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22일 화요일
개심사 가는 길
밝아오는 목장 언덕너머로 언뜻 무지개가 보였다.
신창저수지 옆에 차를 세웠을때는 희미하던 한쪽 꼬리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올 봄 들어 세번째 찾는 개심사다.
며칠사이에 녹음은 부쩍 짙어졌고
일주문 옆 귀룽나무는 꽃을 활짝 피워 향기를 날리고 있었다.
이번에 개심사에 가게 되면
대웅전에 들러 부처님께 삼배를 꼭 올려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경지에 비친 배롱나무 그림자를 들여다보면서...
흐드러지게 피어난 겹벗꽃을....
불밝힌듯 환한 연등을 바라보며
경지를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를 건너는동안
그 생각은 까마득히 잊고 말았다.
...
미안하다
....
문 밖에서 해탈문 안을 엿본다.
저 문을 들어선다고 갑작스레 깨달음을 얻을리는 만무하지만
모든것을 잠시 내려놓을 수는 있을것 같다.
내려놓는것이 아니라 잊어버리는 것일테지만.
지금 이 순간은 모든것을 잊어도 좋겠지만
세상에는 잊어서는 안되는 일
되풀이 되어서는 안되는 일이 있는 법인데
그런것들까지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다.
채마밭 가의 감나무에 새잎이 피어나고
진달래꽃이 떨어졌다.
세상은 항상 오고 가는 것들이 서로 교차한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일테지만
피어보지도 못하고 꺽인 꽃들을 어쩌나
원통해서 어쩌나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슬프지 않은것은 아니다.
슬픔이 덜한 것도 아니다.
웃고 있다고 슬프지 않은것도 아니다.
가는 이 외롭지 않게
보내는 이 슬픔 다독일 수 있게
모두들 마지막 인사는 나눌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명부전 앞의 청벗이 활짝 꽃을 피웠다.
이날 아침에도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려고 많은 진사님들이 개심사를 찾았다.
명부전에 모셔진 시왕상 중에 유일하게 내가 기억하는 염라대왕상.
청벗이 필 때 쯤에는
벌주는 일조차 잊어버리지 않을까?
벌줘야 될 사람들 잊지 말고 나중에라도 꼭 합당한 벌을 주세요.
명부전과 경허당 사이의 배롱나무는 꿋꿋하게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꽃 피우고, 잎 피우는데
홀로 스스로의 시간을 기다리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배롱나무는 주변 신록의 유혹에도
한치의 흔들림도 없어보였다.
청벗과 배롱나무가 함께 꽃 피우지 않는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다시 찾을 핑계거리를 만들어주니까 말이다.
명부전을 되돌아보며 다시 해탈문 쪽으로 향했다.
자연스런 기둥 너머로 무량수각과 해달문과 안양루가 보이는 풍경.
내가 개심사에서 제일 좋아하는 풍경이다.
흙길따라 걷다보면 저쪽 어디에서 반가운 얼굴이 불쑥 나타날것 같은 푸근함이 느껴진다.
저 기둥을 뒤에서 보니 앞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좀 과한듯한 배흘림과 민흘림기둥의 균형이 딱 맞아 보인다.
똑같이 깍아내고 다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어울리는 자리를 찾아준 이의
생각과 안목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인데
웃는것조차 미안하고
밥을 먹다가도 울컷 가슴이 메이고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흐르는 눈물에 눈을 감는다.
다음 생애는 모두 꽃으로 피어나거라.
떨어지는 꽃잎은 다시 피리라는 약속이니
기다림의 시간이 희망이 되는
개심사 청벗으로 피어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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