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에서 나를 만나다/산행일기(2005~2010)

휴가보고서. 상왕산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은 만리포에 가고 싶다.

봄꽃이 만발하면 천리포 수목원에 가고 싶다.

연꽃이 필때나 석산이 필 즈음에도 수목원에 가고 싶다.

산딸기가 익을 때면 도비산엘 가고 싶다.

그리고 백일홍 꽃이 피면 가고 싶은 그곳...개심사

늦게 얻은 징검다리 휴가

그 첫째날의 계획을 세웠다.

이십이년전 넘었던 그 길을 넘어 봐야지

멀지도 않은 그 길을 왜 걷지 못했는지.

"함께 개심사 뒷산 넘을래? "

영실이 한테 전화했다

"개심사 뒷산 넘어 용현계곡으로 내려올래?"

금숙이 한테 전화했다.

전화를 했지만 함께 하지 못한 친구들 이름은 생략...

버스시간 알아두고,  각자 냉장고에 있는 먹을거리 한두가지 싸 오기로 하고, 연화가 해 왔었다는 찰밥이 생각나는데 찹쌀이 없네

그냥 풋콩만 듬뿍 넣어 밥을 지었지

차 시간에 여유가 있어 늦장을 부리는데 울리는 전화벨 소리

정숙이다.

"오늘 뭐해?"

이하 생략

"내가 개심사까지 태워다 줄까?"

"ㅎㅎㅎ 어머 좋아라"

함께 하는 친구들이 버스길부터 삼십분정도 걷는 개심사길에

지쳐버리면 어쩌나 내심 걱정스러웠는데 이게 웬 횡재야

편안히 수다떨며 개심사 저수지길을 도는데

"어 아무개 아니야?"

공무용 트럭을 세워두고 저수기 가에 서 있는 우리의 동창생 ..차를 후진시켜 그에게로 가는데

웬 모르는 차가 후진해와 어리둥절 했단다.

음료수라도 사준다며 앞서라 하여 개심사로 향했다.

음료수랑 과자랑 맛있는 연양갱까지....산길 걸으려면 에너지 보충이 필요하다면서....

오늘 돼지꿈도 꾸지 않았는데 이리 좋은 일이 자꾸 일어난다냐

"우리 고란사로 데리러 와라"

전화만 하란다.

보기도 잘 봤다고....

일년이 좀 넘은것 같은데 개심사는 많이 달라졌있네

일주문이 새로 생겼고, 작은 연못의 썩어가던 외나무 다리도 새로했네

연못가의 백일홍꽃이 못의 수련잎위에 떨어져 또 다른 꽃을 피우고

해탈문아래 계단 옆 공작단풍이 참 탐스럽네.

대웅전에 간단하게 삼배로 인사여쭙고 산을 향했지

길에 대한 오래전 기억은 잊은지 오래지만 오르다보면 길이 있겠지

적당한 그늘과 축축한 흙길 선선한 바람

참 날씨도 딱이다. 어쩜 이리 좋나

오길 참 잘했지? 내 덕분이지?  공치사를 했지

정상에 오르니 갈림길이네

위치를 어림잡아 갈 방향을 정해놓고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쉬는데

조용하던 산길에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네

하여 쳐다보니 운동을 나오셨는지 스님들 몇분이서 오시는데

일어나 합장을 하여나 하나 엉거주춤 일어서서, 그냥 서 있기 민망하여

"어느쪽으로 가야 용현계곡으로 내려 갑니까?"

길을 여쭈었네

그곳부터 이어지는  소나무 오솔길

발바닥에 와 닿는 느낌이 정말 포근하니 다들 좋아라 한다.

가지끝 새로 틔운 소나무잎의 초록이 햇살을 받아 얼마나 이쁜지

봉지를 하나씩 꺼내 들고 솔잎을 땄지.

소나무에 미안해 하며 아주 조끔식 말이지.

아! 솔잎에 대한 엊저녁 이야기

"아들아 솔잎 좀 한번 검색해봐라" 설겆이를 하면서 아들에게 말했지

"고혈압에도 좋고, 흰머리도 검게 하고, 늙지도 않게 하며........신선들의 식품이라네요.

근데 왜 산신령들은 머리가 하얄까요?"

" 글쎄, ...몸에 좋다고 다 먹는건 아니잖니?  다른 좋은게 많아서 솔잎은 안 드셨나보네. 

 또 산신령님은 머리가 하얘야 더 보기 좋지 않니?"

낮으막한 가지를 볼때마다 탄성을 지르며, 군데군데 붙은 벌레때문에 놀라가며

조금씩 솔잎을 따는데 저쪽에서 또 노스님 한분이 오시네.

죄지은 아이들처럼 깜짝 놀라

"솔잎 조금만 딸게요"

허락을 받았지.

왜 그랬을까?

그곳에 사시니 주인이 누구이던 .....아니...소나무 잎을 따는 것도 살생에 드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걸어 내려와 보니 보원사지 탑이 있는 곳이네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서 자리를 물색하는데

식당에서 설치한 계곡가의 평상이 한가하네

주문받으러 오면 어쩐다냐 웃어가며 제일 좋은 곳으로 자리를 골라 앉았지

한가지씩 꺼내는데 진수성찬이 따로 없네

솜씨좋은 금숙이가 직접했다는 깻잎에 풋고추 고추장

배추김치에 묵은 짠지김치와 김, 떡 그리고 어쩜 약속이나 한듯이

한가지씩 가져온 과일이 서로 다 다르네

포도, 방울토마토, 천도 복숭아.

와! 정말 맛나데

자리를 말끔히 정리하고 곁에 있는 빗자루로 평상을 깨끗이 쓸고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이어지는 이야기

물소리 좋고, 바람 좋고, 친구들 웃음소리 좋고...

솔잎따러 언제 또 오자하네.

" 우리만 안 늙으면 어쩐다냐..하하 호호.."

적당한 시간에 딱 맞춰 시내버스까지 들어오네

오늘 참 운수 좋은날, 즐거운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