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중에 내가 들었던 말들중에 제일 인상적인 말이다.
바위에 붙어 두려움에 엉거주춤 멈칫멈칫 하는 등산객에게 다른 등산객이 한 말이었다.
신발을 믿으세요.
신발을 믿어요
그 바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누구를 앞세우지도 않고 바위에 붙었는데
위로도, 아래로도 갈 수가 없었다.
두려움이란 이런 것이구나
내 의지대로 내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
무서웠다.
아까 누군가의 말처럼 신발이라도 믿어야 했지만
난 내 신발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와 바위를 하나로 이어주는 신발
그 신발을 믿을 수 없어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위는 까마득하고, 아래로는 이삼미터 밖에 되지 않을 듯 싶었지만 까마득히 멀게
친구 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그냥 미끄러져 내려야 될까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건
"도와주세요" 하고 말하는 것 뿐이었다.
고맙게도 한 등산객이 오르던 길 내려와 도와 주었다.
휴...
초입의 만만한 길, 깊은 가을을 여유있게 느끼며 걸음을 시작한 그길
가파른 오름길을 시작하면서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꽉 잡아야한다는 거
떨어지면 안 된다는거
그래도 중간 중간 쉬면서 내려다 보는 풍경은 마음을 비워내기에 충분했다.
느긋하게 내려다 보는 기분이라니
이 기분에 올라오는 거겠지
구석구석 안보이던 곳까지 볼 수 있다는 기쁨
상쾌하게 저절로 마음이 비워지는 가뿐함
그러나 사람의 자리 높은 자리에 오르면 그게 아닌가보다.
보고 싶은 곳만 보게 되는 모양이다.
드디어 도착한 의상봉
먹는다는 건 사는 즐거움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땀 흘린 뒤 먹는 식사는 더더욱 그러하다.
더욱이 내가 차리는 밥상이 아니라
차려진 밥상이라니
진수성찬을 차려온 연화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므로.......
힘든 오름길에 모두들 지쳤는지
하산 코스가 변경되어 대남문에서 시작되는 계곡길로 산을 내려왔다.
이런 길이라면 얼마든지 걷겠다.
만화가 동창생의 아들 우리의 꼬마 친구 이현이
참 대견스럽다.
힘들다 투정도 없이, 수없이 미끄러지면서도 짜증한번 안 낸다.
산이 깊어서 일까
엊그제 내린 비 때문일까
계곡 물소리가 들린다.
물속에 발을 담그니 발은 시리지만 너무나 상쾌하다.
하루종일 무거운 몸을 이고 다닌 발에 대한 도리를 한 것 같은 홀가분함.
그렇게 산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북한산 산장에서의 이른 저녁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산이 좋고 친구가 좋아 찾아간 그 길
친구들 배려에 고맙고 기쁘고 미안하고......
날이 저무니 집에 가고 싶었다
작별 인사도 못하고 바삐 돌아온 귀향길
버스를 탓건만 길이 막혀 구파발역을 삼백미터 앞에다 두고 내려서 걸었다
여섯시 반쯤 남부터미널에 도착했지만
표가 없었다
막차인 여덟시 차 표밖에 없다는데
할 수 없이 그걸 끊고는 입석이라도 타야겠다 싶어 개찰구로 나와 기다렸다.
7시출발 표시를 한 버스가 들어오는데 우등고속이었다.
기사님한테 입석 태우냐고 물었더니
줄 서 있으면 순서대로 비는 자리 태워준다고 하신다
일등자리 빼앗길세라
버스 앞머리를 등에 지고 삼십분을 서서 기다렸다.
운좋게 빈 자리가 있어
내뒤로 열댓명 줄 서 있던 사람들 중에
3등까지 버스를 탔다.
우등자가 붙으니 좋긴 좋네
버스안에서 눈을 감고 기분좋은 진동을 느끼는데
그 속도감때문인지
자꾸만 높은 바위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듯한 환영이 보였다.
편안히 도착해서, 집지킨 식구들 밥을 사주러 갔다 오는 길
자기를 믿지 못한 주인이 야속했던 걸까
등산화가 사라져 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모든 이별이 그렇게 예고없이 갑작스레 오는 것일지라도
정든 세월이 몇년인데...
다시 돌아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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