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19일
성삼재~ 노고단~ 성삼재
성삼재 가는 길이 낯설었다.
뱀사골 계곡 입구가 보이고 옆으로 계곡을 두고 구불구불 좁은 길을 천천히 달렸다.
천은사를 지나고 시암재를 지나서만 성삼재를 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길은 어디로든지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이궁..바부....
성삼재에 도착했을 때는 맑은 하늘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조망이 좋았다.
시암재휴게소가 환했고 어딘지는 모르지만 멀리 마을도 내려다 보였다.
기분좋은 예감
18킬로를 걸어 뱀사골로 내려서는 길이 영 자신이 없었기에 택한 노고단이었다.
어찌어찌 자신과 싸워가며 완주를 한다해도
치러야할 승리의 댓가가 너무 클것 같아서
싸움대신 선물을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노고단까지는 다른 회원들과 함께 걸어보려고 했다.
그게 배려에 대한 예의일것 같아서
반가운 꽃들도 곁눈질로 힐끔 쳐다보며 열심히 걸음을 옮겼다.
이 정도면 노고단에 다녀오는 회원들을 만날 수 있겠구나 생각했었는데
노고단 고개에 도착했을 때는 모두들 바로 임걸령을 향해 출발하고
달랑 세명의 모습밖에 볼 수가 없었다.
성삼재를 향하는 버스안에서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 왕복 두시간이면 되겠냐는 산행대장의 말..
"다섯시간이요" 아니 "여섯시간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눌러참고
네시간만 달라고 부탁했다.
그 시간이면 성삼재에서 뱀사골로 이동하여 선두팀을 맞이하는데
무리가 없을것 같았다.
나는 시간이 부족할까 염려가 되는데
산행대장은 "싱겁지 않겠어" 라고 묻는다.
그래도 걱정이 되었는지
예정시간보다 늦게되면 기사님께 연락하라는 당부를 하고는 임걸령으로 향했다.
이제부터 훨훨 천국에서 놀아볼까
황홀경에 빠져 나는 아직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데
동행한 그녀는 벌써 저만치에서 꽃들과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
동자꽃.....만화영화 "오세암"에 나오는 길손이의 해맑은 웃음처럼 환하다.
아빠와 함께 걷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사람들의 탄성에 뒤돌아보니
산에 덮힌 베일을 바람이 밀어내고 있었다.
그것도 한 순간
또 다시 밀려와 밀려간 자리를 차지하는 안개
그래 천국은 안개도 좀 있어야 더 신비롭겠지.
꽃을 만나러 왔든
산을 찾아서 왔든
노고단에서는 꽃에게 눈길을 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어디를 바라보든 거기엔
꽃이 있었으니까.
오늘처럼 안개가 앞을 가린 이런 날에는 더더욱 그랬다.
눈치를 보며 가끔씩 띄워 놓은 줄을 건너
풀밭에 슬쩍 발을 들여놓았다.
봉오리를 부풀리고 있는 물매화가 발아래 밟히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누군가는 야생화가 학대당하고 있다더라는 TV뉴스에 대해서 얘기하며 지나갔고
난쟁이바위솔을 들여다 볼 때는
위험하다며 빨리 나오라고 걱정을 했다.
노고단에 가까워질수록 안개는 짙어졌다
멀리 내다 볼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길을 한발 한발 내딛는 그 자체가 수행이고 기도인듯
안개에 묻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은 경건해보이기까지 했다.
군락을 기대했던 꽃 원추리는
드문드문 한송이씩 피어 나를 봐 달라는 듯이 고개를 들었고
송이풀을 보고 들어갔던 그 곳엔
아주 키 작은 앉은좁쌀풀이 무리지어 있었다.
송이풀
앉은좁쌀풀
허기를 채우려고 잠시 쉬는 동안 한기가 느껴졌다.
쓸 일이 있을까싶어 차에 두고 온 조끼가 간절히 생각나는 시간
일회용 우비라도 입어야 되나
아무리 여름산이라도 항상 준비는 해야된다는걸 다시 느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섬진강이 보여야할 이곳엔
그저 안개와 바람뿐이었다.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
은빛으로 반짝이는 물결을 은근히 기대했었는데
아쉽다.
노고단 탑에서 인증샷이라도 한장 남겨야겠기에 탑 앞에 섰는데
사람들이 뭔가를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뭔가 궁금해 보니 바닥 한가운데가 휑하니 비어 있었다.
아마도 바닥을 다져놓은 돌 하나를 빼내 탑에 얹은 모양이었다.
박힌 돌이라도 빼내어야 할만큼 간절한 기원이 있었나보다.
조흰뱀눈나비
하루종일 주저앉아서 놀아도 좋을것 같은데
시간이 어찌 흘렀는지 모르겠다.
시간에 맞추려면 하산을 서둘러야겠는데
이제 벗겨지기 시작하는 안개너머 산풍경이 내 발목을 잡는다.
쥐털이슬, 말털이슬, 지리고들빼기
내 고장에서는 볼 수 없는 꽃들의 유혹을 뿌리치며 내달리는 발걸음.
기사님께 30분쯤 늦는다는 연락을 해 놓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동행한 그녀의 말에 의하면
내가 그토록 서두르는것을 처음보았단다.
산행팀을 만나
계곡물에 몸 담그는 것으로 마무리한 산행.
18킬로를 걸은 사람들만큼 다리도 아프고 힘들다.
서로 다른 눈높이를 맞춘다는 것. 그 대상이
사람이건 꽃이건
쉬운일이 아닌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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