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자욱한 거리 저편에서 희미한 불빛이 달려옵니다.
느릿느릿 다가옵니다.
행여 내게로 오시는가....
아닙니다.
내게로 달려오는듯하던 희미한 그리움조차 내게서 비껴가는 새벽입니다.
잠자리 날개가 바위에 스쳐
그 바위가 하얀 가루가 될 즈음
그 때 찾아오는 것이 인연이라는데..
이 새벽 내 곁에서 함께 안개속을 달려주는 이들은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인연인지요.
어둑한 여명속에 용비지 앞에 섰습니다.
모세의 발걸음처럼 가볍게 안개는 물위를 걸어 저쪽으로 흘러가는 고요속에서
아침을 기다리는 용비지가 파르르 떨고 있네요.
바지가랑이를 이슬에 적시며 물가를 천히 걸어봅니다.
걷다가 멈춰서서 바라보고 또 몇걸음 걷다가 멈춰서 바라보고
시시각각 변하는 용비지의 표정은 어느때의 내 얼굴과 닮아있기도 합니다.
개울을 건너 목장길로 접어들자
그곳엔 가을이 아주 낮게 내려앉아 있습니다.
길 여기저기엔 소똥이 질펀하게 널려있군요.
소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시간을 되새김질하며
안개속의 그 길을 걸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발걸음을 서둘러야 합니다.
기다리는 이가 있고 정해진 시간안에 가야 할 곳이 있으니까요.
헤르만 헷세의 시 한귀절이 떠오릅니다.
........
나의 세상이 밝았을 때는 이 세상에는 친구들이 가득했었습니다.
이제 안개가 내리니 한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
봄날엔 제방 가득 사람들로 붐비던 용비지의 가을
안개속에 호젓합니다.
산다는 건
그런건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