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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나를 만나다/산행일기(2011~2015)

지리산 천왕봉

 

 

 

 

 

 

 

 

 

2014.  10.  23일

 

중산리 ~ 칼바위 ~ 망바위~ 로타리대피소 ~ 천왕봉~ 장터목대피소~ 칼바위 ~ 중산리

대략 12km  5분 모자란 12시간

 

 

 

 

 

 

 

 

꿈도 꾸지 못하고 그저 마음속에 품고만 있던 천왕봉이었다.

산악회를 따라 나서기도 버거운 길

그렇다고 혼자서 훌쩍 떠날 용기도 없었던 길.

바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구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계곡과 능선을 휘 휘 돌아 한달음에 천왕봉에 오를텐데.

그 길을 함께 걸을 동행이 생겼다.

다른 듯 닮은 네 명이 함께  모였다.

 

새벽 세시에 서산 출발

중산리 주차장에 도착하여 차거운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밥심을 채웠다.

지고 갈 힘이 없으니 넣고 갈 밖에.

오리온자리를 바라보며 산행을 시작했는데

내려와서 올려다 본 하늘엔 카시오페아가 반짝이고 있었다.

내가 산길을 한바퀴 돌아 제 자리로 돌아올 동안

별들도 제 갈 길을 걷고 있었나보다.

별만큼이나 높고 멀어보였던 천왕봉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는 하늘아래 뫼가 분명하다. ^^*

그러니 다시 꿈 꿀 수도 있을것 같다.

 

 

 

 

 

 

법계교에서 바라본 계곡의 단풍

 

 

통천문 들머리에 우천 허만수 추모비가 있었다.

이름은 들어봤으나 이곳에 추모비가 있는 줄은 몰랐다.

칠선계곡을 무척 사랑하셔서 그곳에서 마지막을 보내셨을거라고 짐작되는

지리산 산신령으로 불리우는 분이란다.

천불동계곡, 탐라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계곡의 하나라는 칠선계곡도 걸어볼 날을 기대해봐야겠다.

 

 

 

중산리에서 산행의 시작을 알리는 통천문.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통과할 수 있는 커다란 문인데도

이 문을 통과하기까지 수십년이 걸렸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오늘 중으로 천왕봉에 서리라.

 

 

 

 

며칠전 비가 와서인지 계곡 오름길의 물소리에 힘이 넘치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처투성이인 단풍들도

멀리서 보면 그저 곱게만 보인다.

단풍....

참 많은 의미를 함축한 단어인것 같다.

푸르름의 시간을 보내고 모두 제각각 다른 빛깔로 맞는 가을

빨갛게 노랗게 누렇게.... 어떤 빛깔로 단풍들어도 다 아름답다.

떨어진 잎까지도 아름답다.

 

 

 

 

 

 

 

 

오늘의 동행들 모습이다.

단풍너머 그들의 모습이 희미하다.

이게 아닌데....

내가 남기고 싶었던 것은 함께한 이들의 행복한 모습이었는데

단풍이 앞을 가로막았다.

일부러 그런것이 아니니 그들도 이해해줄거야....가을이니까.

 

 

 

 

 

 

 

 

망바위에 도착했다.

성큼성큼 오르는 둘리님.

내려올 일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둘리님을 믿고 올라가보기로 했다.

카메라까지 내려놓고 최대한 빈 몸으로....

올라서니 아쉽다.

카메라 메고 올라올걸.

내려올때는 믿음직한 동행이 옆에 있는데도 조금 무서웠다.

웬만하면 올라가지 마시길 ^^*

 

 

 

 

 

노각나무

 

 

단풍나무 보다는 참나무 종류가 더 많아 보였는데

더러 보이는 노각나무의 수피가 오늘따라 더 예뻐 보였다.

 

이름표를  달고 있는 황벽나무

나비들이 좋아하는 나무라해서 궁금했는데 반가웠다.

굴참나무보다는 조금 잔잔하고 색이 짙은 느낌의 코르크질 껍질을 하고 있었는데

잎 사진을 보니 우리동네 백제의미소길에서 만난 나무의 느낌과 비슷하다.

내년에 그 길을 걸을 때 생각이 나려나.

이맘때쯤 남아있는 나뭇잎에는 대왕팔랑나비의 집이 있을 확률이 많다고한다.

물론 대왕팔랑나비가 사는 지역이어야겠지만.

대팻집나무도 만났는데 한참을 쳐다본 후에야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염불소리가 반갑게 들려왔다.

