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20일 토요일
나홀로 산우회 회원 30명과 함께
원래 계획은 이랬다.
도리~ 비계산~ 마장재~ 우두산~ 의상봉~ 고견사까지
선두팀은 장군봉까지 진행해 고견사로 내려온다 했으니
별부담없이 산행을 즐길 수 있을것 같아 따라나서기로 작정을 했다.
그런데 일기예보가 심상치가 않다.
워낙 고르지 않은 4월의 날씨였는데 전국적으로 비 소식까지 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내리던 비가
마치 우중산행을 각오하고 찾아와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려는듯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곧 눈으로 모습을 바꾸어 내려주었다.
와~ 세상에
곡우라는데....
곡우에 비가 내리면 풍년이 든다는데
비에 더해 눈까지 내렸으니 대풍년이 되리라
초입에서 만난 각시붓꽃을 제외하고는 모두 눈속에 파묻혀 애처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노랑제비꽃, 산괴불주머니, 고깔제비꽃...
그 꽃들을 눈속에서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말이다.
꽤 가파른 오름길에 미끄럽기까지한데다
풍경에 취하고 꽃을 보느라 걸음이 더디기만하다.
넉넉잡고 한시간반이면 비계산 정상에 닿겠지 했는데 얼마나 걸렸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앞서거니 뒤서거니 천천히 걸어주는 동행들이 있어
마음 푹 놓고 여유를 부릴 수 있어 좋았다.
회원님 한분이 고깔제비꽃과 마주하고 있는 모습을 찍어달라고 하신다.
내게 부탁한 건 아니지만 꽃을 찍는 김에 한장 찍어보았다.
갑작스레 내린 눈만으로도 버티기가 버거운데
거인이 내려다보고 있으니 꽃의 마음이 어땠을까 ^^*
꽃을 보는 마음은 또 어떤것이었을까
마주본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싫어하는 것과 오래 마주보는 일은 없을것이기 때문이다.
합천군에서 세운 첫번째 비계산 정상석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고
이번엔 거창군에서 세운 두번째 비계산 정상석을 만나는 동안
조망이 아쉬웠지만
조망까지 욕심내면 안될것 같았다.
진달래꽃봉오리가 아니라면 누가 이 풍경을 보고 4월 하순의 날씨라 하겠는가.
비계산 정상에서 마장재를 거쳐 하산하게 될 줄 알았는데
후미팀을 맡은 등반대장께서 마장재로 진행하기엔 좀 위험한 밧줄구간이 있어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묻는다.
아쉬움이 남지만...
밧줄 구간 문제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대장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눈만 아니었으면 거뜬히 갈 수 있는 길이었겠지만
회원들의 안전을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으니까.
능선 삼거리에서 출발지인 도리로 내려갈것이냐 산제치로 갈것이냐 고민끝에
가파른 도리보다는 거리가 멀더라도 능선을 타고 가는 산제치로 가기로 결정을 하였다.
무릎이 약한 나로서는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지.
아마도 도리로 내려갔다면 여유롭게 즐길 여유가 없었을것이다.
산제치로 내려가는 내내 완만한 능선길이어서
눈쌓인 진달래와 멋진 설경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해주어
얼마나 즐겁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언제 찍히는지도 모르게 찍힌 사진
오늘 처음 뵌 회원님이 찍어주신 것이다.
행복한 표정을 보면 산행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오랜 시간이 지난다음에 봐도 그 느낌 그대로 살아날것만 같다.
어디는 봄이고
어디는 겨울이고
또 어디는 가을분위기가 물씬 풍기던 산행
아름다움의 조건엔
변화와 공존이 필요할것 같다.
그 조건이 충족된 오늘의 산행
다시 없을 멋진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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