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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나를 만나다/산행일기(2005~2010)

전나무숲길을 꿈꾸며..오대산

떠날때는

다 비우고 떠나라
머릿속, 마음속 모두 텅 비우고 가는 그곳
그곳의 순간순간을 가득 채워보리라
그러나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출발한지 삼십분도 되지 않아 가스불을 잘 끄고 왔던가...
아이들은 또 잠들지 않고 학교에 갔을까...
이럴때 잠시 핸드폰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전화해보면 될텐데...
핸드폰을 빌리기도 그래서, 그냥 그런 걱정은 접기로 했다.
하지만 모두들 휴게소에 쉴때마다 또는 산 정상에서,
또 능선길을 걸으면서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모두들 정말 바쁘게, 열심히, 치열하게 삶을 사는구나
통화가 되는 지역인지를 확인해가며 전화를 하고 전화를 받고...
벨이 울렸는데 밧데리가 다되어 통화가 안된다며 안타까와 하고..
이럴땐 또 없는게 속 편한거구나 생각이 들었다.


고정관념

내겐 일행이 없다.
친구들 중에는 산행시간을 맞출만한 여건을 가진 사람이 아쉽게도 없다.
그럴때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나하고 딱이었는데....대전으로 이사를 가버린 것이다.
혼자여서 심심할게 걱정이 되었다면 이곳에도 따라 나서지 않았을것이다.
다른 사람들 춤추며 노래하는것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고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는 일도 즐겁고
혼자 이런저런 생각과 공상에 빠지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이다.
그런 내가 심심해 보였을까?
고맙게도 걱정을 하며 가끔씩 말동무가 되어 주기도 했다.
일부러 혼자이기를 즐기는건 아니지만 혼자여도 그다지 심심하지 않을 수 있는데 ...........

태풍의 흔적

남녘과 동해의 태풍피해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산행을 한다는 것이 미안하다면서
잡힌 일정이라 취소할 수 없어 가는 것이니 행동을 조심해달라는 인솔자의 안내가 있었다.
오대산 맑은 계류를 따라 올라 월정사입구 피안교를 지나고부터
상원사 주차장까지 오는 동안 여러곳의 도로가 일부 유실되어
공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비로봉을 지나 하산길에도 아름드리 주목의 고사목들이 여러 그루 쓰러져 있었다.
이미 오래되어 이끼가 덮힌 것들도 더러 있었으나
근자에 누워버린 나무들의 모습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계곡은 수량도 풍부하고 너무나 맑아 모두들 탄성을 자아내며 바라보았다.

상상과 현실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았을 경우 풍경이라던가 인물에 대한 상상의 기대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나 또한 상원사 전나무 숲길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 컸었나보다.
아름드리 전나무가 일자로 도열해있는 그런 풍경을 기대했었는데.....
하지만 세월을 가늠할 수 없이 곧고 높은 아름드리 전나무들이 서 있는
오솔길은 옆에 함께 하는 계곡 물소리와 더불어 정말 좋았다.

그리운 님의 뒷모습

등산이 목적인 모임이기에 아쉽게도 여러 곳들을 그냥 지나쳐야만 했다.
월정사도...상원사도....그리고 적멸보궁도.....
특히 적멸보궁앞을 지날때에는 참 많이 아쉬웠다.
다른 사람들보다 발걸음이 조금만 빨랐다면 볼 수도 있었을터인데
꼴찌로 겨우 따라 올라갔으니 말이다.
그래도 아쉬워, 꼴찌를 독려하는 인솔자에게 잠깐 보고
가면 안되겠냐고 했더니, 역시 안된다고 한다.
계단이 얼마나 될까?
100? 200? 빨리 다녀온대도 2,30분은 걸릴 듯 하다.
꼴지인 처지에 고집을 피울수도 없었다.
몇십분씩 기다리게 한 전례도 있었으므로 더더욱 그럴수가 없었다.
그래도 자꾸 아쉬운 맘이 든다.
언제 또 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 곳인데
특별히 불교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그곳
그냥 보고 싶었는데
불원천리 그리운 님을 찾아와 말한마디 건네보지 못하고
뒷모습만 보고 돌아가듯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산행

상원사쪽에서 비로봉으로 오르는 길은 그다지 험하지는 않았지만
계단길이 많았다.
오늘은 초입부터 힘이든다.
어제 저녁까지 열심히 약을 먹어 감기기운도 물리쳤건만
그동안 게을리한 운동과 추석때 조금 불어난 몸집이 짐이 되나보다.
적당히 땀을 흘렸다싶었는데 몸이 조금 추워지는듯한 느낌이 든다.
오래전 지리산에서 갑자기 찾아든 오한 때문에 고생한 경험이 있는지라
은근히 걱정이 된다.
얼른 박하사탕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꼴찌를 하더라도 일행에서 많이 떨어지면 안되는데.....
또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면 안되는데....
일년에 한두번 찾아드는 뜨내기 손님같은 내가 뒤에 쳐지는게 걱정이 되었는지
인솔자가 나를 앞세우고 내 뒤를 따랐다
열심히 걸었다.
나중에는 모임의 회장을 맡고 계시는 초로의 아저씨와 예순이 넘은 아주머니
쉰살쯤 되엇을 아주머니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꼴찌 그룹을 만들었다.
다행히 그리 긴 코스가 아니었기에 시간 여유가 있어 쉬엄쉬엄 걸었다.
내가 제일 막내인데도 제일 빌빌댄다.
내가 그분들의 나이가 되었을 때, 저분들 처럼 산에 다닐 수 있을것인가 자문해보지만
지금같아서는 자신이 없다.
정상의 능선인데도 아름드리 나무들이 참 많았다.
주목과 떡갈나무, 그리고 햇살을 받아 온몸이 하얗게 은빛으로 빛나는 나무도 있었다.
문학작품속에 가끔 나오는 하얀 자작나무숲.... 그 하얀 나무가 자작나무일까?
그림으로 본적이 있건만 알 수가 없다.
한참을 가는데 일행 한명이 기다리고 서있다.
많이 떨어져오는 후미가 걱정이 되었나보다.
그곳에 또 주저앉아 과일이며, 음료수며 떡등의 간식으로 배를 채우고는
임도로 뚫린 편한 길을 놔두고 지름길로 접어들기로 결정했다.
비지정등산로라는 위험표지가 있었지만 그대로 가기로 결정했다.
몇가운데 비에 깍인 경사면이 장난이 아니었다.
두 아주머니는 무릅이 아프다면서도 잘도 내려가신다.
그래도 젊은 내가 다리가 아프다는 아주머니에게 스틱을 양보하고 걷자니
내리막인데도 땀이 흐른다.
제일 연로한 아주머니가 임도로 갈걸 잘못했다며 후회할 즈음
다시 만나는 길목에서 선두그룹을 만났다.
내려오는 동안의 긴장과 고행보다는 선두를 만났다는 기쁨이 더 컸다.
오늘은 꼴찌를 면하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그곳부터는 넓은 임도를 따라 그런대로 편안한 걸음걸이로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주차장옆 계곡에서 시린 물에 발을 담그니 그동안의
피로가 말끔하게 물에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다.
손을 씻고, 얼굴을 씻고
스쳐 지나온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물에 띄워 보냈다.
버스에 몸을 싣고, 그렇게 몸은 산과 멀어지고
마음은 산에 더 가까이를 헤매고 있다.

2004년 늦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