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비워낸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랴
자기자신을 버리는 일이 어디 그리 만만하겠는가
많은 수행자들이 버리라고 강조하는 그것
바로 자기자신
나무들도 자신을 버리는 일이 힘겹기는 마찬가지인가보다.
태풍이라는 물리적인 힘에 의해 다 떨궈진 잎새의 빈 자리를
채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나보다
계절은 가을로 치달리고 있는데
나무들은 연초록 연하디연한 새잎들을 밀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꽃을 피우고 있다.
벗꽃이며 아카시아 이팝나무 매화...
부석사 가는 길의 이팝나무
한 나무에서 한쪽은 가을을 준비하고 한쪽에서 새잎과 꽃을 피우고 있었다.
봄에 산빛을 환하게 빛내는 노린재나무도 꽃을 피우고 있다
설마 열매까지 또 맺으려 욕심부리려는 것은 아니겠지
이제 새 잎을 피우는 은행나무는 언제 단풍에 물들려고 그러는 것인지
욕심부리지 않고 비워낼 수 있다면 단풍드는 일이야 어렵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제발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십일월에 보는 신록은 그 애처로움때문에 그다지 달갑지 않겠지만
한편으로는 작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봄이 아니어도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모진 풍파의 상처자리에 다시 새 잎을 돋우고 꽃을 피우는 나무들을 보면서
이 가을에도 꿈을 꿀 수 있다는 용기를 얻는다.
지금 내 안에도 어떤 시작이 꿈틀거리고 있다.
때도 아닌 지금 새 순을 돋게하고 꽃을 피우는
그들의 살기위한 몸부림을
비워내지 못하는 집착과 욕심으로 보며
또 용기와 희망을 끌어내는 나는
정말 이기적인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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