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월산도...신불산도....영축산도
제게 너무나 먼 산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하면서 마음속에 품고만 있었던 그리운 산이었지요.
아무리 탈출로가 많다고 해도
백두대간을 완주한 장거리 산꾼들과 과연.....
하여 따나나설 작정을 하기까지는 많은 망설임과 고민을 해야만했습니다.
그 산을 향해 먼 ~ 길을 가면서
어떤 기대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직접 보면서 눈에 보이는 그대로 즐기며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지요.
서쪽 끝에서 아랫녁 동쪽의 끝자락까지
버스로 다섯시간쯤의 먼 거리.
기대는 접어두기로 했었지만 그건 머리만의 생각이었나봅니다.
저수지에 피어오르는 옅은 새벽 물안개를 보면서
마음이 설레이는것을 보면요.
밤잠도 제대로 못 잤건만
긴 시간 버스안에서도 잠이 오지 않더라구요.
덕분에 버스가 움직이는대로 이쪽저쪽에서 떠오르는 찬란한 아침해를 보았고
배내고개 도착할무렵엔 산 위에 걸쳐진 무지개도 보았지요.
배내고개에서 잠시 몸을 풀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저런 나무계단을 800개쯤 올라가야 한다고 누군가 설명을 하더군요.
한번 세어볼까? 생각을 했지만
올라가다 잊어버릴게 뻔 하고
그렇다고 다시 내려와 셀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냥 열심히 계단을 오릅니다.
가을이 깃드는 나무들의 한결 순해진 표정도 아름답네요.
억새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능선이 가까워졌나봅니다.
어린시절 제게 억새는 그다지 반가운 풀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억새를 한바지게 잘라다 양지바른 마당가에 부려 놓으면
잎새를 하나하나 따 내는 작업을 해야 했거든요.
날카로운 잎에 손가락을 베이기 일쑤였지요.
그 억새를 발 처럼 엮어 벽에 붙이고는
잘게 썬 볏짚을 섞어 물에 개인 황토흑을 척 척 떠서 붙이면
멋진? 벽의 리모델링이 되었지요.
저 뒤로 다음달 걷게 될 재약산과 사자봉?이 보이네요.
오밀조밀 아름다운 능선들이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이쪽도 봐야하고 저쪽도 봐야하고
앞에 가는 사람, 뒤에 오는 사람.
초록의 물결위에 빨간 점을 찍어가는 단풍이 물들어가는 산도
오래오래 보고 싶구요.
누군가 그러시더라구요.
영남알프스는 일단 올려만 놓으면 그 다음부터는 평지같은 길이라고...
계단을 올라서서 배내봉까지는 그랬지요.
커다란 철쭉들을 보면서 봄에 와도 너무 좋겠다 그랬더니
일년내내 좋은 산이라고 그러네요.
하긴 일년내내 좋지 않은 산이 어디있겠어요.
다 나름대로 멋과 맛이 다르니까요.
살짝 바윗길을 돌아가니 앞에 우뚝한 솟은 봉우리 하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곳을 올라가지는 않겠지 했는데
와보니 바로 앞에 보이던 저 봉오리 꼭대기였네요.
바로 그 곳입니다. 우뚝 솟은 봉우리.
그 절벽 위에 구절초가 홀로 피었다가 시들어가고 있고
단애 아래 산줄기를 따라 가을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간월산을 오르기 전에 잠시 쉬며 에너지 보충을 합니다.
쉬면서 당겨본 풍경
이제 간월산을 향하여 출발합니다.
잔잔한 싸리나무 단풍이 색다른 가을 느낌을 느끼게 하네요.
이미 선두그룹은 간월재를 향해 내려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구조대장님 맘이 급하실텐데....이 오합지졸들을 어찌합니까?
버리고 가라해도 그럴수도 없었을테구요.
어느 산행기를 보니까 출발점이 어디인지는 기억에 없지만
이 누운 소나무를 만나면 간월산을 반은 올라온 거라고 하더라구요.
