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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나를 만나다/산행일기(2005~2010)

작은 언덕..옥녀봉

그냥 걸었어.

바람에 냄새가 실려오네

햇볕냄새인지

꽃냄새인지

그냥 바람냄새인지 모르겠어

땅에서도 냄새가 튀어 오르네

잎을 피워내느라

꽃을 피워내느라

힘들어 새어나온

나무뿌리의 방귀냄새인가

어쨌던 기분좋은 냄새군

향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향기라는 말은 말로서도 웬지

사치스러운 느낌이 들어

그래서 난 냄새가 좋아

냄새가 더 사는데에는 친숙하잖아.



그냥 걸었어

막내아이 엉덩이처럼 탄련있는 흙길

적당한 수분과 탄력으로

저절로 발바닥을 밀어올리네

계단을 내려서는데

운동화 속에 뭔가 들어갔나봐

자꾸만 걸리적 거리네.

엎드리기도 귀찮고 신발을 벗기도 귀찮기도 하려니와

발바닥을 기억하기 위해 그냥 두기로 했어.

걷는데 가장 수고하는 내발바닥

육십이 넘는 무게와 마음의 무게까지 얹어 이고 가는
발다닥의 수고를

나는 운동화에 들어간 작은 나뭇가지로 인해 비로소
느끼는거야

그럴 느끼기 위해 나는 발바닥에게 또 다른 수고를 더한
셈이지

그래서 신발을 벗고 나뭇가지를 털어냈어.

참으로 시원해 하는 발바닥

그리고는 곧 발바닥을 잊어버렸어



그냥 걸었어.

나무처럼 풀처럼 숨쉬려고 애썼지

그냥 편안하게 마음껏 들이마시고 마음껏 내쉬고

그런데 숨쉬는것조차 쉽지 않네.

아무리 들이마셔도 내 폐는

성에 차지 않는듯 씩씩거리고

아무리 내쉬어도

온전하게 비워지지가 않아

산에서 내려와서야 나는 비로소

온전하게 편안한 숨을 쉬고 있어.

누군가를 닮고 싶어하는것

누구처럼 되고 싶어하는것

음~!

욕심인가봐.



그냥 걸었어

커다란 느티나무 집 마당을 지났지

컹컹 반기던 개는 세마리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고

문은 꽁꽁 잠겨있네

마당가에 모시옷을 차려입은 것 같은 홀아비 꽃대와

광대수염이 무더기로 피어있지만

웬지 쓸쓸함이 감도는 그곳

언젠가 또 다른 개가 반기겠지

그냥 걷는 그길

그길에 내 안에 흐르는 강물이 넘쳐 흘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