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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나를 만나다/산행일기(2005~2010)

두물머리를 바라보며..수종사

그곳

내가 걷고 싶은 길이 있는 곳
달리고 싶은 길이 있는 곳
내가 내려다 보고 싶은 풍경이 있는 곳


잔잔한 강물에 버드나무 부들 우거진 그 길
가을 풍광이 참 멋지다는데
노랗게 버드나무 새순돋는 봄에도 정말 멋질것같은 그 길
그 길을 달렸다.
기꺼이 함께 달려주겠다는 친구들이 있어 함께 달렸다.
낮은 승용차에서 그 풍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없었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길이었다.


그 길 중간쯤 조안보건소 옆으로 접어들어 힘겹게 올라간
산길

숲으로 접어들어 맑고 신선한 산 공기를 마시고 싶어
차창을 여니
뜨거운 지열이 확 올라온다.
장마끝에 시작된 폭염이 어느정도인지 짐작되는 순간이다.


이 뜨거운 길을 한시간을 걸어 올라가야 했으나
그냥 차에 몸을 싣고 절 아래까지 올랐다.
급한 커브와 가파른 경사길에 앉아 있는 나도 온 몸에 힘이 드는데
차는 얼마나 힘이 들꼬

호젓한 산길에 둘씩 셋씩 걸어 오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여유롭고 편안해 보인다.


커다란 미륵불을 지나자 나무그늘 사이로 계단위에 아담한
절집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계단입구에 약수가 있었는데 정말 시원하다.
이곳이 물맛이 좋기로 유명하다는데...
그리하여 그 물로 끓이는 차맛 또한 그만이라는데

계단을 오르자 오른편으로 삼정헌이라 쓴 다실이 눈에
들어온다.
누구라도 들어가 차를 마실 수 있는 그곳
통유리 밖으로 두물머리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몇명이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무료로 차를 마시는 데도 용기가 필요한 걸까
아니면 다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그냥 중간이라도 가고
싶어서였을까?
그냥 살짝 엿보고 들어가는 것은 그만 두었다.


작고 아담한 절이었다.
듣던 대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강가에 즐비한 고급 음식점들이 없었던, 그리고 강 이쪽과
저쪽을 잇는 여러개의 다리가
없었던 그 옛날의 풍경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대웅전에서는 누군가의 제가 올려지고 있었다.
아마 좋은 곳으로 갔을것이다.

불이문 밖에 있는 ( 현판이 없어 모르겠지만 내 짐작엔 그 문이 불이문일것 같다.)

해우소는 그다지 운치있지는 않았지만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해 놓았고
다녀온 친구말에 의하면 무척이나 깨끗하다고 했다.
그 앞에 돌탑처럼 쌓아놓은 소각장이 있었고 그 너머
세조가 심었다는 수령 525년이 되었다는 은행나무가 있었다.

둘레가 7미터라는데 그 크기만큼 주렁주렁 은행을 매달고 있었다.
함께한 친구 한명은 파란 은행은 처음 본다고 했다.
몇알 떨어져 있어 으깨어 보니 파란 속살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아직 단단한 껍질을 준비하지 못한 거였다.

찾아본 자료에 의하면 그쪽으로 오는 길에 일주문이 있다고 했는데
그곳으로 내려가는 길도, 그리고 그 옆 정상으로 오르는 길도
걷고 싶었던 그 길을 나는 걸을 수가 없었다.
한시간을 걸어 내려갈테니 그곳에 가서 기다려 달라 어찌 말할 수 있는가

그 대신 미륵불있는 곳까지만 걸어가기로 하고 한친구와 둘이서 먼저 출발하였다.

이 더운 여름에 땀한방울 흘리는 수고도 없이 그 좋은곳을 올랐으니
내가 걷고 싶었던 그 길을 못 걸은 아쉬움은 그냥 접어야겠지
얻는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니까

한친구가 배가 고프단다.
지금까지 시장기를 느끼지 못했는데 그 친구의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시장기가 느껴졌다.

북한강변을 따라 어느 매운탕집에 들어갔다.
좀 덥기는 했지만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또 강가의 찻집에서 수상스키 타는 사람들의 시원한
모습을 감상하며 차를 마셨다.

이천사년 칠월 이십이일 하루는
이렇게 여유롭고 즐겁게 채워졌다.
이것이 내게는 일주일 아니면 한달 어쩌면 평생 보약이 될지도 모르겠다.

 

2004.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