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에서 나를 만나다/산행일기(2005~2010)

운장산..뽕나무를 만나다

추억을 만나다.


뽕나무!!
그곳에 뽕나무가 있었다.

내려오는 길
잠시 계곡물에 발 담그려 차를 세운 그곳
반일암,운일암 계곡 자갈밭 큰 바위옆에 뽕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나는 일찍 산행을 끝내고 계곡 상류에 발을 담그고 온 터라
맑은 물 속에 우뚝 솟아있는 큰바위에 앉아 바쁘게 흐르는
물길을 바라보다가
물속 바위에 자라고 있는 철쭉나무때문에
그 바위가 떠나왔음직한 계곡 건너편 산자락을 바라보다가
일어서는데
시커먼 오디가 눈에 들어오고 누군가가 열심히 따고
있는게 아닌가.

그곳으로 바쁜 발걸음을 옮겼지만 나무를 오르거나 바위에
올라야만 오디를 딸 수가 있는데
마음이 바빠서인지 길이 보이지 않는다.
가보니 그 위에 있는 사람은 몸집 좋은 아줌마였다.

손을 잡아줄테니 바위를 건너라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반바퀴를 빙 돌아 나무에 바위에 아줌마손에 의지해 겨우 바위에 올랐다.

어렸을적에도 이렇게 오디가 많이 열린 뽕나무를 본 적이 있던가.

너무 농익어 가지를 당기자 뚝 뚝 떨어져 내리는 놈들이 많다.

에고 아까운거
이 많은걸 어찌한다.

허연 머리도, 꾹 눌러쓴 모자 때문에 엉망이 되었을 머리모양도 아랑곳 없이
모자를 벗어 들었다.
물이 들 터인데.. 어쩔 수 없지

정신없이 모자에 오디를 따 모으는데 얼핏 보니 계곡에 발 담그던 일행들이 보이지 않아
아쉽지만 서둘러 내려왔다.

일행 몇명에게 모자 통째로 내어주자 맛있다며 순식간에 사라진다.
가끔 시장에서 할머님들이 따온 오디를 보기는 하였지만
오디가 주렁주렁 익은 뽕나무를 본지가 언제던가

네 잠 잔 누에의 통통한 몸통처럼 탐스런 오디
하얀 내 모자에 검붉은 흔적으로 남아있다.



착 각

무슨 암자인줄 알았다.
아! 경치좋은 계곡에 있는 암자겠구나
운일암 반일암

하지만 계곡을 오르는 동안 도무지 암자는 보이지 않았다.
미리 자료를 찾아 보았는데도 건성으로 보았나보다.
표지판을 보니
雲日岩 半日岩
이름에 걸맞게 우거진 계곡은 정말 절경이었다.
태풍 디앤무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려서 계곡물은 불어나 있었으나
여전히 맑고 푸르렀다.

산과 계곡이 깊어 해가 반나절 밖에 안들어 반일암이라 한다는데
이곳에 있으면 하루해가 반일처럼 짧고 아쉬울것만 같다.


산 행

전북 진안의 운장산

외처사동 주차장을 지나 산으로 접어드는 입구에 있는 작은 막사에
토종닭이 윤기나는 깃털을 뽑내고 있다.
볕이 붉은 수탉에서부터 약병아리까지 대 가족이다.

어릴적 집에서 기르던 사나운 수탉때문에 작대기를 들고서 학교에 가던 때가 생각나
한번 더 뒤돌아 보았다.

작은 계곡을 건너 곧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가파른 오르막에 작은 자갈길 그리고 아직 물기가 많이 배어있어 오르면서도
내려올 일이 걱정이 되었다.

숲이 우거져 터널을 걷는듯 하고 오르막 끝에 간간히 쉴 수 있는 평지가 있어
오를만 하였지만 역시 여름산행이라 힘이 든다.

숨을 돌리고 나면 다리가 더 무거운듯 하고, 그냥 걷자니 숨이 턱에 차 오르고
되돌아 오는 산행이라 그만 주저 앉고 싶을때가 몇번 있었으나
그래도 선두 그룹에 끼어 목적지인 동봉에까지 겨우 올랐다.

동서남북으로 계룡산 대둔산 덕유산 마이산 지리산까지
조망이 가능한 산이라 해서
눈이 호강하겠구나 기대를 했었는데 안개가 끼어 많이 아쉬웠다.

동봉 정상에서 한숨 돌리고 뜨거운 땀이 식으니 한기가 돈다.

간단하게 과일과 차를 마시고 내려갈 일이 걱정인 아줌마 한분과 함께
먼저 하산을 서둘렀다.

눈이 밝은 아줌마는 취나물이며 질경이며 나물을 잘도 뜯는다.
"아줌마 이거 취나물 맞죠?"
하고 물으면 아니란다.
아직 취나물도 제대로 구분 못하는 중년의 아줌마라니....

삼분의 일은 내려왔음직한데 그제서야 올라오는 일행들도 있다.
시간 여유가 있으니 걱정할 건 없을것 같다.

하산을 끝내고 둘이서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여름이
무르익었는데도 발이 시리다.
장금교 아래서 단체로 멱을 감던 어린시절처럼
풍덩 뛰어들고 싶지만 그랬다간 영락없이 고뿔 들것 같아
종아리까지만 물에 담그고
피로를 씻었다.

늦은 점심

몇시인지도 모르겠다.
세시쯤 되었을까?
된장국이랑 멸치조림이랑 김치랑 잘도 챙겨왔다.
식판까지....

내려오는 대로 한사람 한사람 자리를 잡는다.
나도 식판에 양껏 담아 풀밭 한곁에 자리잡았다.
열심히 먹고 있는데 무언가 꾸물꾸물 기어오는데

도마뱀 아닌가

손가락만한 크기의 그것이 어찌할 것도 아닐테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여
잔뜩 긴장한채 식판을 깨끗이 비워냈다.

점심을 끝내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느티나무 그늘 풀밭
그대로 누우면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을것 같다.

내가 갖고 있는 것들 중에서 내가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것들이 얼마나 될까?
지금 내 몸 하나로 부족함이 없는데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내 마음 또한 달라질테니...


빗속의 귀 가

귀가길은 내게 안도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괴로운 시간이기도 하다.
법의 사각지대 ^^*
하지만 정말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을 보는 일은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군산 휴게소를 지나 커튼을 닫고 본격적인 놀이가 시작되었다.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가끔 박수를 치고 웃어주면서 창밖을 보니 컴컴하다.
시계를 보니 여섯시 오십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상하다. 이 시간이면 아직 해가 중천에 있을 때인데...
검은 하늘에 어스름한 저녁 안개에 신비로운 기운마져 느끼게 한다.

곧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번쩍 번쩍 번개도 때린다.
서산에도 비가 왔으면 좋겠다.

왜?

내 바램대로 서산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자전거도 고스란히 비를 맞고 있었다.
도착하자 약속이 없다면 바래다 줄텐데..하며 미안해 하는
일행에게 인사를 건네고
아무 망설임 없이 빗속으로 들어갔다.
방수잠바를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흠뻑 젖으며
자전거로 빗속을 달리는 기분

꽤 좋다.

정말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일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이 행운

그래 내겐 틀림없는 행운으로 하루를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