법계사가 가까워졌다는 얘기겠지

헬기장에서 올려다본 천왕봉의 모습이 푸근하니 아름답게 보이는데

올라가는 길은 그다지 푸근하지가 않다.

 

 

아래의 저 톱니같은 능선

어느분의 산행기를 보니 천왕봉에서 중봉을 거쳐 대원사로 내려가는 써리봉 능선이라 했던것 같다.

모내기 전에 논을 평평하게 고르는 일을 우리동네에서는 써레질한다고 하는데

써레처럼 생겨서 써리봉인가 혼자 생각해본다.

내장산의 서래봉도 써레를 닮아서 서래봉이라 이름지어졌단다.

 

 

뒤돌아본 헬기장.

헬기장 근처에 문창대 갈림길이 있다고 하는데

아마 그곳에 갔더라면 산행시간이 두시간은 더 늘어났을 것이다.

 

 

 

로타리 산장 근처의 기암과 바위굴

 

산장 지붕위에 떨어진 낙엽이 예뻐서 한장.

로타리 산장에서 에너지 보충.

이것저것 많이도 챙겨온 둘리님은 떠넘겨받은 짐까지 군소리없이 지고 올랐다.

고맙고 미안하다.

 

 

 

 

 

 법계사의 일주문을 대신하는 듯한 나무와 바위 그리고 단풍나무

법계사의 일주문은 지난해 태풍에 날아갔다고 한다.

 

 

 

법계사 갈림길 지나 바로 위에 나뭇가지 사이로 넓직한 바위가 보인다.

먼저 내려섰다가 올라오는 친구를 멈추게 하고 바위를 향했다.

사진에서 보는것처럼 나뭇가지에 많이 가려있어서인지 그곳으로 내려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쪽 저쪽으로 조망이 참으로 아름다웠는데

그 곳이 바로 新문창대라고 했다.

널찍한 바위에 앉아 앞산을 바라보니 선뜻 발걸음을 떼어놓기가 어렵다.

 

 

 

 

 

신 문창대의 모습

 

 

 

 

 

 

 

新문창대에서 바라본 舊문창대

 

 

 

 

 

 

 

 

 

 

문창대의 모습은 천왕봉 오르는 동안 여러곳에서 가까이 조망 되었는데

은은한 단풍위로 우뚝 솟아있는 바위때문에 유난히 눈에 띄는 풍경이었다.

 

 

 

회목나무 열매.... 법계사 지나서 제법 보였다.

꽃이 보고 싶은 나무 중의 하나다.

열매의 색깔은 간과하고 날개가 있는지 여부와 4수성인지 5수성인지만 살펴보고

회나무인지 나래회나무인지....했었다.

 

 

 

 

물이 고여있어서 사진을 찍었는데 웬지 바위의 표정이 애처러워 보인다.

 

 

 

 

 

개천문 앞에서 잠시 쉬어갔다.

법계사 지나고부터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동성고라고 했고, 군산고등학교에서도 왔단다.

학생들이 인사성이 얼마나 바른지

"안녕하세요" 건네는 인사를 모른체 할 수도 없고

인사받느라 더 힘들었지만 기특하고 든든하기도 했다.

천왕샘에서도 물을 마시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앞에 있던 학생이 한바가지 물을 떠서 내게 먼저 건네주었다.

아들 있으면 동성고에는 보내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았는데

지금 그 또래 아들이 있었다면 억지로 끌고라도 천왕봉에 한번 함께 오르고 싶었다.

 

 

 

 

 

 

 

 

 

 

 

 

 

 

 

이제 300미터 남았다.

5.4km중에 300미터 남은것이니 거의 다 온 셈인데

정상을 향한 가파른 오름길이 그다지 호락호락 하지가 않다.

천천히 한 발 한 발 오르며 뒤돌아보니

아침에 출발한  저 산아래보다 파란 하늘이 훨씬 더 가까워 보였다.

야~호!!

 

 

 

 

 

 

 

먼저 도착한 동행이 손을 흔들며 반기는 모습을 보니 힘이난다.

영차!!

 

 

 

 

 

 

 

 

 

오랜 산친구들

 

 

복장이 특이한 산행객이 있어 눈길이 갔었는데  함께 찍히니 반갑다.

 

 

 

 

일망무제 .. 사방으로 펼쳐진 산군들이 끝이 없다.

가슴이 확 트이고, 높은 곳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다른 산의 정상에 올랐을 때와는 다른 그 무엇이 있었다.

