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어제의 내 발자취를 더듬어 봅니다.
개심사 일주문 옆에 빨갛게 익어가던 귀룽나무 열매며
조용히 졸졸대던 계곡물소리
사철나무 잎새 사이사이마다
종소리가 숨어있을것 같은 범종각 .
오늘 내마음이 이리 일렁댈줄을
미리 감지한걸까요?
어제는 어쩐지 자꾸만
개심사가 보고 싶더라구요.
걸어서라도 가고 싶더라구요.
정호승 시인이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가보라했던 선암사대신
제 가까이에 개심사가 있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요
선암사의 등굽은 소나무대신
이곳엔 사시사철 물속 거울을 들여다보고 사는 배롱나무가 있지요
푸른하늘을 날아다니는 목어도 있고
쭈그리고 앉아 밖을 내다볼 수 있는 해우소도 있지요.
환한 햇살이 스며드는 전통찻집같은 이 곳...해우소랍니다.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전통뒷간이라네요.
바닦에 닿는데까지 며칠이 걸린다는 선암사의 뒷깐만은 못하지만
내려다보면 제법 깊더라구요.
지난해까지만해도 공사중이더니 말끔하게 마무리되었네요.
해우소에서 돌아나오면 만나는 풍경입니다.
만첩홍도가 붉게 피어나는 봄이면
정말 환장하게 아름다운 풍경이 되지요
대웅전을 뒤로 돌아 한바퀴 돌아봅니다.
부처님께 삼배라도 올릴걸....
그냥 문밖에서 합장으로 대신합니다.
나는 왜 기도가 안될까....궁금했었는데
내가 기도를 할 수 없는 이유를 이제는 알것 같습니다.
면목이 없는거지요.
기도를 올릴만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지 못하니까요.
이마를 맛댄 대웅전과 심검당 처마사이로 보이는 건너편 기와지붕위에
씀바귀인지 애기똥풀인지 노랗게 꽃이 피었습니다.
버스시간까지 두시간여
시간이 널널합니다.
해탈문 안에서 나와 해탈문 안으로 들어가는 이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들고 나는것이 한발짝 차이네요.
해탈문 기둥을 휘감고 올라간 담쟁이덩굴이
해탈문의 출입을 한결 밝고 가볍게 하고
햇살에 눈부신 담쟁이덩굴이 허름한 창고마저 살아있는 듯 느끼게 합니다.
산신각 주변에서 나무들과 한참을 노닥거렸습니다.
대팻집나무 수꽃과 축축 늘어진 서어나무 꽃과 실랑이했지요.
서어나무 수피를 잘 다듬어진 근육에 비교하기도 하는데
제 눈엔 해산을 앞둔 만삭의 임산부의 튼 뱃살같아보입니다.
명부전아래 풀밭에 네잎클로버가 눈에 띄네요.
몇잎 따서 작은 수첩에 넣어두었지요.
덕분에 행운이 내게 온 걸까요?
친구가 개심사에 들러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편안하게 돌아왔지요.
그 친구에게 제일 예쁜 것으로 하나 건네준다는것이 깜빡했네요.
다음에 만나면 줘야겠어요.
산신각에서 내려오는 길에 바라본 경허당
걸쳐놓은 대나무하나가
돌담보다 더한 무게감으로 다가옵니다.
눈에 보이는 경계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더 무섭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