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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나를 만나다/산행일기(2005~2010)

아침산을 오르다

우산을 들려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아파트 문을 나섰다.

13층 복도에서 바라보니 더러는 우산을 쓰고 더러는 그냥 걷고 있다.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산 입구까지는 자전거를 타고 갔다.

안경에 안개비가 서려 시야가 뿌옇게 보였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산에 접어들자 소나무가 울창한 숲에 안개가 끼어 신비로운 느낌을 들게 했다.

안개 때문인지 인적이 드물다

삶이란 언제나 안개속을 걷는 것과 같지 않던가

희미한 안개속을 걸어가든, 맑게 개인 날 시야가 확 트인 곳을 걸어가든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은 비슷하지 않았던가

본격적으로 숲길로 접어들자 소리들이 나를 잡아 세운다.

새소리, 바람소리..

그 중에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소리가 있었으니

툭.  툭..

가녀린 솔잎들이 밤새 모았을 안개비들을 무게에 못 이겨

잎 끝을 통해 땅으로 떨어트리고 있었다.

잎새들은 예상치 못했던 물방울을 맞고 화들짝 놀라서 툭 툭 깨어나고 있었다.

굳이 깨우지 않아도 일어날 잎새들이건만

조금 더 부지런해지라고

조금 더 오래 깨어있으라고

솔잎들이 안개를 모아 물을 주고 있었다.

그래 안개속에 나오길 참 잘했다.

산에 오길 참 잘했다 스스로 칭찬하며 길을 걷는다.

개미들이 장마를 걱정했음일까

건너 디딜 공간도 없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어쩌나

그냥 발을 디딘다.

몇 마리쯤은 내 발길아래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불현듯 "천국에서 만난 다섯사람"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의도하지도 않았고 아는 사람도 아니지만 나도 누군가의 생의 방향을 바꿔 놓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 의해 내 생도 바뀔 수 있겠구나

발걸음 하나. 내뱉는 말 한마디. 바라보는 눈 빛 하나 모두 조심해야지

키큰 소나무들이 안개를 모아 작은 잡목들을 깨우 듯

아침산에서 나 자신을 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