 

이름을 불러줄만한 산과 봉우리가 있을까 휘 둘러보지만

내가 겨우 알아볼 수 있는 봉우리인 반야봉과 노고단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산행을 준비하면서 찾아본 산행사진을 보면서 알아보게 된

멀리 촛대봉과 그 앞의 일출능선 그리고 연화봉.

걷고 싶은 지리산의 산줄기와 봉우리들이 너무 많은데 어쩌나.

정상에서 한시간 이상을 머물며 천왕봉에 오른 기쁨을 만끽했다.

 

 

 

 

 

 

산림청 헬기가 지나니 모두들 손을 흔들며 반긴다.

그런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만약의 경우 다치거나해서 구조를 기다릴경우 헬기를 만나면

두 손을 번쩍 들어 V자를 만들란다.

그것이 국제적인 구조신호라고 한다.

 

 

 

 

 

 

 

 

 

장터목으로 향하면서 아쉬움에 자꾸만 뒤돌아보았다.

또 올 수 있을까?

천왕봉에 오르는 동안 이곳저곳을 두루두루 느끼며 천천히 걸었던것도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게다.

이곳은 오늘이 마지막인것처럼 즐기기 위해서.

동행 모두 같은 마음이었던것 같다.

 

 

 

 

 

 

 

 

 

 

 

 

제석봉으로 가는 길

하마터면 다른 계곡으로 내려가 고생할뻔했다.

스님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도 왜 그리 내려섰는지....

 

 

 

 

 

 

 

커다란 바위와 사스레나무?

잎을 떨군 지금도 인상적이었지만

눈덮히고 상고대가 맺히면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 될것 같다.

 

 

 

제석봉 전망대

 

 

 

 

 

 

 

 

 

 

 

장터목으로 향하는 길.....일출능선과 오른쪽이 연화봉?

 

 

 

 

 

 

지금시간 오후 4시

남은 거리 4.8KM면 내 걸음으로 세시간은 족히 걸릴테니

걸음을 재촉한다해도 어둡기전에 내려가기는 힘들것 같다.

그래도 서둘러야지.

등산로와 가까이 있는 계곡은 수량도 풍부하고 단풍도 아름다웠다.

계곡에 잠시라도 발을 식히고 싶었지만

그 말을 입밖에 낼수가 없었는데

돌아와서 하는말이 친구도 그랬단다.

 

 

 

 

 

 

 

 

 

유암폭포

 

 

 

 

 

어딜가든 돌멩이가 있는 곳이면 돌탑이 없는곳이 없는것 같다.

그냥 널부러져 있는것보다 얼마나 보기 좋은가

나도 마음을 담아 돌멩이 하나 얹어볼까?

다시 누군가 내 돌 위에 또 돌을 얹을 수 있을만한 돌을 찾고 있는데

둘리님이 돌멩이 하나 슬쩍 얹어 놓는다.

그래

하나를 쌓든 둘을 쌓든 높이가 무슨 상관이랴

 

 

 

이후로 불빛에 의지해 내려오는 길.

든든한 동행이 있으니 곰이 나와도 무섭지 않을것 같다.

계곡 물소리마저 아련하여

어둠속에서 산을 잠재우는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김용택님의 "산"

 

 

강물을 따라 걸을 때 강물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흐르는 거야

너도 나처럼 흘러봐

 

하얗게 피어 있는 억새 곁을 지날 때 억새는 이렇게 말했네

너도 나처럼 이렇게 흔들려봐

인생은 이렇게 흔들리는 거야

 

연보라 색 구절초 꽃 곁을 지날 때

구절초 꽃은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한번 피었다 지는 꽃이야

너도 이렇게 꽃 피어봐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를 지날 때

느티나무는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뿌리를 내리고

그 자리에서 사는 거야

너도 뿌리를 내려봐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밑을 지날 때

구름은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허공은 떠도는 거야

너도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돌아봐

 

내 평생 산을 지나다녔네

산은 말이 없었네

산은, 지금까지 한마디 말이 없었네.

 

 

 

 

강물처럼 흐르면서 살기도 했을게다

갈대처럼 흔들리면서도

느티나무처럼 뿌리를 내리려고 노력도 했을게다.

구름처럼 정처없이 떠 돌고 싶은 맘음 누르며

연보라빛 구절초보다 더 예쁘게, 더 환하게

활짝 꽃피우던 시절도 있었으리라.

살면서 그런 날들이 있었을게다.

그러니

산처럼 살았던 순간이라고  없었을라구.

어떻게 사는 것이 산처럼 사는 것인지 잘은 모르지만

말을 잊고 뜨거운 땀 흘렸던 오늘 같은 날이

그런 날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