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인 엊그제 눈이 내렸지요.
오늘 아침에도 눈길을 걸었습니다.
눈이 오면 힘들어지는 사람들과 함께 있기에 눈이 와도 맘 놓고 좋아할 수가 없는데
제 마음을 미리 알고 한마디 거듭니다.
" 눈이 와서 좋지? "
웃으며 대답했지요
" 난 좋다고 말 못해" 하고 말이지요
하지만 표정만은 숨길 수가 없습니다.
며칠전에 이런 눈이 내려주었으면 오늘 태백산의 풍경이 얼마나 더 아름다웠을까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었던 금요일 오전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영락없는 봄비더라구요.
추워지기를 바라고 또 바랐지만
저녁무렵이 되어도 울타리 옆 스트로브 잣나무 푸른 잎새위에 달린 빗방울은
여전히 말랑말랑한채 매달려 있더군요.
아~ 나도 산에 갈 수 있겠다 생각했을 땐
태백산 가는 길에 제 자리는 없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볼 걸
어디든 산에 가야겠는데.... 그래서 덕유산 가는 길에 동행을 청했었지요.
그런데 태백산에 제 자리가 있다는 겁니다.
친구들이 없었다면 아마 다른 산길을 걸었을테지요.
미안했지만 태백산으로 발길을 돌렸지요.
역시 산보다 사람입니다.
오늘따라 달리는 버스가 참 더디게 느껴집니다.
화방재에 한팀을 내려 놓고 바로 옆의 유일사매표소에 도착을 했지요.
음~~~
화방재에서 내릴 걸...하는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산은 보이지 않고
길도 보이지 않고
길을 가득 메운 사람들만이 눈에 들어옵니다.
빙화를 찾는 모습들이 귀엽습니다.
일행들과 동행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잠시 한눈 팔면 수많은 인파속에 묻혀 저만치 앞에 머리만 보입니다.
산에 왔으니 산과 친구하라는 뜻이었을까요?
걷다가 잠시 뒤돌아본 그 곳에
고사목이 된 주목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습니다.
반쪽의 몸엔 다른 몸을 내 몸처럼 껴안고 말이지요.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리 해야겠지요.
친구가 사진을 아주 멋지게 찍어 주었습니다.
함백산과 매봉산? 조망이 아름다운 곳... 주목이 없었다면 밋밋했겠지요.
살아있는 나무보다 주목의 고사목이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잡아당기나봅니다.
고사목 아래에는 여지없이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고사목이 지나왔을 오랜 세월이 고스란이 느껴지기 때문일겁니다.
장군단
천제단
장군단 입구에도 천제단 입구에도 사람들로 북적이네요.
조금 투박해 보이는 장군단에 비해 천제단의 둥근 모습은 너무 부드럽습니다.
각지고 차거운 돌로 만들었지만
머리에 꾹 눌러쓴 모자처럼 따스해 보입니다.
천제단 돌을 붙들고
아니면 주목의 마른 등걸에 기대어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며
뼈저린 외로움에 누군가 사무치게 그리워질때까지 서 있어 보고도 싶은데....
그러기엔 사람들이 너무 많고
갈 길도 바쁩니다.
오늘은 문수봉엘 꼭 가보고 싶거든요.
멀리 산 옆구리를 돌아 문수봉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 사진의 오른쪽에 보이는 돌로 쌓은 단이 하단일까요?
북쪽만 빼고 계단이 있다는 설명으로 봐서 맞는것 같기도 합니다.
하단에서 한 컷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tv이를 보는데
"거위의 꿈"을 부르는 김동하의 노래에 맞춰 가수 인순이씨가 수화를 하더라구요.
서로 소통한다는 것...말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요.
눈빛으로도, 몸짓으로도.. 또..
저 마른 가지로 나무가 내게 무슨 말을 건네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무가 하는 말을 저는 알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짐짓 알았다는 듯 그냥 고개를 끄덕거려봅니다.
주름 깊어진 아버지의 손등같기도 하고
수화를 하는 손가락처럼 섬세하기도 한 마른 가지가
참. 아름답고. 또. 슬픕니다.
문수봉 가는 길은
잠시 한 눈 팔아 길을 벗어나면 무릎까지 푹 빠지는 눈길에
하얗게 빛나는 사스레나무와 푸른 하늘과 사람이 정말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지요.
문수봉 350m 이정표를 지나며 느리지만 쉬지 않고 걸어봅니다.
덕분에 문수봉엔 들꽃님 다음으로 도착을 했네요
문수봉의 조망이 시원하니 좋습니다.
문수봉이 참 좋더라고 반달곰님께 말씀드렸더니
돌 뿐인데 뭐가 좋으냐고 하십니다.
그러게요. 돌이 왜 좋은지 모르지만 참 좋습니다.
눈꽃도, 상고대도, 빙화도 보지 못한 산행이었지만
없는 것을 아쉬워하기보다는 지금 곁에 있는 것을 즐기줄 아는 멋진 산친구들이 있어
즐겁고 행복한 산행이었습니다.
역시 산보다 사람입니다.
2013. 2. 2
유일사매표소~ 장군봉~ 망경봉~ 문수봉~ 당골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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