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18일 서부산악회원 42명과 함께
어디론가 떠나는 설레임에 가슴 두근거리며
뿌연 안개에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빛나는 새벽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몇시간 뒤에 내가 있을 그곳을 생각했지요.
그 곳에서 제발 푸른 남해바다를 볼 수 있기를...
해녀의 부표처럼 바다위에 둥둥 떠 있는 섬들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마음속에 품었던 산으로 향하는 길은 행복했지요.
무엇을 구하거나 얻고자 하는 길이 아니라서 더 행복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훌쩍 커버린 남녁의 마늘밭에서 부쩍 가까이 다가선
봄을 느끼며 산길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마다 마음속에 품고 사는것이 있을겁니다.
누구는 꽃을 품고 살고
누구는 나무를
또 누구는 사람을 마음속에 품고 사는 사람도 있을테구요.
그 대상이 무엇이든
마음속에 뭔가를 품고 산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짓눌릴만큼 많은 것들을 품지만 않는다면요.
초입의 오름길에서, 그리고 강산폭포에서 꽃과 함께한 짧은 시간도 무척 즐거웠지요.
봄을 품고자 하는 사람들, 꽃을 마음에 품은 사람들의 열정에
미적거리던 봄이 한달음에 달려온듯
노루귀랑 생강나무가 꽃을 피워올렸네요.
강산폭포에 바짝 달라붙어 커다란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컴팩트디카로 사진을 찍는 저더러
푸른뫼님께서 폼만 잡는것 같다고 하시는군요
덕분에 한바탕 웃음도 흘릴 수 있었습니다.
아래는 폼잡고 찍은 사진입니다. ^^*
(노루귀)
(애기괭이눈)
첫번째 갈림길에서 잠시 쉬어갑니다.
발빠른 회원님 몇분은 반대쪽 암봉을 다녀오셨다는군요.
초입에선 시원한 삼나무가 길가에 도열한채 반겨주더니
시원한 대나무밭을 지나갑니다.
이제 본격적인 오름길이 시작되었지요.
저 꼭대기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로프를 잡고 낑낑대며 오르는 길도
내려가는 길도 즐겁기만 합니다.
한번 눈앞에 펼쳐진 조망은 8봉까지 가는동안 죽 이어져
눈길가는 곳곳마다 내 품속으로 폴짝폴짝 뛰어듭니다.
그것들을 다 품지 못하고 더러는 흘려버리고
더러는 외면해야 했던것은
그것들을 다 품기에는 내 속이 턱없이 좁은 탓일겁니다.
선녀봉가는 길이 이렇게 암봉으로 이어지는 줄 몰랐습니다.
한 봉우리 한 봉우리 넘을 때마다
로프를 움켜진 손에 힘이 더해지네요.
마치 평생 손에서 놓치 못할 그 무엇을 잡은듯이요.
더러는 여기가 몇봉이냐고 물어오기도 합니다..
아직 본격적인 주봉은 시작도 안했는데 말이죠.
선녀봉에선 여자만이 보인다고 했던가요
뿌연 안개가 조금 야속합니다.
멀리 한줄로 늘어선 봉우리가 보이는데 구름속에 희미하네요.
새벽길 나서면서 그렇게 간전히 기원했는데...
휴양림으로 오르는 구불구불한 길도 참 아름답습니다.
선녀봉에서 쉬이 떠나도록 놓아주지를 않네요.
쇠사슬을 꽉 움켜쥐고 도망치듯 뒷걸음질로 내려섭니다.
선녀봉에서 내려서서
1봉에서 8봉까지 주능선이 보이는 헬기장에서 점심을 먹었지요
정성이 엿보이는 맛있는 반찬들
산밥을 먹으며 정을 나누는 시간은 또 특별한 즐거움을 안겨줍니다.
그런데..잊혀져 가는 것에 대한 서운함의 표시였을까요
이젠 봄이라고 생각했는데
등이 서늘하여 자켓을 꺼내 입었지요.
