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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나를 만나다/산행일기(2005~2010)

오래전이야기..도락산

도락산이라 했다.

단양어디쯤에 있는.....길위에 뿌리는 시간이 만만치 않겠구나 생각하며

배낭을 꾸렸다.

샘솟듯할 땀을 위해  수건 손수건 몇장

사탕한봉지, 초쿄파이몇개 장갑, 얼린물과 녹차 세병 캔커피 두개

쓰다남은 일회용 카메라

그리고 반찬도 없이 밥만 담은 도시락 두개

출발하고 보니 젓가락을 안 넣었네.

뭐 여차하면 손가락으로 먹지 뭐. 젓가락 없어서 밥 못먹는 일이야 있을려구.

도락산

월악과 이웃해 있고 일부는 월악산 국립공원에 포함되어있다고 했다.

우암 송시열 선생께서 깨달음을 얻는데는 나름대로 길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는 낙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도락산이라 이름이 지어졌다는 일화가 전해 지는 산이라고 했다.

충주호를 끼고 도는 도로를 달리면서 바라보는 충주호는 너무나 메말라 있어

아름다운 바위와 나무를 가슴에 품고 있지를 못했다.

비가 한참을 더 와야 하겠구나

장마가 끝나가는데...달갑지 않은 태풍이 몇개쯤 지나가야 채워지려나....

 

상선암에서 시작된 산행은 몇걸음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숨이 턱턱 막혔다.

곳곳에 소낙비가 예고되었지만 하늘은 맑았다.

일부 몇명은 산행을 포기하고 계곡에서 놀기로 하였지만 대부분 산행에 참가를 하였다.

어느 산꾼이 산에 오른다 하지 말고 산에 들어간다고 해야 옳지 않겠는가?  했던 글이 생각났다.

그래 산에 들어가야지. 산의 품에 안겨야지.

오르막이 계속되는 삼거리안부까지 어찌 왔는지 모르겠다.

숨이 턱턱막히고 다리도 아프고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왜 이 고생을 하는가

되돌아서 내려가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그럴수는 없는 일이었다.

꼭 정상에 서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건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으니까.....

서로서로 격려하면서 도와주면서 몇고비를 넘어왔다.

더불어 걷기도 하고 어느 산길은 혼자서 걷기도 하고.

숨을 돌리며 맞는 산 바람은 어찌나 시원하던지

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바람.....누군가 동요를 한귀절 흥얼거렸다.

정상을 눈앞에 두고 등산길이 나뉘는 삼거리에선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모두 처음보는 사람들인지라 아는 사람이 있을리 없지만

김치국물이 어찌나 맛있어 보이는지

나같은 쑥맥이 그곳에 다가앉으며 " 저 김치좀 먹을께요" 했더니

젓가락이며 밥까지 내어주며 아주 밥도 먹으라 한다.

웬 횡재......

배낭에 담긴 내 밥을 짊어지고 가는 수고를 해야할테지만

김치에 풋고추에 어떤 진수성찬 보다 맛있는 점심을 그곳에서 먹었다.

감사의 표시로 캔커피를 꺼내 주었다. 

모두들 지쳤는지 그곳에서 지척에 있는 신선봉을 갈 생각들을 하지 않고

선두의 몇명만이 다녀왔다고 하면서 먼저 길을 떠났다.

그곳이 조망이 끝내준다는 얘기를 들은터라 그냥 가기가 아쉬워

혼자서 배낭을 메고 그곳으로 올랐다.

내려오는 사람들이 혼자 왔느냐고 묻는다.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느냐며.....

"안 잡아줘도 혼자서 갈 수 있어요" 했더니 자신있나보다며 웃었다.

신선봉에서 바라보이는 조망은 정말 좋았다.

이런곳에 있으면 그 누구도 신선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바위에 작은 웅덩이가 몇개 있었는데

그 중 한 웅덩이에는 개구리며 올챙이가 함께 살고 있었다.

개구리가 좀 특이해서 물었더니 황금개구리라 했다.

그런곳에 개구리가 사는것도 신기했고...이 여름에 올챙이라니....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고,  못난 얼굴이지만 사진 한장 박고

젖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소리 한번 지르고 하산을 시작했다.

(후에 그 사진을 본 친구가 꼭 여자 람보 같다고 놀렸다.짧은 머리에 질끈 동여맨 손수건

우람한 체격..내가 봐도 그랬다 ^^*)

바위산이라 그런지 곳곳에 바위채송화가 많이 피어있었고

청보라빛 산수국이 산뜻한 자태로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잎은 연산홍이나 철쭉 비슷한데 꽃이 전혀다른 나무가 참 많았는데

무슨 나무인지 모르겠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꼬리진달래였다 흰 꽃이 피는)

 

꼬리진달래 (사진은 다른데서 퍼왔음)

 

 

하산 지점이 가까와 올 무렵 긴장이 풀려서일까

가만히 서 있으면 저절로 개다리춤이 추어질것처럼 다리가 풀렸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막걸리 한잔씩을 걸치고 있었지만

우리 어머니는 왜 나를 술도 못먹게 낳아 놓으셨는지

아주머니가 산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약수를 받아 냉장고에 얼려두었다는 물만 몇바가지를 마셨는지 모르겠다.

다섯시간의 산길은 그렇게 끝이 났다.

돌아오는 길가엔 노란 달맞이꽃이 싱그럽게 피어있었고

어둠이 내린 밤하늘엔 칼로 자른듯한 반달이 걸려있었다.

영주 몇킬로...소백산..... 하는 이정표를 볼때마다

며칠 혼자서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지만

그 자유보다 더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그곳으로 나는 달려가고 있었다.

 

2002.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