그 말을 들은 하나님..."그럼 반을 더 올라가야 하네요" ^^*
간월산을 지나고 간월재를 향해 걸으며 보이는 군데군데의 암봉들이 참 좋습니다.
산님들도 많이 오셨네요.
왼쪽의 산줄기의 모습이
동네를 내려다보는 호랑이 같기도 하고 사자 같기도 하네요.
간월재에선 행사준비에 한창이더군요.
울주오딧세이..에서 주관하는 산상음악회인가 봅니다.
그랜드피아노도 보이구요.
저 곳을 통과할 즈음엔 저 테크통로에 사람들이 가득해서
줄을 넘어 옆으로 돌아가야 했답니다.
신불산 오르는 길엔 그들이 부르는 아리랑을 들으며 올라야했지요.
뭐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냥 바람소리처럼 흘려버리고 싶은데도 자꾸 소리 안으로 끌려들어가네요.
일단 올려만 놓으면 그 담부터는 ......
그 말을 전적으로 믿은 것은 아니지만
간월재에서 신불산 오르는 길이 참 힘듭니다.
올려 놓으면 굴러내리고... 또 겨우 올려 놓으면 또 굴러내리고...
재에서 재로 넘는 산길이라 해도 천고지가 넘는 산을 몇개를 넘어야 하는 길이니까요.
한구비만 돌면 신불산 정상이 나올것만 같은데
또 나무 계단이 이어집니다.
그동안 처음엔 둘 뿐인줄 알았던 B코스팀이 몇명 더 늘었네요
저~기 먼저 올라간 요정님이 손을 흔들고 있군요.
조망이 끝내줄것 같은 저 작은 암봉은 아무래도 못본척 지나쳐야 할것 같네요.
겨우 도착하니
구조대장님 일행을 등떠밀다시피하여 앞서 보냈다는군요.
정말 잘한것 같습니다.
먼저 가시라 해도 책임감때문에 끝까지 느린 걸음 함께 걷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되니까요.
미안함에 마음이 편치가 않았었거든요
신불산을 코 앞에 두고 도시락을 펼칩니다.
한껏 발휘한 솜씨들로 멋진 밥상이 차려지는데 전 먹을수가 없습니다.
오는동안 들이마신 산의 정기로 가득차서
다른 그 무엇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나봅니다.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다는것이 참 슬픈 일입니다.
하산 갈림길인 신불재로 내려오면서 바라본
영축산 능선이 참 아름답습니다.
진정한 억새길은 이제부터 시작되는것 같은데......
오늘 이 길을 걸었듯이
언젠가 또 저 길을 걸을날도 오겠지요.
미련없이 신불재에서 내려섰지만
그래도 내려온길도 한번 뒤돌아보고
언젠간 가게될 길도 한번 올려다봅니다.
그 날
영축산의 으악새가....슬피 울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선두팀과의 시간차를 가늠해가며 거침없는 내리막길을 내달립니다.
그래도
슬픈내색없이 나무와의 이별을 준비하는
곱고 고운 단풍한테는 눈길 한번은 주고 가야겠지요.
은은하게 물드는 사람주나무는 제가 특히 좋아하는 단풍입니다.
무릎의 뻐근함이 느껴질무렵 잠시 쉬려고 앉았는데
내려오는 산행객들중에 반가운 얼굴들이 보입니다.
등반대장님을 비롯해 선두팀들이 이제 내려오기 시작하는군요.
영축산의 억새평원을 보지 못한 아쉬움보다
선두보다 늦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무척 기분이 좋습니다.
계곡물에 탁족을 하는데 발이 시리더라구요.
양말을 신으며 생각하니
지금이 시월이더군요.
땀흘리며 걷느라 세월을 잠시 깜빡 했습니다.
세월조차 잊게 만드는 산행의 즐거움
다음 2구간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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