이제 주능선이 시작되었습니다.
1봉 가는 붐비는 길을 피해 바위로 치고 오르는 앞 사람을 따라
힘겹게 바위를 기어 올랐는데
이런...
길이 막혔다지뭡니까
길이 아니면 따라가지를 말았어야 했는데...
몇발자욱 내려서니 바위 틈새로 1봉인 유영봉이 보입니다.
몇명이서 유영봉을 향하다가 2봉으로 발길을 돌렸지만
아쉬움은 없습니다.
앞으로 가야 할 봉우리들에 대한 기대때문인가 봅니다.
(제2봉 성주봉)
(제3봉 생황봉)
4봉 사자봉에서 보는 6봉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한그루 나무인듯 한덩이 바위인듯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이 산과 하나 되어 어우러진 모습을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제4봉 사자봉)
사자봉에서 바라보는 두류봉 방향의 풍경
제5봉인 오로봉입니다.
다른 봉우리에 비해서 밋밋한 느낌때문인지 대부분 그냥 지나치는것같네요.
봉우리마다 그런 이름으로 불리워진 이유와 뜻이 있겠지만
그 이름대로 보아줄 재간이 제겐 없습니다.
그냥 지금 내가 이곳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고맙고 즐겁고 행복할 뿐입니다.
( 5봉에서 바라본 제 6봉 두류봉의 모습)
6봉 오름길에 반대쪽에서 내려오는 산님들을 만나
한쪽에 비켜서서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몸이 흔들릴만큼 거센 바람과 미끄러운 바위가 무척 조심스러운 길이었지요
걸음을 멈추게 했던 그들이 없었다면
낑낑대며 그저 오르고 또 오르느라
온 길을 뒤돌아 보지도, 주변을 둘러 보지도 못했을테지요
그래서 그들이 참 고맙습니다.
7봉 가는 길
신비함이 느껴지는 길입니다.
저 바위틈 동굴에 누군가 정성을 올린 흔적이 있었다하네요.
열려있는 문을 바람처럼 넘나드는 자유로운 영혼이길 꿈꾸었었지요.
꿈은 이루어진다지요?
통하는 곳이 어디를 향해있든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 참 고마운 일입니다.
내가 지금 산과 교감중이라고 하면
산이 웃을테지만
지금 이 순간은 내가 산이 된 것 같은 착각에 푹 빠져있습니다.
제 7봉인 칠성봉입니다.
정상석 뒤로 내려다 보이던 능가사쪽의 아름다운 편백나무 숲
사진에는 담지 못했지만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거나 높이고
방향을 한발짝만 옮겨도 색다른 풍경을 만나게 됩니다.
바위틈새로 보이는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모습
뒷모습만으로도 얼마나 다정한 친구인지 알 수 있을것같네요.
다른 봉우리들에 비해 7봉과 사이가 조금 떨어져있는 적취봉의 멋진 암봉이
빨리 오라고 손짓 하는 듯 합니다.
깃대봉에 가야 8봉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데...
8봉에서 내려서는 길에
아쉬움은 남기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제껏 산길 걸어온 시간도 충분히 즐거웠고 행복했으니까요.
편백나무 숲을 지나 능가사로 내려섭니다.
대웅전의 처마사이로 팔영산의 여덟봉우리가 시원스레 보이는군요.
일주문 밖의 풍경에 취해 사천왕상을 볼 생각도 하지 못했네요.
저와 마주한 문 밖의 저 두 사람
한 사람은 오는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가는 사람입니다.
오고 가는 것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에 달려있는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내게서 가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내게로 오고 있는 것은 또 무엇인지..
두고두고 생각해볼 일입니다.
강산리마을~ 신선대(선녀봉)~ 헬기장~2봉~8봉~ 탑재~능가사 총 9km 6시간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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