해서
"책바위"가 되었다고 하네요.
제 눈엔 식빵바위가 더 어울려보이는데
그 분은 꽤 학구적인 분이셨나봅니다.
(6형제바위 조망터)
안개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모두 품에 안아버린 덕분에
멀리서 바라보고 싶었던 구름다리도 볼 수 없었고
이곳에서 조망된다는 멋진 육형제바위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안내문의 사진을 들여다보는데
지나는 산행객이 지난 겨울에 찍은 거라며 스마트폰으로 찍은 육형제바위를 보여줍니다.
제가 가야산이나 팔봉산을 자랑하듯이
그분 마음도 그랬나봅니다.
이제 천황봉을 800여미터 앞에 두고 있습니다.
사방에 드리워진 안개는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걷기에 안성맞춤이지만
눈길은 보이지도 않는 먼 곳을 향해
자꾸만 밖으로 더듬거리며 달아나려고 합니다.
이제 통천문...
통천문에 먼저 들어간 이들이 마주봅니다.
겨우 몇미터의 거리를 지났을 뿐인데
통천문을 통과했다는 의식이 기분까지도 바꿔놓는군요.
마치 선계에 든 것처럼 몸도 마음도 가볍습니다.
정상이 멀지 않았다는 안도감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행여 후미를 기다리고 있는 일행들이 있을까 싶어
많은 인파속을 더듬어 두리번거리는데
반가운 얼굴들 몇분이 보이네요.
모두들 항상 선두세 서시는 분들입니다.
아직 올라오지 않은 분들이 많다는군요.
바람폭포 코스가 구름다리 코스보다 짧다더니
항상 꼴찌인 우리 일행을 선두로 바꾸어 놓았네요.
선두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어리둥절할뿐입니다.
(천황봉 정상에서)
꼴찌인줄 알았는데 선두 몇분 빼고는 아직이랍니다
점심을 끝낼무렵 일행들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만년 꼴찌인 우리가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는
놀라고 의아해하는 표정이 재미있습니다.
큭..큭.. 속에서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아~~ 이런 기분이었구나 !
선두로 올라와서 느긋하게 후미를 기다리는 여유.... 그 기분이란것이 바로.
일행들을 두고 먼저 일어나 걷는 산길이 훨씬 느긋하고 여유롭습니다.
이제 점심을 시작했으니 한참동안은 따라잡힐 염려는 놓아도 되겠구나 싶었지요.
돌과 돌 사이에 돌을 쌓아올린 바위
누군가는 행운의 바위라고 했지만
햄버거 바위같기도 합니다.
점심을 먹을지가 몇십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비룡님 세번의 시도끝에 돌을 던져 쌓아올리는데 성공하셨지요.
물론 저는 단번에..
무슨 기도를 했냐구요?
한번에 돌을 올려야겠다는 일념밖에 없었습니다.
이 바위를 보는 부부의 의견이 서로 다릅니다.
남편은 하늘을 쳐다보는 불독을 닮았다하고
아내는 뭐라했더라...
제 눈에도 하늘을 보는 강아지로 보이는군요.
이건 돼지바위랍니다.
설명을 듣고나니 정말 똑같습니다.
옆모습을 그림자만 보여주는 돼지바위의 미소가 정말 환상적이지 않나요.
안개 덕분에 돼지바위의 꼭 봐야할것만 볼 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남근바위)
남근바위를 지나 계단을 올라
전망대 위에서 잠시 쉬며
배낭을 탈탈털어 비우고 있는데
천황봉에 두고 왔던 일행들이 벌써 여기까지 따라와서
저를 놀래킵니다.
오랫만에 오신 회원님 한분은
장난스런 포즈로 눈을 즐겁게 하네요
인어아줌마는 보았어도 인어아저씨는 처음입니다.
포즈가 정말 요염합니다. ^^*
5년전에 오르지 못했던 구정봉을 올랐지요.
우물이 아홉개인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딱 어울리는 이름인것 같습니다.
십정봉? 팔정..칠정..육정봉? 모두 이상하지요?
도락산 신선대던가요?
그 곳 바위 위의 우물속에서 무당개구리를 본적이 있는데
이곳엔 무엇이 살고 있는지....
몽환적인 분위기에 빠져 꿈속인듯 산길을 걸어갑니다.
멋진 암봉을 볼 수 없는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진 않았지만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 월출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도갑사로 내려가는 길
하늘이 조금씩 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서쪽인지 동쪽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쪽 저쪽의 산 능선들이 반가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마도 먼데서 찾아온 우리를 그냥 보내기가 미안했던 모양입니다.
아름다운 풍경앞에서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은
정말 강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외로운 사람이라는 싯귀가 있지만
전 지금 아무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나를 행복하게 하고 즐겁게 해주는 동행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요.
가끔 생각나는 사람이 한 사람 있기는 했습니다.
아마도 지금쯤 그녀는
월출산의 다른 풍경을 보며 다른 길을 걷고 있을겁니다.
안개의 장막이 걷힌 월출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조용히 내려다보는 이들의 모습에선
이미 산을 닮은 푸근함과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미왕재에 도착했네요.
억새밭이 봄날의 푸르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미왕재 억새밭은 지난 가을의 기억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나봅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요.
5년전 이곳의 풍경을 저도 지금껏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두고 가야 할 것이 돌만이 아니겠지만
돌을 뒤에 두고 떠납니다. ^^*
오년전의 기억도 함께요.
이제 함께했던 오늘을 다시 기억할겁니다.
회원분들중에
이제 꽃과 나무에 관심을 갖는 분이 많아지는것이 반갑네요.
곳곳에 보이던 얼레지 잎과, 수피가 뽀얀것이 인상적인 사람주나무가
몹시 궁금했었나 봅니다.
얼레지와 노랑제비꽃과 자주괴불주머니가 참 많이 보였지요
(상산나무 암꽃..2009년 4월 선운산)
(오늘만난 상산나무 수꽃)
오름길에 만난 나무꽃을 보며 상산나무가 아닐까 생각은 했었지만
전에 선운산에서 만난 꽃과 달라서
뭔가 궁금했었는데
자연인님이 상산나무 꽃이라고 알려주네요.
암수 딴그루인지라 전에 제가 만난 꽃은 암꽃이고
오늘 만난 꽃은 상산나무의 수꽃이라는군요
내려오는 길목에 있는 용화문 안을 잠깐 들여다보았지요.
보물로 지정되었다는 석불이 모셔져 있네요.
맑고 고요함이 느껴지는 경내에 들어서자
저절로 자신의 매무새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비질을 하고 계신 저 보살님은
온 존재를 바쳐 비질을 하고 계시겠지요.
저도 오늘 제 온 존재를 바쳐 산길을 걸었습니다.
해탈문을 빠져나오며 한번 뒤돌아 봤습니다.
산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뒤돌아본 월출산은
파란 하늘아래 젖은 등을 말리고 있네요.
문은 언제나 열려있으니 다시 찾아오라는 듯이요.
2012. 4. 22일
천황사(10시) ~ 바람폭포~ 천황봉~ 바람재~ 구정봉~ 미왕재~ 도갑사 (5시 40분)
산행시간 대략 6시간 40분
'산에서 나를 만나다 > 산행일기(2011~201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덕숭산의 5월 (0) | 2012.05.07 |
---|---|
마음을 물들이다.....팔봉산 (0) | 2012.04.30 |
돌이 날 부른다....동석산 (0) | 2012.04.14 |
한쪽 날개를 타고 날다...주작산 (0) | 2012.04.01 |
동행.... 백화산 (0) | 2012.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